[어린이처럼 - "다윈 영의 악의 기원"]

책 제목이 야심차게도 ‘악의 기원’이다. 책의 페이지 수는 무려 856쪽이다. 청소년 소설 "합체", "맨홀", "양춘단 대학 탐방기"로 평단과 독자의 찬사를 받아 온 박지리의 새 책이다. 

악의 기원을 파헤쳐 보겠다는 작품 의도처럼 줄거리는 충격적이다. 아버지(러너 영)가 저지른 악을 덮기 위해 열여섯 살 아들(니스 영)은 가장 친한 친구(제이 헌터)를 죽였다. 작품의 시점은 그로부터 삼십년 뒤다. 당시 범죄가 발각되지 않은 니스는 도덕적이고 명망 있는 행정가이자 흠결없이 훌륭한 아버지가 됐다. 하지만 니스의 살인이 공소시효를 4달 앞두고 드러날 위기에 처하자 그의 열여섯 살 아들(다윈 영)은 살인의 증거를 가진 친구(레오)를 살해한다. 니스가 제이를 살해할 때 입었던 바로 그 후드티를 입고.... 아버지의 악을 감추기 위해 아들이 새로운 악에 빠지게 되는 상황이 또다시 되풀이됐다.

▲ "다윈 영의 악의 기원", 박지리, 사계절, 2016.

니스가 누구보다 올곧게 살아온 원동력은 바로 죄의식이었다. 대개 인간의 위선이 죄의식에 바탕하고 있듯이. 죄의식이 없는 인간은 위선도 위악도 행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삼십 년간 자신의 죄를 상징하는 후드티를 지녀 왔고 제이의 추도식을 지내 왔다. 그는 다짐한다. “내 아들 다윈, 너에게만은 절대 내 죄를 물려주지 않을 거야. 내가 저지른 죄로 네가 괴로움을 당하는 일만은 절대 없게 할 거야. 너는 아무 죄의식도 없는 가문의 선조가 될 거야.”(471쪽) 이렇게 그는 아들의 빛으로 살아 왔다.

니스의 극진함으로 순결하고 순수하게 자란 다윈은 그러나 아버지와 똑같은 악을 저지르게 된다. 따지자면 아버지보다 더 큰 악일 수도 있다. 니스가 제이를 살해한 건 그가 러너의 생존에 위협적인 일을 벌이려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윈은 단지 레오가 니스의 살인과 관련한 결정적 증거를 우연히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그를 살해한다. 주인공의 이름이 "종의 기원"에서 진화론을 주창한 ‘다윈’이듯 작가는 악의 기원이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들....에게 있으며 악은 계속 진화해 나간다고 말하려 했던 것일까.

“누구도 기원을 끝까지 밝혀 가며 살 수는 없다. 조상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살인하지 않은 조상을 가진 핏줄이 과연 단 하나라도 있을까?”(770쪽)

이 구절은 가장 거룩한 책인 성서의 첫 장, 창세기부터가 카인이 동생 아벨을 살해한 피로 얼룩져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하다. 이 작품이 말하고, 성서가 말하듯 우리는 모두 ‘카인의 후예’들이며 카인으로 살아 가고 있지 않은가.

이야기 안에서 다윈이 저지른 악의 기원은 아버지 니스를 거쳐 할아버지 러너에게까지 올라간다. 그런데 러너의 악은 단지 러너 개인의 윤리적 행실의 문제가 아닌 사회 구조의 모순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1지구와 9지구로 공간이 철저하게 분리된 계급사회에서 최하위 9지구 출신인 러너가 폭동-혹은 혁명-을 꾀한 과거 이력으로 그의 생존이 위험에 처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니스와 다윈의 악은 단지 러너 개인에게서만 기원한다고 볼 수 없다. 그들의 악은 이 세계의 수많은 죄악의 뿌리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제이가 러너에게 위협적인 존재였던 건 그가 도덕적 결벽주의로 악을 척결하려 했기 때문인데 제이의 결벽주의는 바로 어머니의 부정에 대한 반작용으로 생성됐다. 니스의 악은 러너뿐 아니라 제이와도, 제이의 어머니와도 닿아 있다.

작품이 추적하고자 했던 ‘악의 기원’은 그리스도교 신학의 ‘원죄’를 생각하게 한다. 성서가 아담과 하와를 빌어 말하는 ‘원죄’란 죄로 물든 세계에서 태어난 인간 존재에 대해 말하는 것일 테다. 인간으로 태어난 순간 ‘원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건 그 누구도 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말이다. 죄는 상처를 낳고, 상처는 다시 죄를 낳는 거대한 악의 세계. 그렇게 생겨난 죄는 나와 하느님과의 관계, 나와 타인과의 관계, 그리고 나를 파괴한다.

두렵고 절망적이다. 그러나 작가는 이 사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실마리 하나를 남겨 놓았다.

“원래 인간은 무서운 존재지. 전부 파악되지도 않고 완전히 제어되지도 않는....”

“그럼 인간은 뭘 믿으며 살 수 있는 거죠? 자기 자신조차도 파악할 수 없고 제어할 수 없다면?”(중략)

“사랑.... 사랑은 믿어도 된단다. 내 어머니가 나에게 주신 사랑, 엄마가 너에게 주고 간 사랑, 내가 다윈 너에게 주고 싶은 사랑, 거기엔 어떤 의심과 불안도 없지. 아마 너도 나중에 부모가 되면 네 자식에게 그런 사랑을 주게 될 거야.”(중략)

“그러고 보면 재미있구나. 마음속에 알 수 없는 길을 품고 사는 무서운 인간도 결국엔 사랑으로 진화한 것이라니.”(725-726쪽)

악의 기원을 더듬어 가던 작가는 사랑이라는, 구원의 희미한 빛을 찾아냈다. 어둡고 무겁고 힘든 이 이야기는 결국 비극으로 끝나지만 남겨진 우리는 사랑의 의무를 받았다.

 
 

김유진(가타리나)
동시인. 아동문학평론가. 아동문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대학에서 글쓰기를 강의한다. 동시집 “뽀뽀의 힘”을 냈다. 그전에는 <가톨릭신문> 기자였고 서강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이곳에서 아동문학과 신앙의 두 여정이 잘 만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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