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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중국의 ‘샛별’, 중국 교회와 복음화 2[교황 프란치스코와 하느님의 백성 - 황경훈]
황경훈  |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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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0.07  11:2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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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포함해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 그리스도교는 여전히 ‘외래 종교’ 또 심하게 말해 ‘제국주의의 종교’로 남아 있는 듯하다. 이는 그리스도교가 전파된 오랜 역사에 비해 오직 3퍼센트만 신자라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과거에 지녔고 또 현재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지역 문화 및 종교 전통에 대한 태도 때문으로 보인다. 교회에 대한 이러한 이미지가 계속 유지된다면 적어도 아시아에서 선교는 ‘성공’을 거두기 어려워 보인다. 물론 식민지를 경험한 역사 때문이기도 하고 또 교회가 식민주의 잔재를 제대로 청산해 내지 못한 과거뿐 아니라 현재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는 중국 교회사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여기서 외래 종교라 함은 그리스도교가 현지 문화에 제대로 뿌리 내리지 못한 토착화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고, 제국주의의 종교라는 말은 교회가 선교를 명분으로 외세의 개입에 길을 터 주거나 그와 유사한 행위를 해 온 역사를 묻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시아의 유구한 종교 전통 및 문화에 대한 이해와 존중보다는 근거 없는 우월감과 독선으로 가득 찬 ‘승리주의적 태도’는 교황청의 ‘조상제사 금령’으로 극단화했다. 서구의 식민주의를 겪지 않은 중국, 조선, 일본 등의 동아시아 국가에서는 이에 대한 강력한 반발이 있었고 그에 따른 박해를 불러 오기도 했다. 

교황 인노첸시오 10세는 1645년 금령을 내려 조상 제사와 공자를 기리는 의례를 금지했으며 60여 년 뒤에 교황 클레멘스 11세는 조상 및 공자와 관련된 모든 제사와 의례를 금지했다. 유명한 ‘의례 논쟁’이 막을 내린 이 조치는 유교를 존중하는 ‘보유론’적 태도보다는 도그마 중심의 보수적 선교관을 지지함으로써 중국에서 모든 선교사가 추방당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어 1930년대 일본에서 선교 활동이 어려움에 직면하자 교황청은 신사참배가 종교 행위가 아닌 ‘문화 행위’라는 당시 문부성의 유권 해석을 받아들여 용인했고 이와 연동하여 신사참배와 비슷하게 조상 제사가 ‘문화 행위’라는 어정쩡한 상태로 인정되기에 이른다. 조선에서는 이미 1만 명의 순교자를 낸 뒤의 일이다.

신학적 언술로 순교에 대한 장엄함과 고귀함에 대해 말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은 분명 신앙 공동체에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을 적시하는 것과 그것을 신학적으로 해석하는 일은 별개이며 따라서 하나가 다른 하나에 종속되거나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 역사는 순교자들의 순교에 대한 결단이라는 개인적, 실존적 문제와는 별개로 그들이 흘린 피의 원인이 동양 종교와 문화에 대한 교황청의 무지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증언한다. 동아시아의 지역교회와 교황청은 이를 어떻게 ‘해석’하고 이를 풀기 위해 고민해 왔는가. 교황청이 중국과의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이 문제를 무엇보다도 먼저 살펴야 하지 않을까. 그리하여 2000년 희년 때에도 하지 못했던 교황청의 정책적 잘못의 인정과 공식 사과가 이루어진다면, 지역교회 사이의 화해와 또 교황청의 화해를 위한 발판이 되지 않을까.

   
▲ 1900년 '의화단 봉기'로 중국 농민들은 중국 그리스도교 신자들과 서양인들을 처형하고 성당과 신자들의 집을 불태웠다. 텐진에서 일본군, 영국군과 의화단이 싸우고 있는 모습. (이미지 출처 = zh.wikipedia.org)

조상제사 금령이라는 불협화음은 중국 현대사에서 제국주의라는 정치적 문제로 채색되어 또 한 번의 굴곡이 더해진다. ‘텐진 대학살’(1870)이나 ‘의화단 봉기’(1900)에서 보듯 중국 인민들에게 그리스도교는 ‘선교의 자유’를 빌미로 프랑스라는 제국주의를 등에 업은 반민족, 반민중 세력으로 비쳐졌고 일련의 역사적 사건을 통해 남긴 상처는 깊어 아직도 아물지 않았다. 그리스도교의 선교와 서구 제국 권력 사이의 밀월 관계는 중국 그리스도교의 이미지에 매우 부정적인 것이었고 반-그리스도교 정서로 이어졌다. 지하교회와 공식교회 사이의 불화와 갈등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낙인처럼 간직한 채 오늘에 이르렀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중국 교회가 지하교회와 공식교회로 분열되어 서로 갈등하고 반목한다’는 관점은 그것이 현실이라고 하더라도 중국 교회 신도들이나 성직자들이 그렇게 부른 것이기보다는 외국인들이 그렇게 보았고 그렇게 불렀다는 점에서 ‘외부의 생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어쨌든 그 과정에서 1957년 ‘중국천주교애국회’가 만들어지고 그해부터 1962년까지 불과 5년 동안 45명의 주교가 교황의 승인 없이 서품된다. 한편 애국심과 제국주의와의 투쟁을 기치로 내건 중국천주교 개혁운동에 반대한 상하이 교구의 궁핀메이 주교가 투옥된다. 1985년에 가택연금으로 바뀔 때까지 무려 30여 년 동안 수감된 궁 주교는 수감 중인 1979년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비공개로 추기경으로 서임함으로써 ‘교황에 충성을 지키는 지하교회’의 상징적 인물로 부상한다. 중국 정부와 궁 주교를 비롯한 지하교회의 주교들은 자주 부딪혔고 그때마다 정부는 이들을 노동수용소나 감옥에 가두거나 가택연금 등으로 억압했으며 이런 갈등으로 본당 신앙생활이 거의 마비될 지경에까지 이른 곳도 있었다. ‘지하교회=교황에게 충성, 애국교회=빨갱이’라는 도식이 한층 강화된 것이 폴란드 출신 교황의 재위 기간과 거의 일치하는 것은 우연한 일만은 아니며 그 후임자의 교황직 기간도 이러한 분위기는 유지된다. 한국 교회에서도 이즈음 강력한 매카시즘을 바탕으로 ‘애국교회=빨갱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지하교회를 일방적으로 지원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중국선교’가 중심을 이루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중국 교회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열렸을 때(1962)도 이런 갈등의 와중이어서 참가하지 못했고,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 1차 총회가 열렸을 당시(1974)에도 그러한 관계가 지속되었고 더욱이 중국교회를 대표하는 기구가 없었기에 참여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덩샤오핑이 등장하고서도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규정은 여전히 옹호되었지만, 그의 실용주의적 태도가 영향을 주어 많은 본당에서 공산당 정부와의 협력에 대해 설왕설래가 오고 갔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교황청과의 관계에 큰 변화는 없었지만 교황의 승인 없이 서품된 주교들이 교황청의 인정을 받고자 노력했으며, 교황과의 친교를 회복함으로써 자신들의 지위를 정당화하고자 했다.

크고 작은 일들을 겪으며 교황 프란치스코의 적극적인 대화 자세와 분위기에 이르자 중국 정부도 그에 화답하는 모양새로 가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중국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당시 3000명을 동원한 장엄한 의식을 통해 ‘공자의 부활’을 알렸다. 이제 중국은 여전히 공산주의 국가이지만, 이념적으로 공자의 나라로 다시 자리매김함으로써 타문명과의 대화에 훨씬 더 전향적인 모습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교황청과 중국의 관계도 그렇게 나아갈 것으로 보이며 여기에서 중국 그리스도교의 역할은 중대해 보인다. 비록 여전히 중국 정부의 간섭과 억압이라는 장애물이 있지만 점차 극복되리라는 밝은 전망을 갖는 것은 지나친 일만은 아니리라고 생각된다.

 
 

황경훈

우리신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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