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7일, 94일차 생명평화 오체투지 순례

한 기자가 그에게 묻는다. "그렇게 해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확신하나요?" 그는 답한다. "아뇨, 하지만 세상이 나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을 나는 확신합니다." "나는, 만약 내게 용기가 있다면, 사람이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내가 생각하는 대로 오늘 당장 살기 시작할 수 있다. 나는 사회가 바뀔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 세계를 변화시키는 방법은 자기 자신의 변화를 위한 시도, 바로 한 사람의 혁명(one-man revolution)이다." - 미국 평화운동가 고 애먼 헤나시(Ammon Hennacy. 1893-1970))

<다시 거리에 나서며>
2일간의 휴식을 보내고 다시 거리에서 발걸음을 시작합니다. 휴식이라 하지만, 개인정비와 진행경로에 대한 답사 등으로 바쁘기는 동일한 일정들을 보내었던 것 같습니다. 휴식을 취하던 2일간 정말 더웠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도 역시 무덥기만 하더군요. 출발시간이 9시이니 이미 해는 정수리 위로 올라있고, 도시라는 공간 특성상 쉽게 더위를 피하기는 어려울 듯 합니다.

오늘은 수원시 초입의 비행장 삼거리에서 하루를 시작하였습니다. 지난번 소식에서 전한바와 같이 이 지역은 비행기 소음이 하늘을 삼킬듯이 울리는 지역입니다. 최근 이 수원공군비행장의 소음으로 인한 피해규모가 무려 1조원에 이른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주민들에게 국가가 소음 피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도 나왔다죠. 환경권을 국민의 기본권으로 인정하는 추세가 늘어나길 기대합니다.

하루 하루 순례길에 참여하는 분들은 지역을 막론하고 말 그대로 우리의 이웃입니다. 오늘 일정을 함께하신 신연호 선생님은 수원에 살고 계신 분입니다. 중학교 2학년과 초등학교 5학년을 둔 학부모로, 스스로 '평범한 아줌마'라고 설명하신 신 선생님은 "사회적 문제점에 공감하고 오체투지 참여 자체가 저에게 좋은 의미 될 것 같아 왔다"고 합니다.

모두가 1등하는 사회를 꿈꾸며 아이들에게 자유로움보다는 제도화된 무한 경쟁을 강조하는 사회가 가슴 아프다며, "땅에 몸을 대보니 편안하다”고 합니다. “가만히 있을 수 없잖아요. 그래서 성직자들께서도 무언의 분노와 저항을 표현 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세상이 한꺼번에 바뀌지는 않겠지만 정치하는 사람들에게 무거운 짐으로 느껴지기를 바란다"고 합니다. 신 선생님은 "‘작은 실천에서 시작하는 어린이 책 진보모임’ 활동하고 있는데 몇몇 회원들은 하루 한 끼를 굶으면서 오체투지의 뜻에 같이 하고 있다”며, “사람에게는 생각하는 능력을 조물주가 주신만큼 지혜롭게 함께 어울려 살기를 바란다.”고 하십니다.

수원 터미널 인근에서부터 순례 경로가 도심지를 통과하고 있습니다. 지나는 차량이 정말 많아졌고, 도시라는 공간의 소음 역시 새롭(?)습니다. 서울까지 약 44㎞ 남았다는데, 서울을 지나기전까지는 앞으로 이런 소음에 익숙해지는 것도 필요할 듯 합니다.

10시를 조금 넘긴 시간에 사찰생태연구소의 김재일 대표를 비롯하여 여러분이 순례 대열에 합류하였습니다. 김재일 대표는 “설사 이 길이 어렵고 쓸쓸해도 우리시대를 구하고 바른 좌표를 지향한다고 생각하기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김 대표는 "오체투지는 잘못된 시대에 대한 저항이며 경종의 울림입니다. 또 고행을 통해 몸과 마음의 생명활동을 느낄 수 있는 생명실천운동”으로 규정하시고, “우리사회가 민주사회라고는 하지만 진실과 진리가 잘못된 정치관습에 의해 파괴되고 있습니다. 인간이 유린된 사회가 현재 우리모습”이라 강조하시네요.

<오체투지 순례는 대화이고>
오늘 점심식사는 도로변 소풍이었습니다. 지나는 시민분들 무슨 일인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지만, 인근에 공터를 찾지 못한 순례단 아무 일 아니라는 듯 도시락으로 즐겁게 식사를 하고 휴식을 취하였습니다. 식사 이후 자리를 마련하고 곳곳에서 대화가 이어지네요. 소풍 나온 풍경입니다.

오후 순례에 앞서 용산 참사 유가족들이 순례에 함께 참여했습니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지난 뒤에는 '서울 촛불'들이 함께하여 열심히 도로에 몸을 눕힙니다. 하루가 마무리 된 이후, '느낌이 새롭다'고 합니다. 자신의 몸을 낮춘다는 것은 분명 새로운 일입니다.

희망이 없다는 탄식에서 '자기연민'이나, 과거에 대한 향수에서 '자기도취'는 우리의 길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의 순례는 자기연민도 자기도취도 아닙니다. 우리 사회가 지나온 여정에 발생한 문제를 냉철하게 바라보고, 이 상황에 대처하였고 스스로 걸어왔던 길을 가슴 아프게 반성하는 길입니다. 지금의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누구 한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공업이기 때문입니다. 작금의 우리 사회 상황이 너무나 긴박하고 절망스럽게 진행되지만, 누구를 향한 외침보다는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성찰과 반성속에서 내안의 평화를 세우고, 우리 사회가 가야 할 새로운 지혜와 방향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그 속에서 희망을 찾고자 합니다.

서울에서 오신 황선일 선생님은 “모든 것이 우리의 소망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 뿐"이라며, "이 시대는 모든 것이 얽히고설킨 상태다. 물론 하루아침에 변해지기야 하겠냐마는, 다만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호응하여 세상이 희망적으로 변화하기를 기대"한다고 합니다. 또한 "배려하고 이해하는 사회"를 희망한다 하십니다.

그렇기에 길에서 길을 묻고 또 묻는 오체투지 순례는 '대화'입니다. 나와 또 다른 나, 나와 사회, 나와 자연, 사회와 사회, 사회와 자연이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이 무엇인지 몸으로 갈구하며 평화를 나누는 대화입니다. 그 대화를 경험한 사람은, 순례가 세상을 바꾸지는 못하지만, 세상이 이제 나를 바꾸지 못하리라는 것을 경험할 것입니다.

오늘의 순례는 인계초등학교 건너편 버스정류장에서 평화의 인사를 나누며 마무리되었습니다.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과제>
점심 휴식이 끝날 무렵에는 용산 참사를 겪으신 유가족 분들이 순례에 참여했습니다. 고 이성수님의 미망인이신 권명숙님은 "용산참사에 대해 알리고 싶었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은 문정현 신부님과 같은 마음일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왔다. 그리고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정부의 왜곡된 사실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고 싶다.”고 하시고 “저의 심정을 이루 말할 수 없다. 가슴이 터질 것 같고 찢어지는 것 같다. 정부가 진실을 은폐하는 자체가 저의 가슴을 도려내는 것"이라며, "참사가 발생한지 100일이 지났음에도 불구하도 이제는 오히려 유가족을 탄압하고 있다. 철거민을 탄압하고 테러범, 폭도로 몰고 있다.” 합니다.

권 선생님은 “저희들이 원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오직 진상규명과 책임자를 문책하고 처벌할 것이며, 구속자들을 석방하기를 요구한다. 이 사건이 아니었으면 우리는 떳떳하고 편안하게 살았을 것이다.”며 강한 어조로 말씀하셨습니다.

생각해봅니다. 많은 국민이 공권력이라는 이름의 폭력에 생명을 다하고, 자신의 삶터에서 내쫓김을 당하는 상황을 생각해봅니다. 자신의 삶을 지키고자 하는 국민이 테러범으로 규정당하고 마땅히 사라져야 할 존재로 규정되는 사회가 정상적인 사회인지 생각해봅니다. 아니, 용산문제를 둘러싼 복잡한 상황과 조건은 제쳐두고라도, 자국민이 엄청난 사태를 겪었음에도 '엄격한 법집행'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제 정신인지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어봅니다. 어쩌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되었는지, 인간의 모습을 잃은 사회가 되었는지 묻고 또 물어봅니다.

그렇지만 한밤중에 경북궁 뒷산에 올라 시름하였다는 나랏님. 녹색성장하면 나라경제가 좋아진다고 말하며, 속도전으로 전국을 공사판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어제는 그렇게 문제 많은 경인운하 기공식에 다녀갔다 합니다. 한마디로 전국의 공사판이고 나붙는 구호는 속도전입니다. 나라 곳곳에 속도전을 강조하는 구호 뒤로 자연이 죽고 사람 생명이 가벼이 여겨지고 있습니다. 희망을 찾지 못하는 탄식소리 늘어날 뿐입니다.

10년 뒤에도 여전히 우리 사회가 "개인주의화, 무한경쟁의 가치관, 물질주의, 극대화된 양극화, 사라진 녹지를 만들기 위한 삽질, 자연이 황폐화" 된 모습일수도 있지만, "지구도, 자원도, 사람에게 다 내주어 욕구충족의 한계가 와 이때는 진정한 사람, 생명, 평화의 길을 찾을 것 / 지금보다 더 순수해지고 가진 것을 나줘 줄 수 있는 세상 / 남과 북의 대립이 없는 세상 /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는 사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 모습을 만드는 것은 우리가 지금의 시대적 과제인 용산 참사에 대한 합리적 해법을 모색하는 것에서 출발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용산참사 그것은 우리 모두의 과제일 것입니다.

<생명의 무게는 얼마나>
도시라는 공간에 맨 흙의 땅을 보는 것도 힘든 세상입니다. 도로변 가로수 밑은 시멘트로 쌓여있고, 도변 인도 역시 콘크리트 벽돌로 도배가 되었습니다. 그 작은 틈을 뚫고 이름 모를 풀들과 민들레 하나 살포시 자라고 있습니다. 민들레에 관한 전설을 들어보면, 민들레는 노아의 홍수에 세상이 잠길 즈음 애가 타서 머리가 하얗게 변하였고, 하나님의 구원으로 멀리 멀리 희망의 씨앗을 날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민들레 꽃말은 '감사하는 마음'이라죠. 사람이 무심코 지나치는 작은 공간에 살포시 씨앗을 내리고, 조금의 땅만 있어도 뿌리를 내리고 미래를 기원하는 희망을 전달합니다. 그 모습이 경이롭기만 합니다.

도로변 가로수 한그루. 어쩌면 너무 흔하디 흔하기에 아무것도 아닐 것입니다. 오늘 순례 휴식 중에 도로변 은행나무 한그루에 묶인 철사줄을 보았습니다. 이 철사줄을 묶은 사람은 뭔가 급박하고 긴요한 수단이었는지 모르지만, 원하는 바를 달성한 이후 철사줄을 제거했다면 좋았을 것이라 생각해봅니다.

누군지 모르지만 목적을 달성한 이후 사라진 철사줄의 주인으로 인해, 은행나무에는 원치 않은 상처가 영구적으로 남겨지게 되었습니다. 사람다운 일을 하면서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말 못하는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 말 못하는 동물도 모두 해와 달 바람이 주는 풍요로움으로 기운을 차린다는 것을 안다면, 그렇게 본디 그대로 살아가게 하는 것도 중요할 것입니다. 순례길 작은 풍경입니다.

<함께하는 사람들>
- 수브라(프랑스) / 이영우 신부 외 1명(천주교사회교정사목위원회) / 나승구 신부(신월동성당 서울) / 이종상 외 1명(오산) / 황선일(서울) / 신연호(수원) / 김재일(사찰생태연구소 대표) / 조채희(두레생태기행) / 주경 스님(서산불교환경연대 대표) / 정우식(불교환경연대) / 차진주(대한불교조계종 사회부) / 김용구(서울) / 권명숙, 김영덕(용산참사유가족) / 문정현 신부 외 1명(평화바람) / 안승길 신부 (부론성당 원주) / 여등 스님 외 3명(삼불주 선원 수원) / 문종석 외 3명(촛불. 서울) 등이 함께하였습니다.

<일정 안내 - 변동 가능>
● 5월 08일(금) : 인계동 인계초교 앞 - 조원동 장안구청사거리 인근
● 5월 09일(토) : 조원동 장안구청사거리 인근 - 파장동 효행공원입구
● 5월 10일(일) : 수원시 파장동 효행공원입구 - 의왕시 오전동 의왕지구대
● 5월 11일(월) : 휴식
● 5월 12일(화) : 휴식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 서중수(불교환경연대), 조계종 환경위원회, 두레생태기행, 김용구(서울), 김태경(수원), 삼불주 선원 (수원), 김미선(김포), 지동성당 등이 후원해주셨습니다.

* 공지 1 : 5월 16일(토) 과천 남태령 경유 서울 구간 순례 시작

* 순례 수정 일정과 수칙은 http://cafe.daum.net/dhcpxnwl 공지사항을 참고 바랍니다.

2009. 5. 7
기도 -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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