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ISG 세계총회 이은 한일수녀회 총회 개최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의 아픔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인권회복을 위해 연대함으로써 신앙과 예언적 삶의 증거자가 되게 하소서. 성모님의 마음으로 다른 이들의 필요에 응답하며 적극적인 사랑의 삶을 살게 하소서.” (제7차 UISG 한일총회 기도문 중)

7차 여자수도회 한일 장상연합회총회가 9월 26일부터 30일까지 한국에서 열렸다.

이번 총회는 지난 5월 로마에서 열린 세계 여자수도회 총원장연합회(UISG) 총회에 이은 각 지역별 후속 총회로 세계 총회의 결정 사항을 각 지역별로 모여 논의하고, 보다 구체적인 실천 방향과 과제를 모색하는 자리다. “경계를 넘어 낮은 곳으로 향하는 마리아가 되자”를 주제로 열린 한일 총회에는 한국 미리내성모성심수녀회, 성가소비녀회, 예수성심시녀회 등 14개 수도회와 일본 11개 수도회 장상이 모였다.

이번 총회에 참여한 수도회 장상들은 마지막 날인 9월 30일 7차 한일총회 결의문을 발표하면서, “전쟁 없는 세상과 창조질서 회복(생태계, 인권)을 위해 국가와 수도회 간 경계를 넘어, 서로 긴밀히 연대할 것”을 다짐하고, “스스로의 ‘안전’으로부터 나와 생명으로 향하는 적극적 삶을 통해 창조질서 회복에 투신하고, 마리아를 본받아 슬퍼하고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모성을 살자”는 실천사항을 제시했다.

이 같은 실천 사항은 다음 8차 총회까지 3년간 양국 수도회 비전이 되며, 이를 바탕으로 한국에서는 오는 10월 열리는 여자장상연합회 총회에서 보다 구체적인 실천 사항을 논의하게 된다.

“경계를 넘어 낮은 곳으로 향하는 마리아가 되자”는 이번 총회 주제에 대해 한국지부 대표 김혜윤 수녀(미리내 성모성심수녀회 총원장)는 “지난 세계 대회에서 이미 한일 장상이 모여 선택한 주제이며, 영성과 실천, 활동과 기도의 균형을 갖춘 ‘마리아’를 지향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정말 주변부로 나가기 위해서는 영성적 뿌리가 깊어야 한다”며, “그것이 되었을 때, 우리 자신과 국경의 문턱을 넘어 우리를 필요로 하는 낮은 곳으로 갈 수 있다. 이번 총회는 모든 수도자들에게 이러한 비전을 제시하기 위한 자리”라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 416기억저장소에서, 하나 하나의 빛으로 기억된 아이들을 바라본다. ⓒ정현진 기자

“한국과 일본의 경계를 넘어,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백성”

총회 일정은 주제 강의와 그룹 대화, 현장 방문, 본회의로 진행됐다. “생명을 위한 한일 연대”, “한국과 일본 교회의 수도자 역할”에 대한 강의에 이어 각 수도회 양성과 사목활동의 사회교리 비중에 대한 그룹 토의를 거친 이들은 셋째 날 현장 방문에 나섰다. 가장 낮은 자리, 한일 양국이 공감해야 할 가난한 이들을 만나는 자리로 이들이 선택한 곳은 안산 세월호 희생자 분향소, 4.16 기억저장소,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이었다.

현장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김혜윤 수녀는 전날 강의와 나눔을 통해 수도자의 사도직이 신학적 기초, 시대 현상에 대한 구체적 데이터를 통해 감정이나 분노에 머무르지 않고 시대적 현상을 냉철하게 바라보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고 깨달았다며, “세월호는 한국 사회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위안부 문제는 한일 양국이 직시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에 서로 용기를 낸 것”이라고 말했다.

▲ 명동 교구청 파밀리아 채플에서 미사를 봉헌하며, 모든 수도자들은 세월호를 기억하는 배지와 노란 팔찌를 찼다. ⓒ정현진 기자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하지 못한 시간이 부끄럽다.... 내 안의 예수를 자유롭게 해 드릴 것”

먼저 세월호참사와 관련된 다양한 활동 결과와 기억, 기록물을 수집, 보관하고 있는 416기억저장소와 안산 세월호 분향소를 방문한 수도자들은 사건과 희생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분향하는 내내 눈물을 흘리고, 궁금한 것을 묻기도 했다.

안산 분향소에서 분향을 마치고 나온 일본지부 대표 니시무라 가쓰코 수녀(원죄없으신 성모의 기사 성프란치스코회)는 “세월호참사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기도하고 있다. 배 안에서 살 수 있다고 해서 정말 간절히 기도했고 지금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며, “분향소에 와서 보니, 2년이 지났는데도 바로 지금 눈앞에서 사고가 난 것 같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와서 기도할 수 있는 기회를 줘 감사하다”고 말했다.

일본군 위안부 희생자와 베트남전을 비롯한 과거와 현재의 전쟁으로 인한 여성과 아이들의 고통을 기록하고 있는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을 방문해 역사 기록을 보고 설명을 들은 수도자들은 전쟁으로 인한 여성들의 고통에 탄식하며 안타까워 했다. 이들은 “전쟁의 부당함이 절절하게 느껴진다”며, 이 세상에서 전쟁이 없어지도록 더욱 기도하며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온 한 수도자는 자신의 공동체 인근에 살던 위안부 할머니를 기억한다면서, “생명이 억압받는 이야기를 듣고 구체적으로 느끼면서 내 안에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다. 이 모든 것을 일본에 돌아가 다른 이들에게 어떻게 전할 수 있을지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수도자는 “그동안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하지 못한 시간이 부끄럽고 죄책감이 느껴진다”며, “세월호 배지와 팔찌를 차고 다니지만, 공동체 내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에게 용기 있게 나의 생각을 전하지 못했다. 지금 이 배지와 팔찌의 의미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 이제는 내 안의 예수를 자유롭게 해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 "전쟁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위하여"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을 둘러본 뒤, 한 수도자가 나비 모양 종이에 바람을 적어 넣었다. ⓒ정현진 기자

이날 현장 방문의 마지막 일정은 명동대성당 자비의 문 앞 기도와 미사로 마무리됐다. 미사를 집전한 염수정 추기경은 생명과 생태계 파괴에 맞서고 약자와 가난한 이들과 연대하는 수도자들의 태도에 대해 “연대는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시작되는 것이며, 몰이해와 갈등이 있는 자리에서 함께 어울리는 법을 터득할 때, 생명과 약자를 돌보는 일이 이미 시작된다는 것을 기억하라”고 당부했다.

염 추기경은 “수도자들이 겪는 희생과 인내, 귀한 봉헌이 교회를 충만한 생명력으로 채울 것”이라면서, “생명을 살리는 일에 봉사하고자 한다면 먼저 삶의 자리에서 생명력 있게 살아나야 한다. 생명을 위한 봉헌생활로 세상과 교회에 연대하고 있음을 잊지 말라”고 말했다.

UISG는 1965년 제2차 바티칸공의회 뒤 설립된 교황청 인준 기구다. 현재 전 세계 1900여 개 수도회가 가입돼 있으며, 3년마다 로마에서 총회를 연다. 세계 총회 뒤에는 각 지역별 총회가 열리며, 동북아시아에서는 한국과 일본이 함께 지역 총회를 연다. 한일장상연합회는 1998년부터 시작됐으며, UISG 한국지부에는 현재 21개 수도회가 가입돼 있다.

올해 5월에 열린 세계 총회는 “생명을 위해 세계적 연대 짜기”를 주제로 열렸으며, 자살과 낙태, 난민, 환경파괴 등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생명과 생태계 문제의 심각성을 공유하고, 이에 대해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기로 정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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