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4일, 91일차 생명평화 오체투지 순례

순례길에 들려오는 세상살이 소식이 험악합니다. 기억하기 싫지만 과거의 익숙하였던 풍경으로 돌아간다는 이야기도, 교과서 민주주의에도 없고 기억에도 없는, 날이 선 증오의 풍경에 좌절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희망을 품어야 할 시간이란, 다시 말해서 절망이 우리 목구멍을 움켜쥐고 있을 때'라고 합니다. 봄이 오기 전에 가장 춥고, 새벽이 오기 전에 가장 어둡다 하였습니다. 희망을 찾기 위한 기도 걸음. 함께 가는 걸음입니다.

<우리가 이 나라의 주인이다>
오늘 순례단은 병점초등학교 앞 버스정류장에서 하루를 시작하였습니다. 화성지역 시민사회단체(화성환경연합 및 매향리주민대책위, 화성생명평화포럼 등) 관계자들이 아침 발걸음을 가볍게 해주셨고, 아침부터 많은 사람들이 주변의 시선과 상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에 집중합니다. 도로변의 시민들은 순례단 풍경에 낯설어하면서도, 설명을 듣고 '아이고, 저렇게 해서 언제 가나"'고 걱정일 뿐입니다.

시민들의 걱정 어린 시선에도 순례 참여자들 소리 한번 없습니다. 오전 시간이지만 9시를 넘으면 이미 뜨거워진 햇살이 부담스럽고, 휴식시간마다 물을 찾게 되지만, 언제나 온화한 미소가 함께할 뿐입니다. 누워 있는 상황에서 바로 옆으로 큰 차량이 지나도, 신호등 색깔이 바뀔때마다 쏟아지는 차량의 홍수에도 멈춤없이 징소리에 발을 맞추고 나아갈 뿐입니다. "이렇게 누워 순례단하다고 뭐가 변하는가?"를 묻는 질문이 많지만, "순례를 통해 세상을 바꾸기보다, 나 자신을 먼저 바로 세우겠다"는 서원이 있기에 가능할 것입니다.

내가 바로 서야 세상을 변화시킬수 있다는 작은 믿음. 그 순박한 믿음이 희망입니다. 내가 바로 서야 내 삶과 사회의 주인이 될 수 있고, 각자 '답게'살아가야만 국민이 주인일 것입니다. 국민이 주인된다는 것. 그것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국민이 진정 주인행세를 할 수 있는 나라가 되는 것 - 자기물건을 관리하라고 맡겼을 때, 자기 것임에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면 주인이 아니다(오현철)', '국민이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는 것/내가 소중하듯 다른 이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나승구 신부)', '주인은 우리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주체의식을 가지고 스스로 자각 하고 권리를 표현함으로써 정부의 마음을 변화시켜야 한다(이영우신부)', '국민은 의견을 항상 표현하지만 모이기만 하면 연행한다. 국민의 목소리가 잘 전달이 되어야 국민의 주인이 된다(박상미)', '국가가 약자의 편에 서는 것이 국민이 주인이 되는 것이다. (한경아)', '상대방을 배려하면서 각자 자기가 하는 일에 주인이 되는 것(진창원)'.

'사람이 사람답게 살고 생명이 살아 숨 쉬고 평화가 넘치는 세상이 되는 것(김경남)', '국가는 국민이 없으면 의미가 없다는 것(이창수)', '국민 각자가 주위의 모든 것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장동범)', '진정한 민주주의가 되는 것 - 서로 타협하고 이해를 통해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김준석)', '주인이란 권리와 의무가 함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의무만 있다(최정설)', '참사람이 사는 세상/사람이 대접받는 세상(안영미)', '내가 아닌 이웃이 소중하다. 네가 주인이 되는 것(이원욱)', '우리 모두가 다 귀한 사람이라는 것(이선우 수녀)', '우리나라 국민은 현재 주인이 아니다. 이명박이 주인이다(신다인.13살)'이라고 합니다.

소통이 아닌 불통의 시대. 광장의 축제가 사라진 시대. 그러나 내 자신의 마음에 존재하는 축제의 촛불 하나를 바로 세우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향하는 희망이 있기에 오늘의 순례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전쟁터구나, 전쟁터>
하루 종일 같은 풍경입니다. 아침 출발한 병점초등학교 앞 도로를 제외하고, 병점에서 수원시 초입에 이르는 비상활주로까지 풍경이 하루 종일 똑같습니다. 직선으로 곧게 난 비상활주로 끝이 아스라이 보이고, 순례단 옆 도로 풍경은 활주로를 질주하는 차량으로 가득합니다.

날이 뜨거워지니 순례자들 쉬는 시간마다 땀이 비오듯 흐릅니다. 하지만 함께 나누는 평화의 발거음에 웃음이 떠나지 않습니다. 쉬는 시간마다 무릎 고통에 얼음주머니를 달고 지내는 수경스님. 그래도 끝까지 가겠노라며 걱정 하지 말라고 진행팀을 안심시키시네요.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오늘 순례지는 비상활주로 앞에서 시작하여 비상활주로 끝 부분에서 종료되었습니다. 하루 종일 하늘에는 비행기 굉음이 하늘을 찟어 삼키듯 울리고, 땅에는 지축을 흔드는 차량소리가 다가왔다 사라집니다. '하늘에는 전투기 소음 땅에는 차량소리'. 쉬는 시간마다 서로간의 말소리도 잘 들리지 않을 때도 있으니, 이 주변 주민들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알겠습니다.

소음이 얼마나 시끄러웠는지, 전종훈 신부님은 "이게 전쟁터구나 전쟁터. 하늘에서는 비행기 소리, 땅에서는 차량 소리.. 누워서 듣고 있으면 전쟁터 같네"라며 힘겨워하시더군요. 전 신부님뿐만 아니라 오늘 참가자들 모두 비행기 굉음에 참 힘겨웠던 하루였습니다.

용인에서 오신 장동범 님은 "사람과 사람사이에 자본, 돈이 끼어들면서 모든 가치가 돈으로 바뀌었다. 순례가 큰 변화를 줄 것이라고 생각지는 않지만 작은 홀씨가 될 것이고 적어도 스스로 반성하는 계기가 되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며, “중학교 1학년 3학년인 우리 아이들이 서로 존중하면서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 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차별이 아닌 차이를 인정하는 세상에 살기를 희망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남을 생각하고 보살펴 주어야 할 것이고, 남도 배려해야 할 것입니다. 이는 낮춤으로써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 길을 오늘의 순례에서 경험하시겠다 합니다.

점심시간. 황량한 비상활주로를 잘 모르시는 참가자들이 주변에 식당 하나 없는 풍경에 당혹스러워합니다. 일부 참가자들께서 점심 도시락을 준비하지 않고 참여하여 식당을 찾지만, 주변은 말 그대로 황량한 들판. 논밭 이외에는 멀리 보이는 도시 외곽. 어쩔 수 없이 차량을 이용하여 식당을 찾아나서 점심을 해결하시더군요.

<이명박 대통령님. 어른답게 말과 행동을 해주세요>
점심식사 이후. 매섭게 올라오는 도로의 열기에도 순례 참여자는 계속 늘어났습니다. 약 150여명 이상의 참여자들이 징소리 하나에 몸을 곧추세우고 앞을 응시합니다. 그리고 몇걸음 내딛고 다시 자신의 몸을 낮추기를 반복합니다. 지나는 차량 소리도, 하늘을 삼킬 듯 울리는 비행기 소리도 순례길을 멈추게 하지 않습니다. 오직 한번의 징소리에 집중하고 자신을 바로 세우고자 하는 순례자들만이 소리없는 함성으로 길을 갈 뿐입니다.

오후의 쉬는 시간. 산돌학교 학생들을 필두로 청소년들은 더위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무더위에 도로에 눕는 낟선 경험에도, 쉬는 시간이면 항상 웃음소리가 떠나지 않습니다. 남휘현(17세 산돌학교 남양주) 학생은 “오체투지 해보니 마음이 차분해져요. 요즈음 세상이 여러모로 안 좋다고 하는데 스님, 신부님께서 스스로 참회하시고 계신다고 생각해요 사람들도 이를 통해 조금씩 변해 가겠죠.”라고 어른보다 더 어른스러운 이야기를 합니다.

“사람보다 돈, 물질을 중요시해서 돈만 되면 환경파괴를 일삼고 최근 용산참사까지 이어지고 있어요. 어른들께서 각자의 본분을 잘 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서로 사랑하면서 사는 것이 사람들이 해야 할 일 같아요. 그래서 이명박 대통령께 부탁해요. 어른답게 말과 행동을 해 주셨으면 좋겠고, 부자들만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아셔야 하며, 국민들을 잘 배려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부디 이명박 대통령과 정치인들이 아이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훌륭한 정치를 하였으면 좋겠습니다.

평화동에서 온 학생들은 사탕으로 목거리를 만들어 성직자들에게 선물을 합니다. 수경스님과 전종훈 신부님 이런 선물을 처음 받으시는지 어색해하면서도 얼굴에서는 웃음이 떠나지 않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참여자들은 늘어나고, 드디어 진행팀이 가지고 다니는 소형 앰프로도 끝까지 소리가 전달되지 않을 정도로 대열이 길게 이어졌습니다.

혜수 스님의 징소리도 부족하여 또 다른 징이 등장하고, 동시에 징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징소리 한번에 발걸음 이어지고 다시 도로에 몸을 낮추는 모습이, 강물이 끊임없이 흐르면서 바람결에 따라 일렁이는 모습입니다. 강물은 멈춤 없이 흘러가며 늘 깨어있듯이,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을 찾아가는 순례자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자전거를 끌고 온 참여자, 수녀님들, 지역의 촛불 등 일일이 거론하기 힘들 지경으로 오후 순례길을 함께 하였습니다.

소리 없는 평화의 함성으로, 길에서 길을 찾는 발걸음이 어느새 수원에 도착하였습니다. 오후 순례 중에 머리 위 간판으로 수원 이정표가 말없이 지나갑니다.

오늘 순례는 비상활주로 끝 부분에 도달하여 무탈하게 종료되었습니다. 순례단은 오늘 일정이 종료된 이후 수원 버드내 성당으로 이동하여 미사를 진행하였습니다. 순례단은 이제 2일간의 휴식을 취하고 5월 7일(목) 다시 순례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함께하는 사람들>
- 수브라(프랑스) / 장경훈 외 8명(화성) / 이영우 신부 외 3명(천주교사회교정사목위원회) / 나승구 신부(신월동성당 서울) / 이원욱 외 1명(민주당화성을) / 장동범 외 2명(용인 수지) / 이선우 수녀(바로로딸 수녀원 서울) / 최정설 외 30명(산돌학교 남양주) / 이효재(대전) / 한경아(천주교여성공동체) / 박상미(정의구현사제단) / 모지희 외 2명(서울) / 노병섭 외 6명(전교조전북지부) / 윤현지 외 1명(신월동) / 최정옥 외 35명(평화동 성당) 등이 함께하였습니다.

<일정 안내 - 변동 가능>
● 5월 07일(목) : 수원시 권선동 비행장삼거리 - 인계동 인계초교앞
● 5월 08일(금) : 인계동 인계초교앞 - 조원동 장안구청사거리 인근
● 5월 09일(토) : 조원동 장안구청사거리 인근 - 파장동 효행공원입구
● 5월 10일(일) : 파장동 효행공원입구 - 의왕시 오전동 의왕지구대
● 5월 11일(월) : 휴식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 장윤정(분당), 전교조전북지부, 신연호, 황수진(온양), 유임경(젬마), 수원도토리학교, 화성환경운동연합, 매향리주민대책위, 김구희(김포), 수원버드내 성당 등이 후원해주셨습니다.

* 순례 수정 일정과 수칙은 http://cafe.daum.net/dhcpxnwl 공지사항을 참고 바랍니다.

2009. 5. 4
기도 -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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