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한 말은 이제 그만

(캄란 초드리)

올해는 457년 만에 처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일과 예언자 무함마드의 생일이 12월 25일 같은 날에 기념되면서 시작되었다.

성탄 전야에 라호르 시내에서 그렇게 화려한 퍼레이드가 진행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아랍 복장을 한 주민들이 동방에서 온 세 왕으로 분장하고 낙타를 타고 지나갔다.

이러한 분위기는 이슬람의 에이드 알-아다 축제가 9월 12일에 끝나고, 가톨릭 신자들은 9월 8일의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을 기념해 마리아마바드로 사흘에 걸쳐 순례를 하면서 이어졌다.

전에 그러던 것처럼, 이슬람인들은 마리아마바드(마리아의 도시)에 있는 이 성모 성지에 음식과 화려한 스카프(뒤파타)를 기부하면서 성모에게 기도하며 전구를 청했다. 종교간 대화는 이런 모습으로 구현되고 있다.

마리아는 이슬람에서도 예수의 어머니로 존경받는다. 이슬람에서 예수는 하느님은 아니지만 의인이다. 쿠란에는 마리아를 34번이나 직간접으로 언급한다.

종교 박해와 종파간 폭력, 차별로 고통받는 파키스탄에서 서로의 주요 종교 축제를 함께 기념하는 드문 본보기들을 보면 파키스탄의 긍정적 이미지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종교간 대화를 맡은 교회 위원회들은 내내 힘든 과제를 떠맡고 있다.

종교간 대화 세미나와 행사 만찬에 정기적으로 참석하는 이슬람 성직자들이 하는 역할이 의미 깊다는 것은 전혀 부인할 수 없다. 이들 대부분은 그리스도인 집단거주지에 대한 공격사건들 뒤로 특히 평화를 회복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위원회들의 활동이 제한되어 있고 할 일이 더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먼저, 해당 위원들은 정해진 행사 장소를 벗어나야 한다. 이러한 종교간 대화 모임은 모두 교회 건물이나 양성소 안에서만 이뤄지고 있다. 연사들도 늘 같은 인물들이다. 하는 말도 기계처럼 똑같다. 뻔한 말이 늘 나온다. 늘 “한 정원에 핀 여러 색깔의 꽃들”을 말한다.

한 가톨릭 주교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런 자리에 모이는 성직자들 대부분은 신문에 날 단체사진을 찍는 데 더 관심이 많다.” “(이슬람 안의 소수 종파로 탄압받는) 아흐마디파의 고통을 포함해 우리가 여전히 다룰 수 없는 특정 화제들이 있다.”

나는 작년에 유하나바드에 있는 교회 두 곳이 자살폭탄 공격을 받았을 때 한 사제가 절망적으로 내뱉은 말을 여전히 기억한다. 유하나바드는 파키스탄에서 가장 큰 그리스도인 빈민촌이다. “이번 유혈사태로 종교간 대화에 큰 문제가 드러났다. 아마도 종교간 대화는 실패한 것 같다.”

교회가 자금을 댄 학생들을 위한 평화 프로그램은 관심을 둬야 할 또 다른 문제다.

▲ 9월 11일 라호르에서 한 파키스탄인이 이슬람의 에이드 알-아다 축제를 위해 가축시장에서 낙타를 산 뒤 자신의 오토바이 뒤에 끌고 있다. (이미지 출처 = UCANEWS)

최근의 파키스탄 카리타스 연감에 따르면, 세 교구 안의 학교 40곳에 평화 클럼 모임이 있다. 이 중에는 학업성적이나 윤리 교육에서나 수준이 높은 최상급 학교들이 포함돼 있다.

폭력에 기울지 않도록 이미 교육받은 이 어린이들 가운데에서 평화의 사도를 만든다는 것이 무슨 선익이 있는가?

이런 프로그램은 마드라사(이슬람 학교)에서 필요하다. 가난한 어린이들이 더 많은 의식화와 인문 교육을 필요로 하는 곳이다.

몇몇 그리스도교계열 시민단체들이 이런 마드라사에서 평화 교육을 하는데, 학교 당국과 이런 프로그램 진행자들 사이에 충돌이 있었다는 보고는 하나도 없었다. 교회 기관들은 이슬람 사원 학교들에 다가감으로써 정부가 극단주의자들과 싸우는 것을 도울 필요가 있다.

이와 비슷하게, 라마단(이슬람의 단식 성월) 기간은 그리스도인들이 이웃 이슬람인들에게 이프타르 저녁식사를 대접할 완벽한 기회다. 각 본당과 가톨릭 학교들은 이웃에 있는 이슬람 신자들을 초대해서 함께 먹자고 해야만 한다. 쌀밥 한 그릇만으로도 그 어떤 호텔의 화려한 뷔페보다 더 친밀감을 이룰 수 있다.

지난 3년간, 라호르에 있는 성공회 대성당에서는 아침식사 전에 성당 구내에서 이슬람인들을 위한 기도회를 하고 있다. 파이살라바드 교구의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대성당도 같은 일을 하고 있는데, 다른 성당들도 이를 따라 해야 한다.

교회는 몇몇에 국한된 모임만 여는 관행을 넘어서야 한다. 대중에게 공개된 종교간 세미나들을 본당과 가톨릭 학교에서 열어서 근본주의 사고방식이라는 우리의 최대 문제에 맞서야 한다.

그리스도교계 병원과 학교들은 이미 지역사회를 하나로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곳들은 서로 다른 종교의 지도자들이 모이는 최선의 장소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진짜로 변화를 일으키려면, 그저 연설과 상투적인 말만 하고 끝나는 일보다는 이슬람인과 그리스도인 사이에 실제로 화합을 일구는 공동 행동과 행사에 교회 자금과 노력을 쏟아야 한다.

(캄란 초드리는 가톨릭 평론가로서 라호르에 살고 있다.)

기사 원문: http://www.ucanews.com/news/the-enigma-of-interfaith-harmony-in-pakistan/77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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