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선의 ‘세븐’ - 8]

미국의 천연가스 유통회사였던 인터노스와 휴스턴 내추럴 가스회사는 1985년 합병을 결정한다. 당시 휴스턴 내추럴 가스의 대표였던 케네스 레이는, 합병한 회사의 대표로 취임했다. 회사의 이름은 엔론(Enron)으로 정했다. 회사를 크게 키우고 싶었던 그는 얼른 빚을 갚으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컨설팅 회사 맥킨지에서 일하던, 제프리 스킬링을 CEO로 영입했다. 하지만 스킬링은 정상적인 방법보다는, 더 쉽고 빠른 방법으로 부채를 줄여 나갔다. 장부를 조작한 것이다.

온갖 유령회사가 설립되었고, 부채는 유령회사로 넘어갔다. 새로 뛰어든 인터넷 사업은 수익이 거의 없었지만, 그들은 다시 유령회사를 설립하는 방법으로 이익을 부풀렸다. 심지어 엔론은 미국 7대 기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캘리포니아의 발전소를 인수한 다음에는 전기요금을 무려 8배나 올렸다. 전기공급을 줄이면서, 샌프란시스코 등 캘리포니아 북부에 대규모 정전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2000년 한 해에만 캘리포니아 전역에서 제한 송전이 무려 27회나 발동되었다. 주 정부는 애꿎은 주민들에게 절전을 하라며 닦달하기도 했다. 당시 엔론이 전기요금으로만 챙긴 이익이 무려 100억 달러, 우리 돈으로 12조 원에 달했다.

▲ 엔론의 로고. (이미지 제공 = 박한선)
이런 식으로 이익을 챙겼음에도, 회사의 부채는 눈덩이처럼 커갔다. 이미 포화에 이른 인터넷 사업에 뛰어들어서 큰 손해를 보았고, 회사의 자금을 도박 수준의 파생상품 거래에 투자해서 손실을 입기도 했다. 엔론은 계속 유령회사를 설립해서 부채를 떠넘겼다. 그들은 유령회사의 이름에 자신의 아내 이름이나 영화 스타워즈에 등장하는 외계 종족 이름을 붙이는 등, 믿기 어려운 행동을 계속했다. 결국 2001년, 그들이 만든 또 다른 유령회사, 랩터 조합의 실상이 드러나면서 15년간 이어진 탐욕의 행진은 끝이 나게 되었다.

칠죄종 중에 하나인 아바리티아(avaritia)는, 우리 말로는 인색 혹은 탐욕으로 번역된다. 인색과 탐욕은 조금 다른 개념이지만, 그 근원은 같다. 자신의 것을 지나치게 아끼고 나누지 않으려는 마음이 인색이라면, 남의 것을 욕심 내어 가지려는 마음은 탐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종종 인색한 사람은 탐욕스럽기도 하다. 성경에서는 욕심이 죄를 낳고, 죄는 사망을 낳는다고 경고하고 있지만, 탐욕스러운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탐욕은 결국 자신의 영혼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삶도 망가뜨리는 큰 죄악이다.

엔론도 역시 그랬다. 엔론사의 고위 임원들의 삶은 점차 방탕해졌다. 그들은 있지도 않은 이익을 나누어 가졌고, 허황된 과시와 난잡한 타락으로 하루하루를 채워 갔다. <데일리 텔레그래프>의 보도에 따르면, 사내에 불륜이 만연했고, 임원들의 이혼이 전염병처럼 유행했다. 임원들은 휴스턴에 엄청난 대저택을 지었고, 회사 앞에는 고급 스포츠카들이 가득했다. 회사는 매년 실적이 낮은 15퍼센트의 직원을 무조건 해고했지만, 실적이 좋은 직원에게는 엄청난 성과급을 주었다. 물론 모든 회계처리가 다 부정으로 가득했기 때문에, 실적이 제대로 평가될 리 없었다. 심지어 회계 부정을 눈치 채고 이를 정직하게 보고한 부사장은, 오히려 모략을 당해서 회사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탐욕은 배신과 사기, 거짓, 위증, 불안, 폭력, 냉담의 일곱 딸을 낳는다. 자본주의 사회는 결국 개인의 욕심이라는 에너지를 가지고 움직이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이러한 위험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 엔론사의 영업활동이 바로 이러한 배신과 사기, 거짓, 위증으로 가득했다. 엔론뿐만이 아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셀 수 없이 많이 찾을 수 있다. 아마 당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도, 어느 정도는 이러한 탐욕의 일곱 딸이 활약(?)하고 있을 것이다. 

▲ '칠죄종 탐욕(뇌물을 받고 있는 판사)', 히에로니무스 보슈. (1450-1516) (이미지 출처 = commons.wikimedia.org)

게다가 이러한 탐욕은 결국 불안과 냉담, 폭력도 낳는다. 사실 엔론이 무리하게 전기요금을 올린 것은, 다른 분야의 적자를 덮으려는 목적 때문이었다. 엔론은 전기요금으로 큰 이익을 얻었을 뿐 아니라, 그와 관련된 파생상품 거래를 통해서 엄청난 이익을 챙겼다.(물론 다음 해에 이보다 더 큰 손해를 입었다) 손실에 대한 불안은, 결국 약자에 대한 냉담과 폭력을 불러온다. 엔론의 임원이 원래부터 타고난 악당이라서, 정전사태를 불러올 만큼 전기요금을 올렸던 것이 아니다.

사실 이러한 탐욕은 개인이나 기업에만 해당하는 문제는 아니다.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지만, 가정과 학교, 교회, 심지어 국가도 이러한 탐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어떤 면에서 기업은 다양한 법과 제도로 통제받고 있지만, 다른 조직은 오히려 이런 규제가 적기 때문에 더 큰 유혹을 받을 수도 있다. 처음부터 이익추구를 위해서 설립된 기업도 아니었는데, 결국 추악한 탐욕으로 인해서 몰락해 버린 자선단체나 종교기관의 이야기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탐욕을 막는 칠추덕은, 바로 사랑(caritas)이다. 다시 말해서, 자기 희생과 자선, 관대함 등을 통해서 이러한 탐욕의 악순환을 막을 수 있다. 원래 카리타스는 그리스어 아가페를 라틴어로 옮긴 것이다. 하지만 카리타스의 실천은 바로 자선과 자비이기 때문에, 오늘날 카리타스에서 유래한 영어 단어 채리티(charity)는 주로 자선이라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엔론의 사장보다 더 지독한 인물이었던 앤드루 카네기. 그는 어린 시절 기차역에서 잔심부름을 하던 소년이었지만, 결국 역사적인 철강왕이 되었다. 그 원동력의 일부는 가차없는 시장 독점과 노동자에 대한 탄압이었다. 사실 그도 어쩔 수 없는 탐욕의 노예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말년의 카네기는 이를 반성이라도 하듯이, 엄청난 규모의 자선사업을 하였다. 미국 전역에 2500개의 도서관을 세우고, 24개의 대학을 설립했다. 그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잉여의 부는 그 소유자가 평생 동안 공동체의 선을 위해 관리해야 하는 신성한 식탁이다.”

▲ 앤드루 카네기가 설립한, 피츠버그의 카네기 멜론 대학. 지금까지 24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이미지 출처 = commons.wikimedia.org)

비록 공과가 엇갈리는 카네기이지만. 이웃에 대한 그의 자선과 자비가 축재 과정에서의 지독한 잘못을 조금은 덮어 주는 것은 아닌지. 그는 결국 자신의 재산의 90퍼센트 이상을 모두 사회에 환원했다. 우리는 모두 탐욕에 지배받는 인간이다. 이는 인간인 이상,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게다가 모든 것을 경제적 가치로 평가하는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이상, 이러한 탐욕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카네기는 자신의 삶을 통해서, 이러한 탐욕의 세상에서 그나마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현명하고 선한 방법인지 알려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박한선
성안드레아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영성과사회정신연구소 연구소장
성안드레아병원에서 마음이 아픈 환자를 돌보는 한편,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정신장애의 신경인류학적 원인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다.
현재 호주국립대에서 문화와 건강, 의학 과정을 밟으며, 아보리진 사회를 조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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