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일, 89일차 생명평화 오체투지 순례

하루 순례가 끝난 시간. 스님께서 "그래, 부처님은 잘 오셨나요?" 묻습니다. 그 질문을 들은 순례자. 한참을 머뭇거리며 생각하더니,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답합니다. 얼마 전 예수님 부활하셨고, 오늘 부처님 오셨지만 세간살이 삶은 여전히 힘겹습니다. 순례단은 오늘 하루만이라도 이 땅에 부처님 당신의 가르침으로 생명과 평화의 기운이 넘치기를 기원합니다.

<부처님 오신날 발걸음 가볍게>
오늘은 불기 2553년 부처님의 탄생을 기리는 뜻 깊은 날입니다. 부처님은 나와 이웃, 자연은 하나임을 말씀하셨고, 생명을 존중하는 맑고 발은 마음들을 인도해 주셨습니다. 이 뜻 깊은 날에 순례단은 비록 번듯한 차림으로 사찰이 아닌 길거리에서 한 송이 청아한 연등을 들은 듯, 마음속 평화의 등불을 켜고 지극한 생명의 서원을 담아 발원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부처님 오신날. 지난 2일을 묶었던 송현 성당을 나서, 오산시 한 교회 신축 건물 공사장에서 하루를 시작 하였습니다. 부활절이 그러했고 다른 여러날이 그러하듯 오늘 하루 역시 순례단 풍경은 다름이 없습니다. 순례자들의 정신을 깨우는 죽비를 잡고 계시는 혜수 스님은 "부처님께서는 길에서 전법하라고 했으니 나에게 '잘하고 있구나'”라고 할 것이라 합니다.

하루 시작하는 길. 부처님 오신날을 기려 도로 곳곳에는 연등이 걸려 있고, 육교에는 간판이 부처님 오신날을 알리고 있습니다. 연휴의 토요일이라서 그런지 남쪽으로 향하는 1번 국도 건너편 진행방향이 하루 종일 정체입니다. 그 행렬을 보며 도대체 어디로 가는 것일까 궁금하기도 하지만, 순례단 진행방향의 차량이 그리 많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할 뿐이었습니다.

순례를 출발 한지 얼마 되지 않아, 이주노동자 몇 분이 함께 순례에 참여했습니다. 이주 노동자들을 위한 상담과 조직 등을 지원하는 오산 노동문화센터의 장창원 목사는 “이주 노동자들은 실질임금 삭감, 노동권 제약으로 인한 사실상 노예노동을 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불법거주를 문제 삼아 비인권적 대우를 하고 있다. 엊그제도 중국인 노동자 1명이 자살을 했다.”며 안타까워하시고 “우리는 노동을 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 하지만 노동이란 사람이 숨 쉬는 것처럼 해야 합니다. 노동은 기본적 권리이며 가장 큰 기도.”라고 강조하십니다.

장 목사님은 “오늘은 부처님 오신 날이다. 부처님이나 예수님, 스님이나 신부님 모두 한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을 찾아가는 순례단의 뜻이 잘 이루어졌으면 좋겠다”고 하십니다.

<빗방울 내리고... 집 떠나면 고생이죠?>
오전 내내 그렇게 많지 않은 차량과 함께 한 순례단. 고생은 점심 이후 시작되었습니다. 도로변 작은 공터에서 점심 식사와 휴식을 취하고 오후 길을 나서는 순간. 하늘에서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오전 휴식 시간에 본 개미집. 개미들이 한창 집 수선에 한창입니다. 그 모습을 보며 비가 올 것이라 생각하고 예측하였지만 너무 일찍 비가 왔습니다. '어라. 기상 예보는 3시부터인데...'라는 진행팀의 탄식에도 불구하고 빗방울을 시간을 갈수록 더해지고, 한 구간이 끝나기도 전에 온 몸은 빗물에 젖어들었습니다. 미처 우비를 준비하지 못한 참여자들 역시 온 몸으로 도로의 빗물을 말끔히 훑어 내려갑니다.

비가 내리는 상황에서의 순례는 참 어렵습니다. 예전 하루 소식에서 전한 바와 같이 도로변에 쌓인 오물이 빗물과 함께 흐르고, 도로 자체가 불투수층이니 적은 양의 비가 내려도 도로는 금방 물이 흐르기 때문입니다. 오전 내내 한산하던 도로 상황도 오후에는 웬일인지 차량이 쏟아져 나와 순례단을 어렵게 하였습니다.

도로와 전철 구간이 겹치는 지점에서는 하도 소리가 시끄러워 순례자들이 징소리를 듣지 못하고 도로에 그대로 누워있는 일도 몇 번 있었습니다. 잠시 징소리를 듣지 못한 전종훈 신부님. 씩 웃으시며 금새 몸을 곧추세웁니다. 그 큰 징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비오는 날 도로의 차량 소리가 얼마나 시끄러운지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비가 오든 햇살이 높게 나오든 순례자들은 작은 미동도 업습니다. 오직 한 걸음 한 걸음에 집중할 뿐이며, 자신을 바로 세우기 위한 기도에 집중합니다. 오늘로 우리 사회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 촛불 1주년이 되었다 합니다. 전국에서 오늘 집회가 많다는 소식이 들리지만, 이곳 순례길은 한없이 평온한 마음으로 자신의 길을 찾기 위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오후에 순례단에 참여한 지역의 안민석 국회의원(민주당). 체육복과 우의를 준비해서 입고 다른 참가자와 같이 몸으로 길에 생명과 평화를 써 내려갑니다. 안민석 의원이 부디 오늘의 경험을 잊지 않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정치, 생명을 살리는 정치, 평화를 일구는 정치를 하기를 기원합니다.

스스로 '촛불'이라 말씀하시는 오산에서 오신 김윤경 님은 “오체투지는 제가 해오던 운동방식인 투쟁과는 많이 다른 것 같다.”고 하시고 “생명과 평화가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가장 도외시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 이유는 인간이 본질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더 많이 가지려는 경제적 욕심 때문에 상식, 양심, 인정을 잊어버리고 살고 있다. 도덕성은 돈 앞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고가 국민들에게 전염되고 있다.”고 하시고 “사람은 혼자 살아 갈 수 없다. 둘, 또는 여럿이 함께 의지하면서 가야하는 길이 사람의 길이다. 가족, 이웃, 고장 나아가 나라가 함께 더불어 살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씀하십니다.

교정사목을 하시는 천주교한국외방선교회의 오현철 님은 "전과자가 아닌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고, 사람들을 만나면 마음으로 만나면 서로 배워가는 것을 느낀다. 우리 사회가 전과자에 대한 사회적 불신이 많아 힘들어한다"고 안타까워 하시며, "사회와 교도소의 벽이 높은 것 같다. 좀 낮아졌으면 좋겠다. 발전적인 방향으로 생각했으면 한다. 요즘 늘어나는 생계형 범죄는 나도 언젠가 저럴 수 있는 것이다. 철거민들은 철거 대상이 될줄 몰랐다 한다. 소통으로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고 사람이 서로 어울려 살았으면 좋겠다. 오체투지가 그런 벽을 허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인터넷으로 보고 '살아가면서 추구하는 가치를 찾는 방법을 알고 싶어' 고양에서 오신 한광석 님. 순례 중에 큰아이한테서 문자가 왔다 합니다. “아빠, 집 떠나면 고생이죠?”. 한 선생님 그 문자 보면서 '마음도 집이고 지구도 집이라는 생각을 들었다'고 합니다. '한반도 운하 등을 추진하려는 MB 정권은 집을 부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소고기 수입도 그렇고... 물질을 쫓는 것이 결국 집을 부수는 것이 아닌가 한다. 마음의 가치를 부수는 것'이라 안타까워하시면서, 'MB 정권 이후 우리 사회의 가치가 변하고 있다. 노동가치가 아니라 물질 가치에 치우쳐 있다'면서, 촛불 1주년이라는 오늘과 관련하여 '아이들은 정치를 본 것이 아니라, 소고기라는 먹을거리에 관련된 정책 그 자체가 나쁘다는 것을 알았다. 촛불은 꺼진 것이 아니라 마음에 남아 있다. 이 정부가 남은 기간만이라도 국민의 마음을 받아들이고 헤아렸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오늘 순례는 무탈하게 외삼미동 입구에서 마무리되었습니다.

<온 세상에 자비를.. 제발 자비를.. >
세간에 '부처님은 이 땅에 오셨는가?'를 묻는 이들이 많습니다. 자비와 나눔의 정신은 사라지고,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 아집을 택한 이들이 많습니다. 맑은 청정의 향 대신에 낡고 썩은 권력의 냄새가 천지를 진동합니다. 감동을 주지 못하는 정치는 증오를 낳고 있습니다.

오늘 순례단은 부처님 이 세상에 오신 뜻처럼, 분단과 대립의 땅에 상생과 공존을, 증오와 갈등에는 화합을, 세간에 국민을 몰라보고 주인노릇 하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인 못난 정치인들의 삼독에서 벗어난 깨우침을 나누어주시기를 기원 드렸습니다.

당신이 삼라만상의 지혜와 나눔의 위해 부귀를 버리고 길을 나선 것처럼, 순례단 역시 길 없는 길을 가겠습니다. 사회적 약자의 아픔과 함께하고, 말 못하는 뭇생명과 사람의 차별을 벗어나 천지가 한 뿌리며 만물이 한 몸이라는 가르침을 받들겠습니다. 남과 북이 한 생명이고, 동서남북 동포를 한생명 공동체로 알겠습니다. 경제적 가치가 제일이 아니라 내 안의 평화를 세우는 일에 주력할 것이며, 끝없는 하심으로 참된 생명의 길을 찾아 나서겠습니다. 당신이 세운 사람의 길을 찾아 나서겠습니다.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굳건한 신심으로 길을 가겠습니다.

만일 부처님께서 살아계셨다면 이 시대에 무슨 말씀을 하셨을까 순례자들에게 묻습니다.
"밤에 몸을 씻는 것 보다 네 마음을 먼저 씻어라(신의주)", "말씀에 대한 열매, 즉 행복과 평화를 바라셨을 터인데 좀 허탈하셨을 것이다. 부처님은 다시 고뇌를 안고 처음 마음으로 돌아가 보리수 아래서 다시 수행하셨을 것이다(나승구 신부)", " 나를 존경하고 받드는 만큼 가난한 사람,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잘해주라고 했을 것이고, 마음을 비우고 함께하라고 했을 것(이영우 신부)", "너의 집, 마음의 집, 지구를 파괴하지 말고 잘 지켜라(한광석)", "참고 견뎌라. 곧 좋은 세상이 올 것이다(노주홍)", "다 내려놓고 버려라(김은배)", "욕심을 버리고 자연순리에 순응하라(최문길)",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라. 하나를 가지려 하면 많은 사람이 불행하고, 하나를 베풀려고 하면 많은 사람이 행복하다(이규관)", "현실 속에서 답을 찾아라(최미혜)", "자진 닭울면 아침 해(광복)가 쑥 솟는다.(허남해)", "사람, 생명, 평화의 길을 가라(이기훈)", "올바르고 참된 세상을 위해 올바르게 살고 거짓말 하지 말라(이만우)"

이 모든 서원을 담아 부처님 이 땅에 오신 날. 순례단은 티끌과 같은 몸으로, 제발 오늘 하루만이라도, 오늘 하루만이라도 온 세상과 뭇 생명들에게 생명과 평화, 자비의 손길이 함께 하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함께하는 사람들>
- 수브라(프랑스) / 장경훈 외 2명(화성) / 나승구 신부(신월동 서울) / 김영식 신부(안동교구) / 이영우 신부 외 3명(천주교사회교정사목위원회) / 안민석 국회의원(민주당. 오산) / 신의주(청주) / 이만우 외 6명(라디오인) / 한광석(고양) / 조헤레나(서울) / 허남해 외 1명(민족문제연구소) / 오영미 목사 외 1명(오산) / 장창원 외 1명(오산노동문화센터) / 최정옥 외 30명(평화동 성당) / 김선자(천리성당 용인) / 이종화(실상사 귀농전문학교) / 정호 스님 외 20명(대각사) 등이 함께하였습니다.

<일정 안내 - 변동 가능>
● 5월 03일(일) : 오산시 외삼미동 능골 입구 - 병점 초교 앞
● 5월 04일(월) : 병점 초교 앞 - 수원시 권선동 비행장삼거리
● 5월 05일(화) : 휴식
● 5월 06일(수) : 구간조정일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 김진화 신부(전주 우림성당), 천주교봉천동성당, 차승엽(논현동), 병점성당, 황의옥(전주 평화동성당)에서 후원해주셨습니다.

* 순례 수정 일정과 수칙은 http://cafe.daum.net/dhcpxnwl 공지사항을 참고 바랍니다.

2009. 5. 2
기도 -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을 찾아서
진행팀 문의 : 010-9116-8089 / 017-269-2629 / 010-3070-5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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