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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달리트, 인간 발전 그리고 교회[교황 프란치스코와 하느님의 백성 - 황경훈]
황경훈  |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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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9.09  10:3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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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남부의 첸나이는 “제2의 디트로이트”라고 불릴 만큼 온갖 다국적 기업이 들어와 버글거리는 곳이다. 미국 디트로이트가 2013년 파산신청을 함으로써 완전 한물간 도시가 되어 버린 것과는 다르게 첸나이는 아직도 성업 중이다. 하지만 이 도시는 농촌으로 둘러싸여 있고 도시에서 나오는 모든 배설물이 이곳에 버려진다. 니콜라스(Nicholas, 60)는 이곳 출신으로 ‘비폭력 토지 점거 운동’을 벌이고 있는 달리트 운동조직의 지도자다.

“자본가들은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를 준다는 명목으로 이곳에 들어와서 값싼 노동력을 손쉽게 구하고 최대한 이윤을 남기다가, 마치 다 된 배터리 갈아 버리듯 아무렇지 않게 용도 폐기한다. 이들이 1만 명에게 이런 불안정한 직장을 제공한다고 생색낼 때 주위 100만 명의 농민의 삶이 파탄난다.”

달리트 운동의 역사는 간디 시절로 올라가니 결코 짧다고 할 수 없다. 기골이 장대하고 말 잘타며 노래 잘하는 아리아인이 인도 반도를 침략해 토착민인 드라비다족을 굴복시키고 통치하기 위해 창안한 것이 유명한 사성제 또는 카스트제도다. 힌두교를 설명할 때 빼놓지 않는 리그 베다에는 사제 계급인 브라만이 나머지 계급의 생사여탈권을 받은 지고한 존재로 묘사된다. 베다의 창조신화에서 묘사되는 최초의 인간 푸르샤가 희생제의에 바쳐져 푸르샤의 몸이 산지사방으로 흩어지면서 해와 달, 태양과 바다, 육지 등 온 우주가 생겨나게 되었다. 또한 푸르샤의 머리는 브라만으로 팔은 무사 계급인 크샤트리아로, 몸은 평민인 바이샤로, 또 발은 노예인 수드라가 되었다고 한다. 수드라의 일생도 고달프고 힘든 삶이지만, 이 카스트의 질서에도 들지 못하는 이들이 ‘불가촉천민’인 달리트다. 이들은 조선의 백정이나 현존하는 일본의 부라쿠민 같은 존재로, 닿기만 해도 불행과 더러움을 옮긴다고 하여 얼굴조차 마주 보려 하지 않는 사회에서 배제된 이들이다.

   
▲ 니콜라스는 인도 남부의 첸나이 시 출신으로 '비폭력 토지 점거 운동'을 벌이고 있는 달리트 운동 조직의 지도자다. (이미지 제공 = 황경훈)

한국에 소개된 대부분의 책들이 인도를 불가사의한 ‘종교의 천국’으로 신비화함으로써 인도인의 현실, 특히 달리트의 고난에 찬 일상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힌두교에는 영겁에 이르도록 끝없이 삶과 죽음을 반복한다는 윤회사상과 과거의 업보에 따라 현재의 삶을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하는 업사상의 강력한 영향으로, 헌법에서는 오래전에 사라진 카스트 제도가 여전히 인도 문화에 강하게 남아 있다. 한 번 카스트는 영원한 카스트이기에 그 굴레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방법이 있다면 카스트를 인정하지 않는 종교, 이를테면 그리스도교, 이슬람, 불교로 개종하는 것이다. 니콜라스는 ‘인도 가톨릭대학생연합회’ 출신이고 물론 가족 전체가 개종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가톨릭 교회는 달리트의 비참한 삶과 그것이 다른 카스트의 차별에서 기인한 것임을 알면서도 이러한 현실에 눈감는다. 아니 심지어는 교회 안에서도 이들에 대한 차별이 그대로 이어진다. 성당에 가면 경당 안에서도 앉는 자리가 따로 나뉘어 있고 죽어서도 공동묘지를 함께 쓰지 못하며, 어떤 본당에서는 장례미사 때 아예 시신을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가톨릭 신자의 70퍼센트가 달리트인들이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차별의 수준이 인도의 일반 사회보다 덜하다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다.

‘달리트 그리스도인 해방운동’과 인권 단체들은 얼마 전 델리 주재 유엔 사무국에 인도 가톨릭 안의 달리트 차별에 대해 교황청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고 교황청과 인도 주교회의를 상대로 고소장을 제출했다. 기가 막힌 일이다. 그럼에도 이들의 울분을 달래고 교회 안 차별을 시정하도록 도울 ‘힘 있는’ 이들을 찾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왜냐하면 달리트 출신 성직자는 전체 성직자의 5퍼센트 안팎이고, 주교의 경우는 더 심각해 현역 주교 200여 명 가운데 10여 명이 달리트 출신이라고 하는 사실이 이들의 처한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니콜라스는 가톨릭 교회에서 달리트 운동에 어떤 지지나 연대 활동을 하지 않냐고 물었더니, 괘념치 않는다는 듯 주저 없이 ‘우리가 더 가톨릭적’이라고 말했다. 그가 벌이고 있는 비폭력 토지점거 운동은 ‘너희는 소꼬리를 잡고서 몰고 가라, 대신 우리 토지를 돌려 다오’라는 모토에서 잘 드러난다. 소를 숭배하는 힌두교도이자 카스트제도의 수호자인 너희들은 그 이념이나 파먹고 사는 대신, 너희들이 빼앗아 간 우리 토지, 우리 삶을 돌려 달라는 뜻이라고 한다. 니콜라스는 최근 소를 도살해 고기를 파는 일을 하던 달리트 남성 4명이 상층 카스트 군중에게 백주대낮 길거리에서 처참하게 맞아 죽는 일이 있었고, 이 장면을 생생히 담은 휴대폰 동영상이 인터넷에 유포되자 오랫동안 지지부진하던 달리트 운동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어서 달리트 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 부자 집 앞에 있는 라자로. (이미지 출처 = en.wikipedia.org)

여기서 ‘인간 발전’이라는 말을 곱씹어 본다. ‘인간 발전’이라는 용어는 교회문서 중 "민족들의 발전"(1967)에서 처음 등장하는데, 성경에 나오는 거지 라자로의 비유와 함께 얘기된다. 인간 발전은 거지 라자로가 부자들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빵부스러기로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부자들과 그 식탁에 동등하게 앉아 함께 식사를 하는 데에서 시작한다. 초기교회에서 볼 수 있었던 이러한 ‘평등 정신’이야말로 인간 발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교황 바오로 6세는 ‘인간 발전이야말로 평화의 다른 이름’이라고 했다. 뒤집어 말하면, 진정한 평화란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인간의 전인적 발전이라고 본 것이다. 참으로 탁견이 아닌가. 그러니까 평화는 거대하고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의 삶에서 이루어 가야 하는 인간의 참된 삶의 실현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이어지는 "사회적 관심"(1987), "진리 안의 사랑"(2009) 역시 인간 발전을 전면적으로 다룬 회칙으로 인간 발전의 도덕적, 영적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도덕적, 영적 측면의 인간 발전은 책 속에 있는 외워야 할 사회교리의 내용이 아니다. 니콜라스의 운동은 토지를 되돌려 받기 위한 운동이라는 점에서 사회경제적 성격을 띠지만, 그리스도교에서 추구해 온 평등 정신을 실현하려는 노력이라는 점에서, 또 누천년에 걸친 억압의 제도를 극복하려는 집단적 실천이라는 점에서 인간 정신의 승리, 영성의 진보를 향해 나아가는 문명사적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는 이들에게 어떻게 지지와 연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하는가? 도움이 필요한 라자로가 달리트라면 교회가 이들을 차별하는 문화에 동조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 부자들의 식탁에서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함께 식사를 하도록 돕는 것이 진정한 인간 발전을 향한 첫발을 내딛는 길이라고 믿는다.

그렇기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복음의 기쁨"에서 강조하듯 통합적 인간 발전의 관점에서 온 인류에게 복음이 어떤 의미여야 하고 어떻게 전달되어야 하는가를 다시 성찰해야 하며, 이를 위한 구체적 실천 기구로서 ‘인간발전성’을 새롭게 만든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한다.

 
 
황경훈
우리신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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