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 무관심은 교회 책임이다

(보니파시오 타고)

두테르테 대통령은 독재자였던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를 마닐라의 영웅 묘지(국립묘지)에 묻는 것을 허용한다고 발표했고, 이에 따라 각계에서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편집자 주- 마르코스 전 대통령(1965-86)은 처음에는 합법 선거를 통해 대통령이 되었으나 공산주의 위협을 핑계로 계엄령을 선포하고 독재정치를 했다. 그는 1986년 2월에 가톨릭교회가 주도한 대규모 대중시위로 하야하고 미국 하와이로 망명해 1989년에 그곳에서 죽고 묻혔으나 2015년에 그의 가족들이 유해를 필리핀으로 옮겼다.)

마르코스 치하 계엄령의 피해자들과 당시에 수많은 악행이 있었다고 보는 이들은 힘을 모아 항의 행동에 나섰다. 두테르테의 결정은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화해 조치라고 보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침묵의 다수, 특히 이른바 새천년 세대는 이 문제에 관심이 없는 듯하다.

필리핀인들은 예전 계엄령 시절의 교훈을 진지하게 여기지 않을 정도로 기억이 짧은가? 자신들이 받았던 탄압을 이렇게 쉽게 용서하고 잊을 정도로 마음이 좋은가? 아니면, 지금 당장 자기에게 직접 또는 개인적으로 상관없는 문제에 끼어들고 싶지 않을지도 모른다.

필리핀인들이 마르코스에게 영웅 대접을 해 주는 것과 같은 정치 문제에 어떤 관점을 갖고 있든 간에, 사회에 커다란 문화적 영향력을 갖고 있는 교회가 이 문제에 침묵하고 있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변명할 수 없다.

필리핀 가톨릭교회는 필리핀인들의 의식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무엇보다도 국민 대부분이 가톨릭 신자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교회는 전국에 교육기관을 운영하고 있어서 대중의 마음과 정서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또한 미래의 정치, 경제 지도자를 양성하고 있다.

필리핀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기구들 가운데 하나로서, 교회는 청년들이 마르코스의 안장 같은 문제들에 아주 무관심한 데 대해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살펴봐야만 한다.

▲ 독재자였던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를 마닐라의 영웅 묘지에 묻는 것을 반대하고 있는 사람들. (이미지 출처 = UCANEWS)

교회는 잘 다듬어진 사회교리를 갖고 있어서, 복음 선포의 본질적 구성요소로서 인간 생활의 경제, 정치, 문화적 차원에 교회가 관여하는 데 대해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하며, 이를 현대 언어로 말하자면 진정한 사회 변환의 일꾼이 되어야 한다.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은 그리스도인이 정의와 평화를 실천하는 기본 지침임을 넘어서, 이를 촉진하기 위해 일하는 신자들의 구체적 움직임이 절실하다.

많은 필리핀 교회지도자들은 세상 속 그리스도인의 역할을 교리적으로 설명은 아주 잘하지만, 정의와 평화에 관련된 각 본당에서의 구체적 움직임은 거의 없다.

우리 교회지도자들은 신자들을 조직해서 불의에 맞서 구체 행동을 하도록 하는 데에는 별 관심이 없고, 신심을 강조하는 단체들만 마음에 들어 하는 듯하다.

근래, 필리핀에서는 기혼 부부와 가정의 복음화를 위한 새 단체들이 생겨났다. 이들은 함께 미사를 드리고 기도하며, 자선 활동도 많이 한다. 사제와 주교들이 이들을 많이 밀어 준다.

하지만 혼인 여부와 상관없이, 이 나라 전역의 교회 공동체들 안에는 정의의 영역에 관한 그리스도인의 양성은 사실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본당 차원의 교회지도자 대부분은 그런 형태의 복음화 사업을 할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교회지도자들이 그리스도인의 정치참여를 꺼리는 데에는 이른바 교회와 국가의 분리도 한 요소로 작용한 것 같다. 또 사회정의 활동에 관해 많은 교회지도자들이 전문성이 없다는 것도 한 이유일 것이다.

교회지도자 상당수, 그리고 아마 신자 대부분은 아직도 교회의 사명과 복음화를 사람의 영혼을 구한다는 전통적 관점에서 본다. 육신의 선익은 국가가 책임질 문제이고 정치 문제는 교회와 그 지도자들의 주요 관심사가 아니라고 믿는 이들이 여전히 많다.

마르코스를 영웅으로서 안장하는 문제에 대다수 필리핀인이 침묵하는 이유는 인간의 영적 차원을 구하는 것만이 교회의 근본 과업이라고 보는 이러한 자세 때문이다. 즉 이 특정 문제는 그리스도교 신앙과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순전히 국가와 정부가 알아서 할 문제인 것이다.

신앙과 삶을 나누는 이러한 이분법은 아직도 필리핀 교회 지도자와 신자들의 지배적 사고방식으로서, 우리네 주교와 사제들이 가톨릭 그리스도인의 소명에 본질적 구성요소이어야 할 바, 대중이 정치 문제에 적극 참여하도록 교육하는 데 아무 관심이 없는 가장 큰 이유로 보인다.

(보니파시오 타고는 필리핀 카바나투안에 있는 착한 사마리아인 대학 철학교수이자 교학부총장이다. 현재 아시아 축성생활대학원에서 축성생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기사 원문: http://www.ucanews.com/news/a-heros-burial-for-a-former-philippine-dictator/76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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