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비평- 한상욱] -인천성모병원 사태를 바라보며

▲보건의료노조 슬로건

인천 성모병원 노사갈등이 점점 깊어져 가고 있다. 그런데 갈등의 내용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사용자측은 공세적이고 노조는 수세적이다. 그 이유는 이렇다. 단체협약 해지, 고소고발, 손해배상청구, 재산가압류, 조합탈퇴 종용과 조합원 감소, 노조 전임자 해지, 임금동결 등 이 정도면 노조를 사람으로 비유했을 때 거의 밥도 물도 먹을 힘도 없어 고사 직전의 상황이다. 분명 노조 스스로 조합원을 줄이고 사용자측에 먼저 단협을 해지하자고 하지는 않았을 테니 노조가 분명 궁지에 몰려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노사는 왜 여기까지 왔을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사용자측은 노동조합을 병원발전의 저해 요인으로 보았고 파트너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는 교회의 권위에 도전하는 노조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혹시 노사문제를 제 3자적 입장에서 바라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렇게 생각할 수 도 있겠다. 혹시 노조가 신부님들에게 무슨 큰 잘못을 저지른 것을 아닐까? 노조가 너무 강성이라서 그런 것 아닐까?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법하다. 정답은 물론 ‘아니다’이다. 위의 상황으로 볼 때 노조는 오랫동안의 사용자측의 일방적 독주에 대응하다 힘도 잃었고 지쳤다는 것이 더 맞는 말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노사는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구조이다. 그래서 노사는 갈등을 하기도 하고 협력. 공생도 하는 그런 관계인 것이다. 노동자들의 언어로 말한다면, 때로는 노조가 붉은 머리띠를 매고 사용자측을 투쟁의 대상으로 삼기도 하고, 때로는 노사가 서로 악수를 하며 두 손 맞잡고 노사상생을 외치며 타협하기도 하는것이다. 이것이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노사관계에서 나타나는 모습이다.

따라서 교회가 운영하는 사업장이라고 해서 노사는 늘 평온해야한다는 당위는 어불성설이다. 문제는 우리의 선입견이다. 교회가 운영하는 사업장은 달라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도 지극히 순진한 발상이다. 노사는 교회를 매개로 해서 만난 것이 아니라 노동자와 사용자로 만난 것이기에 노사갈등은 여전히 그 관계 안에서만 발생하는 것이다. 그 점은 노사가 공히 가져야할 원칙이 되어야 한다. 여기에서는 “감히 노동자들이 교회가 운영하는 병원의 뜻에 대들어” 라고 한다거나 역으로 “어떻게 교회가 더 노동조합을 탄압하느냐”라고 하는 것은 감성적으로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문제 해결에는 별 도움도 안되며 각자 딴 이야기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혹자는 그래도 ‘교회는 달라야 한다’라고 하지만 그 말의 속 깊은 곳에서는 교회는 늘 올바르게 판단하고 옳은 길을 걸어왔다는 전제가 있기 때문이다. 교회의 판단과 행동은 늘 ‘선’이었는가? 교회가 항상 정의롭고 정직한 길을 걸어 왔는가 ?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가톨릭의 오늘 ‘지금 여기’에서는 더더욱 말이다.

지금 인천성모병원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윤의 절대적 추구, 성장과 효율, 권위를 통한 지배, 힘의 사용과 소통의 부재. 독선과 배타. 즉 그것은 차가운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원리이다. 이것이 바로 한국사회의 왜곡된 기업가들의 마인드이자 주류사회가 비주류에게 던지는 경고이자 무시인 것이다.

그리고 교회가 운영하는 ‘인천성모병원’이라는 사업장 역시 그러한 점을 꼭 빼어 닮았다는 것이다. 지난 5년 동안 쉴 새 없이 진행되어 오면서 이제는 마지막 라운드에 접어든 성모병원 사태를 바라본다. 강한 자본의 논리 앞에서 지친 사람들이 이런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다. 절망에서도 죽음으로 희망을 주신 따뜻하신 예수님은 이렇게 말할 것 같다. "얘야 그동안 힘들었지, 나는 너를 믿고 사랑한단다."라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한상욱/ 프란치스코, 인천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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