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수가 본 교회와 사회 - 37]

냉담 현상에 대해 처음 글을 썼을 때 개신교로 가 목사가 된 분의 이야기를 예로 들었었다. 이 분의 이야기로 시작해 보려 한다.

그는 가톨릭계 대학에 입학하여 저학년 때 학교에서 영세를 받았다. 영세를 받고는 한동안 그럭저럭 성당에 잘 다녔다. 성당에 나가는 일 말고 다른 활동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개신교 성경공부 모임에 나가는 같은 과 학생이 그에게 모임 참여를 권유하였다. 성경도 알고 싶었고 그 친구도 좋아 모임에 참석하기 시작하였다.

모임은 활기가 있었다. 비슷한 또래들이었지만 회원들은 확신에 차 있고 열정적이었다. 무엇보다 지방에서 유학 온 자신을 잘 챙겨 주었다. 모임에 익숙해지면서 성경을 좋아하게 되었고, 나름의 종교 체험도 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성당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성당엔 아는 사람이 없었고, 더욱이 챙겨 주는 이도 없었던 까닭이다.

이 모임에 깊이 빠져들면서 학교 공부보다 성경 공부가 더 좋아졌다. 이렇게 변해가는 그를 보고 동료들이 입교를 권유하였다. 이미 마음이 기운 터라 교회에 나가 다시 세례를 받게 되었다.

모임에서 여학생도 만나 연애도 하게 되었다. 대학 졸업 후 군대를 다녀왔고, 얼마 안 있어 사귀던 여성과 결혼하였다. 그의 아내는 열성적인 신자여서 그에게 목회자가 될 것을 적극 권유하였다. 자신도 생각이 있었기에 신학 공부를 위해 함께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거기서 목사 안수를 받았고, 영성신학 학위를 받은 뒤 귀국해 개신교 어느 대학에 교수로 부임하였다.

그는 유학하는 동안 가톨릭 관련 영성 프로그램에 자주 참여하였고, 가톨릭 과목도 많이 이수하였다. 그는 한국에 들어와 개신교에서 활동하며 가톨릭에서 배운 것을 잘 활용하고 있다. 그는 가톨릭에 대해 여전히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

불교계 잡지에 가톨릭 신자가 기고한 글을 읽고 그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싶었다. 앞의 사례와는 다른 경우지만 이런 신자들도 더러 있을 것 같아 소개한다.

그는 지방에 있는 일반 대학에 교수로 있다. 성인이 되어 가톨릭 영세를 받았다. 영세를 받고 나서 성당은 가끔 나가고 있다. 고해성사는 하지 않는다. 주말에는 여행을 다니고, 다닐 때는 주로 사찰을 들린다. 자주 다니다 보니 친한 스님도 많이 알게 되었다.

그가 절에 자주 가는 것은 고즈넉한 산사의 분위기와 불교적 수행을 좋아해서다. 그에게 불교는 교리가 논리적이고 무리가 없어 매력적이다. 그래서 가끔 간다. 그는 내심 종교들 간에는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의 소속은 여전히 가톨릭이다. 아내와 신앙생활을 같이 하기 위해 필요하고, 또 그리 싫어할 만한 이유도 없어서다. 그는 앞으로도 가톨릭 소속은 유지하면서 여기저기 다른 종교의 좋은 것은 계속 찾아다닐 생각이다.

천주교는 거룩하고 점잖은 대신 분위기가 무겁고 신자들의 열성도 크지 않다는 평가를 받는다. 개신교에서 개종하신 분들이 종종 하는 말이다. 젊은이들도 천주교의 이런 분위기를 매우 갑갑하게 느낀다. 개신교를 선호하는 젊은이들을 보면 분위기 못지않게 소속감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소속감이 생기게 하는 구성원들의 태도, 서로 챙겨 주는 분위기, 신앙에 대한 넘치는 확신, 적절한 성비(性比) 등의 흡인 요인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소속감과 분위기를 제공하는 곳이 천주교에는 드물다.

▲ 성경 공부와 함께 하는 기도.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앞에 목사님의 경우 천주교 신앙을 깊이 알아보기도 전에 개신교의 이런 장점에 끌려 개종하였다. 천주교에 먼저 호감을 가졌으나 더 깊은 매력을 발견하기 전에 개종하게 된 것이다.

가까이 지내는 이웃 가운데도 이와 비슷한 경우가 있다.

이 이웃은 군의관으로 입대하면서 훈련소에서 단기 속성으로 영세를 받았다. 영세를 받았어도 군 생활 때는 거의 성당에 다니지 않았다. 제대 후 결혼하게 되었고, 앞에 목사님처럼 개신교 신앙에 투철한 의대 후배와 결혼하였다. 아내의 집은 모두 신자였고, 특히 장모님이 열렬하였다.

결혼하자마자 아내의 손에 이끌려 교회에 나갔고, 200명 정도 되는 가족적인 교회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열심히 다녔다. 자녀들도 다 이 교회에서 세례시켰다. 그는 종교는 하나 있어야 할 것 같아 당시 가장 평판이 좋았던 천주교를 선택하게 되었을 뿐이라 한다. 그러나 초단기로 교리를 배워 천주교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고, 마침 전방에 마음 붙이고 다닐 만한 성당도 없었다.

그런데 아내의 손에 이끌려 나간 교회는 신자들이 모두 잘해 주었고 목사님도 부부 의사라고 특급 대우를 해 주었다. 신앙은 잘 모르겠으나 처가와 잘 지낼 수 있고, 어려울 때 목사님이 찾아와 기도해 주는 성의들도 고마워 다니고 있다. 다른 신자들이 이제는 다 가족 같아 다른 교회로 나가는 일은 꿈도 꾸지 않는다.

이렇게 새 신자들이 성당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면 이내 다른 곳에 마음을 빼앗기게 된다. 대체로는 시들시들하다 아예 종교 자체를 떠나는 경우가 많지만 앞의 사례들처럼 개신교로 옮기는 경우도 종종 발견된다. 개신교에서 천주교로 개종하는 비율보다 극히 적은 비율이 개신교로 개종한다. 개신교에 대해 일시적으로 실망하여 천주교에 들어왔다 다시 개신교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천주교를 떠나거나 왔다 다시 떠나는 분들이 냉담자군(群)의 일부를 이룬다.

두 번째는 경우가 다르다. 이런 유형을 다중 종교정체성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소속은 유지하되, 자신이 좋아하는 종교적 가르침을 차별 없이 두루 섭렵하려는 유형은 지식인들 가운데서 많이 발견된다. 이 유형은 크게 보면 ‘탈 제도적 종교성’에 속한다. 제도에 기대지 않고 자신의 종교적 욕구를 자유롭게 충족시키려는 경향이 ‘탈 제도적 종교성’인 까닭이다.

천주교도 개신교 못지않게 지식인 신자들을 많이 거느리고 있다. 그렇다고 이들의 덕을 많이 보는 것은 아니다. 이들 가운데 일부만이 신자들과 어울려 생활할 뿐 대부분은 소속만 유지하는 데 만족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을 내기 어려운 현실적 여건 탓도, 신자들과 깊이 얽혀 시간을 많이 내게 될까 두려워서 꺼리는 것일 수도 있다. 수준이 안 맞는다고 느낄 수도 있겠고. 지식인의 냉담 유형이 이렇다면 앞의 예에서처럼 소속감 없이 자신의 종교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충실한 경우만도 꽤 관심이 있는 경우라 보아야 할 것이다.

이렇게 여러 이유로 많은 이들이 냉담하거나 아예 교회를 떠난다. 이제껏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런데 여전히 일정 숫자가 교회를 지켜주는 데 취해 교회는 이 현상에 대해 깊이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 안타깝다. 그저 지켜내 보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자기가 가진 것도 다 못 보여 줘 떠나보내는 게 미안하고 아쉬워서 그러는 것이다. 사실 우리 나름 매력이 있는 종교이니 말이다.

 
 

박문수(프란치스코)
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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