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세속적"에 대한 오해부터 풀어야

지난 2015년 1월에 집권한 현재의 스리랑카 정부는 권위주의 성격이 강해져 온 지난 수십 년 세월을 마감하고자 새 헌법 초안을 만들고 있다. 시민사회의 의견을 듣기 위해 위원회도 구성했는데, 이 위원회는 전국을 돌면서 여론을 구하고 있다. 소수종교인과 소수민족은 지난 1978년에 만들어진 현행 헌법의 9조를 개정하기를 바라고 있다.

현 헌법으로 스리랑카는 대통령제를 실시했으며, 몇 가지 인권 조항이 포함되기는 했지만, 소수종교의 바람을 채워 주지는 못했다. 9조가 문제였다. 9조에는 스리랑카의 다수 종교인 불교에 “수위 지위”를 주고, 불교 보호를 국가의 의무로 규정했다. 다른 종교는 각자의 신앙을 실천할 자유가 있지만, 다수 집단의 자비로 그러할 수 있다고 느끼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같은 헌법의 12조는 이와 모순되는 듯한 구절이 있다. “어떠한 국민도 인종, 종교, 언어, 카스트, 정치적 의견, 또는 이런 류의 근거 위에 차별받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토론에서, 스리랑카의 헌법은 불교를 국가종교로 승인하지 않는다고 서술되어야만 한다.

어떤 이들은 9조가 소수종교를 차별하여 전혀 평등하지 않은 2등 국민으로 만든다고 말한다. 지난 38년간 있었던 (내전을 포함한) 갈등의 대부분은 인종 갈등 때문이었고, 종교적 박해가 일어났었고, 이 종교 박해는 종족 간 폭력사태가 끝난 뒤에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2014년 8월에 불교 극단주의자들이 다르가에서 이슬람인들을 공격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범인들은 아무 처벌을 받지 않았는데, 헌법에 불교가 “수위 지위”에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스도인은 예배의 자유에 관해서는 일정한 보장을 받고 있지만, 신자들을 수용할 교회나 관련 시설을 짓는 데에는 제한이 있다. 반대 민원을 내는 이들은, 여기에 모일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불법 개종되었다고 주장한다. 기도소를 지으려면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만 한다.

따라서, 스리랑카가 (불교를 국교로 하지 않는) 세속주의 국가가 되어야 한다고 소리 높여 주장하는 것은 종교적 정서들을 거스른다는 뜻이 아니다. 이러한 주장은 반 종교적 운동이 흥성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 또한 아니다. 종교의 자유와 예배의 자유라는 보편적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요구일 뿐이다. 세속주의 국가라는 것은 어떤 종교가 차별받는다는 뜻이 아니며 불교에 수치스런 것도 절대 아니다. 각 종교 창립자들의 가르침을 되새겨 보자. 그들은 분명히 어떤 우월적 지위를 피했을 것이며 모두가 평등하게 대우받기를 원했을 것이다!

▲ 2014년 6월 스리랑카 불교 폭도들이 불태운 이슬람교인의 가게. (이미지 출처 = UCANEWS)

스리랑카에 사는 우리는 우리 자신이 다인종, 다종교 국가라고 부르지만 실제로는 평등 개념 자체를 부정한다. 화해와 연대는 어느 나라든 평화를 위해 아주 중요하지만 한 종교를 수위에 놓은 분열적 태도가 계속되는 한 스리랑카에서 평화가 현실에 이뤄질 가능성은 없다. 그리고 이는 국민을 하나로 묶는 데도 방해가 된다. 나아가, 어떤 종교는 편애를 받고 다른 종교는 존중받지 않는다면 이는 그 어느 나라에도 좋은 징조가 아니다.

많은 스리랑카인이 인권에 대해 무지하고 인권이란 우리 자신의 문화에 해로운 서구적 개념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 이런 사고방식은 심지어 지도층과 지식분자 중에서도 볼 수 있다. 이들은 유엔과 유엔 인권협약에 의해 이뤄진 소중한 공헌들을 알아보지 못했다. 이러한 협약이 있어서 온 세상에 인도적 복지가 크게 진흥되었던 것이다.

스리랑카의 다수 종족인 싱할리 족의 싱할리어에서는 “세속적 지위”라는 말이 잘못 번역되어 마치 세속성이란 것은 반 종교적인 것으로 오해되고 있는데, 이는 아주 잘못된 것이다.

오늘날 “세속적”(secular)이라는 용어는 “아나가미카”(anagamikka) 또는 “니라가미카”(Niragamika)로 번역되고 있는데, “반 종교적” 또는 “종교 반대”를 뜻하는 것으로 쓰일 수 있다. 그러므로 대중은 세속성을 무언가 불경하거나 반 종교인 것으로 이해하곤 한다. 그래서 스스로 “비 세속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세속주의 주창자들을 모든 형태의 종교와 그 관행을 반대하는 이들로 간주하는데, 이는 전혀 맞지 않는 사실이다.

하지만 “세속적”이 이런 식으로 보여서는 안 된다. 한 종교를 다른 종교보다 편애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또는 다른 종교에 피해를 주면서 한 종교에 우월한 지위를 주지 않는 뜻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세속적”이란 모든 종교와 그 종교를 믿는 이들이 법 앞에 평등하다는 뜻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러한 개념의 오해가 교정되지 않고, 스리랑카가 모든 종교와 인종을 존중하고 법으로 모든 국민의 종교를 보호하며 그 누구의 종교 자유도 빼앗지 않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면, 아무리 헌법을 바꾸어도 영향은 거의 또는 전혀 없을 것이다.

(레이드 셸턴 페르난도 신부는 인권운동가이며, 콜롬보 대교구의 가톨릭노동청년회 담당 신부다.)

기사 원문: http://www.ucanews.com/news/a-new-constitution-for-the-future/76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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