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속풀이 - 박종인]

교회 안에서 봉사한다는 것은 도대체 어떤 것인지 비판적으로 질문받을 때도 있고, 질문을 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과연 교회에서 봉사를 하려거든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하느님의 사랑만을 구해야 하는 것일까요? 제 존경하는 사부 로욜라의 이냐시오는 그게 맞는 삶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수도회에 들어온 것이 잘했다고 느껴집니다.

그런데 저와는 달리 부모님도 모셔야 하고, 결혼도 꿈꾸고 있는 청년이 있다면, 그가 꿈꾸는 교회 내의 봉사도 제 이상과 같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겠습니다. 그런 봉사자들의 예는 우리 주변에 적잖을 것입니다. 제가 아는 청년의 예를 들 수 있습니다. 그는 교회에서 행사가 있을 때마다 필요한 물품들을 챙겨가며 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 자신의 자발성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교회 쪽에서 요청하는 부분도 있다는 것이 그 친구가 교회를 위해 활동하게 된 배경입니다. 때때로 그 청년은 자신의 자동차까지 동원해 가며 짐을 나르기도 합니다. 준비물품에 이상이 생기면 자비를 들여 수리도 합니다. 행사를 위해 쓴 물건인데 실소유자는 그 청년 자신이고, 하나하나 유지보수를 위한 비용을 청하는 것이 미안해서 자비를 들였던 것입니다.

교회에 이런 봉사자는 보배 중의 보배입니다. 매우 헌신적이고 이것 저것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 해주는 사람이니 소중히 여길 보배가 맞습니다만.... 실제로 이런 사람이 느끼는 기분은 결과적으로 서글픔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교회를 위해 하는 일을 당연히 여기게 되고, 그러다 보면 부지불식간에 그를 부려먹을 수 있는 대상으로 볼 가능성이 높습니다. 봉사를 하는 당사자도 뭔가 의미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은 하는데.... 마음 속엔 격려나 지지를 받지 못하는 데서 오는 불만과 우울이 들어차기 시작합니다.

결국 고결한 일을 하는 머슴이나 몸종으로 봉사자가 스스로를 인식할 상황까지 된다면 그런 봉사는 말이 봉사지 봉사라 할 수 없습니다. 수덕한다는 수도자들도 지지나 격려가 실려 있지 않는 낱말을 반복적으로 들으면 기운 빠지는데, 선의를 가지고 교회에 봉사하고자 나온 친구를 머슴 부리듯 한다는 것은 매우 무례한 태도라 하겠습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언젠가부터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하는 능력을 잃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믿음의 힘이 강해서 교회에서 댓가없이 봉사를 한다 하더라도 최소한 먹고 자는 문제만큼은 걱정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현실은 그러하지 아니합니다. 그렇게 교회에 투신하고 싶은 사람은 그냥 수도자나 성직자가 되는 것이 좋겠다 싶습니다. 아마도 이들이라면 먹을 것이 떨어진다 해도 하느님께 향한 자기 봉헌과 세상에 대한 헌신 그 자체로 기뻐할지 모르겠기에 그렇습니다. 내게 필요한 것은 하느님의 사랑만이면 됩니다. 독자분들께는 매우 이상적으로 들린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그러나 그런 삶을 선택한 수도자가 아닌, 봉사를 어느 순간부터 ‘강요당해야’하는 신앙인들, 특히 교회 내에서도 “열정 페이”를 요구받는 청년들에게는 그런 봉사는 가뜩이나 각박하게 흘러가는 사회 분위기 내에서 마음에 짐을 지도록 하고 미래에 대한 전망도 아득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그들에게 봉사를 청하는 데 있어 신중해질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말레이시아에서 전국적으로 배움터(Learning Center)를 운영하고 있는 친구의 친구, 존 수사님이 얼마 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 들려준 봉사자의 기준이란 것이 떠오릅니다. 그는 봉사자들에게 수당을 주지 않습니다. 대신 봉사자가 배움터에 와서 봉사하는 시간을 정해진 시간 이상으로 늘이지 않습니다. 각 봉사자는 일주일에 두 시간 십오 분(여기서 십오분은 쉬는 동안 차 한 잔 마실 시간)을 넘지 않은 상태에서 봉사를 합니다. 그 봉사자가 유능하다고 해서 더 시간을 쓰도록 하지 않습니다. 제가 이해한 바로, 수사님이 어떤 봉사자에게 두 시간 십오분을 넘어 도움을 요청해야 할 일이 벌어진다면 수사님은 그에게 시급을 줄 것입니다. 즉, 봉사자는 자신이 생계를 위해 필요한 시간을 심하게 침범당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봉사자를 대하는 중요한 태도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하는 일을 도와주는 봉사자들에게 나는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는지 되물어 봐야겠습니다. 그들이 저와 함께 일을 하는 시간을 더 늘리고 싶다면, 그들을 아예 우리 사무실에 고용하는 게 현실적으로 가장 좋은 방법처럼 보입니다. 열심히 자금을 모아야겠습니다. 그럴 수 없는 지금은, 일주일에 일정 시간, 한달에 일정 시간, 그렇게 정해진 시간을 넘지 않도록 일을 잘 나눠야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항상 잊지 말아야 할 한 가지. 그들의 선의와 믿음에 고맙다고 진심어린 고백을 해야겠습니다.

봉사자들은 자신의 시간을 나누는 기쁨을 느낄 수 있으며, 다양한 사람을 겪으면서 자신도 배우고 성장한다는 것을 깨달아 갑니다. 그런 행복이 있기에 지혜롭고 너그러운 이들은 봉사하고자 합니다. 이미 하느님을 닮아 있는 이들입니다. 이냐시오가 기대했던 하느님의 사랑이 그들이 바라는 행복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박종인 신부(요한)
서강대 인성교육센터 운영실무. 
서강대 "성찰과 성장" 과목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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