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교리 렌즈에 비친 세상 - 박용욱]

친구 신부의 초대로 브라질 교회를 짧게나마 경험해 보기 위해서 마라냥 주 상루이스 교구에 온 지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달리는 말에서 바라본 산 이야기를 드릴까 합니다.

1.

▲ "위기와 극복". 문화적, 경제적, 사회적 , 정치적 위기에 대한 브라질 교회의 시각을 집약한 문헌. ⓒ박용욱
상루이스 대교구 교구장이신 돔 주제 벨리사이오 다 시우바 대주교(OFM)님을 뵈었습니다. 브라질 교회는 아른스 추기경과 동 에우데르 카마라 대주교 같은 예언자적 신학자요 사목자를 배출한 바 있지요. 같은 맥락에서 동 주제 대주교님은 짧은 만남의 시간을 사회교리에 관한 이야기로 채우십니다. 최근 브라질 주교회의에서 펴낸 소책자 "위기와 극복"(Crises e Superacoes)을 건네시면서 교회의 예언직을 수행하기 위해서 여러 매체들을 적극적 활용하고 있노라고 말씀하십니다. 선물로 주신 ‘위기와 극복’만 해도 52쪽 105항으로 구성된 작은 책자입니다만, 문화적 위기, 경제적 위기, 사회적 위기, 그리고 정치적 위기에 대한 브라질 교회의 시각을 집약한 문헌입니다.

물론 브라질 교회도 진보와 보수의 갈등, 교회의 사회 참여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마주합니다. 기득권을 누리던 사람들이 순순히 사회 문제에 관한 교회의 권고를 받아들이고 특권을 내려 놓으리라고 예상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주교님들과 교구는 사회 전체의 문제들을 그리스도교 관점에서 식별하고 지침을 제시하며 공론의 장을 제공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마침 그저께는 상루이스 시장 선거를 앞두고 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주최로 시장 후보들의 공개토론회가 있었습니다. 신학교 강당을 가득 메운 청중들과 몰려든 언론 매체에 더해서 신학자들과 기초 공동체 대표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후보들과 함께 토론합니다. 더 많이 배운 사람, 더 많은 책임을 받은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은 무릇 더 멀리 내다보고 방향을 제시하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 동 주제 벨리사이오 다 시우바 대주교 님. ⓒ박용욱

2.
주교님들이 방향을 제시한다면, 그 방향에 따라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것은 기초 공동체(Base community)의 몫입니다. 제가 묵고 있는 삼위일체 본당(Santissima Trinidade) 같으면 아홉 개의 기초 공동체가 이루는 연합체의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각 기초 공동체는 작은 경당이나 건물에서 모임을 하다가 한 달에 한 번쯤 본당에 옵니다. 이 지역은 노예로 끌려 온 아프리카 사람들의 후손들이면서 직업을 찾아 도시 외곽 달동네에 자리 잡은 이주민들이 대부분입니다. 기초 공동체는 이렇게 떠돌던 이들을 한 공동체로 묶어 주는 마음의 고향으로 기능합니다.

사람들은 기초 공동체에 모여서 사는 이야기를 나누고, 성경과 교리의 관점에서 자신들의 현실을 이해하려고 애를 씁니다. 평신도들이 무슨 일에든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는 분위기가 있어서 그런 나눔이 가능한가 봅니다. 가까운 예로, 미사 중의 성찬 기도에도 다른 나라 경우와는 달리 사제의 기도와 함께 교우들의 응답이 대폭 들어가 있습니다. 축복도 사제가 평신도에게 일방적으로 내려주는 것이 아닙니다. 미사 말미에 평신도들이 사제를 위해서 축복 기도를 해 주기도 합니다. 한 집안의 가장들은 매일 밤 사제들이 하는 것과 같은 양식으로 아이들에게 축복을 해 주는 전통이 있답니다.

평신도들의 나눔을 통해 도출된 결론은 교회 안에서 구체적 열매들을 맺습니다. 예컨대 오늘 한 기초 공동체가 성모승천 대축일을 기념해서 거하게 잔치를 벌였는데, 이런 활동들도 기초 공동체가 스스로 만들어 갑니다. 본당 신부는 공동체의 결정을 존중하면서 꼭 필요한 경우에만 개입하고 조정할 뿐이지요. 그리고 평소 본당 신부와 공동체를 연결하는 가장 든든한 고리는 수도자들이 맡습니다. 특히 수녀님들의 모성애적 사랑과 헌신은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일 수 있는 교회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 기초공동체 축제. ⓒ박용욱

3.
최근 정체가 의심스러운 단체가 교회를 공격하는 일들이 벌어지는 경우를 봅니다. 사회교리를 선포하는 곳에 권력의 전위부대처럼 나타나서 비난을 퍼붓고 복음정신에 어긋나는 호전성을 드러내는 단체 말씀입니다. 이들 가운데도 나름의 이데올로그들이 있어서 주교회의나 정의평화위원회의 활동을 훼방할 때 명망 있다는 원로 사목자의 이름을 거명하거나 교회 문헌들을 우격다짐으로 인용합니다.

반면 대꾸하기도 민망한 주장들을 하는 이런 단체들에 대해서 왜 교회가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가, 교회의 사회참여는 교황님께서도 지지하시는 것인데, 여기에 각을 세우는 이들을 왜 단죄하지 않는가 묻는 분들도 계시지요. 양쪽이 지향하는 방향은 다르되 권위에 기댄다는 점에서는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브라질 교회는 또 다른 방향에서 사회교리를 생각하게 하는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박용욱 신부(미카엘)
대구대교구 사제. 포항 효자, 이동 성당 주임을 거쳐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과 간호대학에서 윤리를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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