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욜라 즐거운 육아일기 - 52]

요즘은 사람들이 “안녕?”하지 않고 “덥지?”하고 인사를 한다. 그리고 서로 “더워 죽겠다” “더워 미치겠다” “더워서 환장하겠다”와 같은 안부를 나눈다. 평소에 에어컨 바람 아래서 “흠, 굉장히 덥군.” “매우 더운 날씨야!” “아주(꽤, 퍽, 상당히) 더워.” 정도로만 표현하던 대단히 교양 있는 작자를 오후 두 시, 잘 달구어진 횡단보도 사거리에 세워 보면 알 것이다. 거기 서서 잘 바뀌지 않는 신호등 녹색불을, 그것도 신호체계가 꼬여서 한 번만에 건널 수 없는 사거리 횡단보도를 두 개 건너가서 볼일을 보고 다시 돌아오라는 심부름을 시켰다면 틀림없이 횡단보도를 반도 건너기 전에 자기가 갖고 있는 얼마 없는 교양을 길에 다 흘리다 못해 집어 싸 던져버리고 말 것이다.

작렬하는 태양빛은 ‘개, 돼지’ 말고도 ‘상위 1프로대’ 교양인에 이르기까지 그 머리와 몸뚱이 위에 공평하게 내리고 있다. 물론 햇살이 몸에 닿기 전에 여러 가지 장치를 동원해서 계속 교양을 유지하는 것처럼 구는 게 문제지만. 그래서 누구는 그로 인해 돈까지 벌어 해외여행을 가고, 그러지 못하는 누구는 전기 누진세를 피해 시원한 장소를 찾아 헤매는 여름 유랑민이 되어, 있는 열 없는 열 다 받는 일도 있는 게 세상이지만.

쉽지 않은 세상,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남 탓만큼은 쉽게 한다. 생수병과 탄산수병을 중심으로 한 페트병을 부쩍 많이 배출하고 있는 나도 폭염 경보를 알리는 재난 문자를 보고 “쯧, 이번에도 내 탓이군”라고 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바로 “미친 날씨 탓”으로 돌리고 만다. 그게 다 따지고 보면 내가 욕심 내고 무관심해서 점점 뜨거워지는 지구에 살고 있는 탓인데도 그런다. 그런데 해는 사람이 아니라서 욕을 많이 들어먹어도 뻔뻔해진 얼굴로 보란 듯이 더 오래 살 리도 만무하다. 그리고 해도 자기 입장이란 게 있을 것이다. 아이들이 그린 그림 속에서 늘 방긋하고 웃고 있는 해님을 보자. 눈도 있고 입도 있다. 아마 귀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세상 아이들이 그린 도화지 속의 해님이라면 다 알고 있다. 성당에서 내 탓이요 하며 가슴을 치고는 돌아서서 남 탓이라고 하는 것도 다 보고 있다.

사실 어른들이 유치원생 데리고 초등생들 데리고 지구온난화 대응 교육을 하는 것도 어찌 보면 하나의 쇼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실제로 한켠에서 신나게 그리고 쓸데없이 바닥을 퍼 올려 더 넓어진 강물 가득 더욱 진해진 녹조라떼가 꿀처럼 흐르고, 미세먼지를 안 마시려면 고등어 구워 먹는 걸 포기하고 경유차를 갖다 버리고 콧구멍에 인체에 해가 없는 필터라도 끼워야 될 판이라고 야단인데, 그걸 아이들이 자라 어른이 돼서 다 해결해 주기를 바라는 것일까? 난리법석이 난 지구는 후세에 물려 주고 자기들은 우주선을 타고 어디 화성에라도 가서 새 살림을 차리려고 그러나? 자기 혼자 잘 먹고 잘 살다 죽고 나면 다음이야 지구가 폭발을 하든 말든, 자기 아이들, 손자들은 GMO 콩, 옥수수나 먹다가 아니 나중엔 그것도 못 먹고 굶어 죽든 말든 상관이 없다는 말인가. 아무리 그래도 그건 자식을 낳고 기르는 부모된 입장에서는 할 수 있는 생각이 아닌데, 이 세상에 힘 있고 돈 있는 사람은 대개 부모 같지 않은, 부모 아닌 어른인가 보다.

ⓒ김혜율

나는 오늘 해님을 위로해 줄 겸 오랜만에 부모다운 부모가 될 요량으로 더운 날씨를 탓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싸우고 미워해도 내가 키우는 아이들만 보고 있기로 했다. 메리와 욜라는 지금 유치원 방학 중인데 내가 보기엔 대한민국에서 이들처럼 알차게 방학을 보내는 아이들이 있을까 싶다. 어디 근사한 워터파크나 해외여행을 간 것은 아니다. 축제장이나 캠핑장에 간 적도 없다. 딱 이틀 해수욕장에, 그것도 별로 인기가 없어서 사람이 뜸한 쇠락한 해수욕장에 간 적은 있지만 주로 집에서 긴긴 여름 방학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메리를 설득해서 방학 한 달 동안만은 발레 학원도 피아노 학원도 쉬고 놀자고 했던 장본인인 나와 남편은 아이들이 집에서 즐겁게 지내도록 여러 모로 노력했다. 남편은 대형 풀장에 날이면 날마다 물을 채웠고,(그리고 자기가 더 신이 나서 풀장에 뛰어들곤 했다) 나는 날이면 날마다 아이들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챙기고 책을 읽어주고 질문에 답하고 싸움을 중재하느라 바빴다.

아이들의 일과는 놀고 먹고 책 보고 다시 놀고 먹는 것으로 빽빽하게 채워져 있다. 나는 세 아이들이 ‘엄마!’하고 부를 때마다 달려가는데 마치 손님 많은 식당의 점심시간처럼 정신이 없다. 한 아이가 ‘엄마’ 부저를 누름과 동시에 나머지 두 아이 모두 ‘엄마’ 부저를 계속 누르는 인내심 없는 손님들이라 나는 거의 언제나 “응, 알았어~ 잠깐만, 기다려. 이것만 하고~”라고 대답한다. 때로는 나에게 빨리빨리를 외치며 항의하는 꼬마 손님들에게 “이것 봐요, 엄마는 지금 몸이 하나지 세 개가 아니잖아. 어찌 몸 하나로 동시에 여러 개 일을 다 할 수 있겠어? 그러니 기다려, 기다리라고! ”라고 정색을 하곤 한다. 휴, 언제쯤 세 아이들이 나를 찾지 않을까? 조금만 더 크면 그렇게 될 거라고 하는 선배엄마들의 그 말만 믿어보기로 한다. 그런데 그렇게 바쁜 방학도 마지막 주에 접어들었다. 메리와 욜라가 유치원에 다시 가게 되면 이제 자유가 오겠지! 하는 기대보다는 (사실 로가 내게 붙어 있는 한 자유는 없다) 왠지 아쉬운 마음이 더 크다. 사실 이런 내가 좀 지겹다. 아이들과 같이 있는 걸 부담스러워 하고 언제나 될 수 있는 대로 몰입하느라 내 개인적인 시간이 지극히 적어서 한숨을 쉬면서도 아이들과 같이 있는 걸 좋아하고 편안해 하는 내 자신의 이중성! 그러면서 그 둘을 저울질하지만 결국 나보다는 아이들 쪽으로 치우치고 마는 나의 현모양처적 성향이!

ⓒ김혜율
아이들만 보고 살다 보니 다른 것에 소홀한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가장 아쉬운 것을 들라면 우리집 마당에 난 잡초다. 나는 식물을 보는 눈이 없어서 파란 것이라면 죄다 어찌 나중에 꽃이 피는 것인 줄 알고 놔뒀는데 어른들 말씀이 거의가 다 잡초란다. 꽃씨 받는 수녀님이 보내 주신 꽃씨를 심은 한 평 땅만 빼고는 잡초가 깔린 우리 집에 오신 엄마가 나보고 이걸 다 뽑으라고 하실 때야 마당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알았다. 어릴 때 시골에서 자란 엄마는 풀에 대한 교육을 철저히 받으신 것 같다. 마당에 난 잡초를 보고는 이걸 이대로 놔두면 동네사람들이 욕을 하는데, 잡초만 가지고 뭐라 하는 게 아니고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잡초 하나만으로 안주인의 살림 솜씨, 정신 상태를 다 우거진 잡초 정도로 알 거라고 으름장을 놓으셨다. 그리고 집에 좋은 기운이 들어오는 걸 잡초가 다 막아서 될 일도 안 된다고 아주 질색팔색을 하시며 한참을 쪼그리고 앉아서 잡초를 뽑고 가셨다. 나를 재차 혼내시는 엄마를 보고 아빠가 나를 안쓰럽게 여겨 두둔하는 발언을 했다가 두 분이서 싸움을 하는 걸 보고 나는 부부싸움의 원흉이 될 수 있는 잡초를 그제서야 뽑기로 굳게 다짐했다.

그런데 나는 그러고도 그 잡초를 한 달을 더 키웠다. 한 달 동안 동네사람들은 욕을 하고 될 일이 안 되기도 했는지 모르겠지만 전화상으로 풀 뽑으라고 다그치는 친정 엄마와 이를 중재하려는 아빠가 한차례 더 다툴 뻔한 건 명백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차를 새로 사고 운전대를 처음 잡으면서 초보 운전 스티커를 사 놓고 붙여야지 하면서 안 붙이고 몇 달을 버티다 이제는 초보 운전이 아니게 된 게으름뱅이 나니까 한 달이나 더 내버려 두는 게 가능했다고 본다. 맨날 바쁜 남편 보고 뽑아 달라고 했지만 한 사람이 가끔 두어 시간 뽑는 걸로는 표도 안 났다. 그러다 오늘에서야 내가 출동했다. 아이들이 옆집 할머니 집 마당에서 노는 사이에 목장갑을 끼고 호미를 들었다. 그렇게 잡초를 하나둘 뽑다 보면 힐링이 될 줄 알았는데 십분도 안 돼 손가락이 아프고 다리가 저려서 힘이 들었다. 질긴 잡초 뿌리를 뽑다가 뒤로 나자빠져 잉잉 울었더니 어디선가 착한 소가 나타나 풀을 다 먹어 치우더라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힘들었지만 꾹 참고 있다가 마침 놀러 나간 아이들이 돌아오고 모기가 다리를 물길래 못 이기는 척 손을 놓았다.

잡초를 뽑다 보면 그들의 짐승같은 생명력에 감탄을 하게 된다. 누구도 반기지 않고 미워하는 잡초지만 아랑곳하지 않는 심성으로 뜯어도 곧 다시 더 길게 자라는 잡초! 이를 보고 김수영 시인이 누웠다 다시 일어나는 ‘풀’에 대해 읖조리셨던가. 잡초 같은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보통사람들을 보았던가. 돌아가신 김수영 시인이 살아 계신다면 지금 우리네 사람들을 보고 다시금 잡초 같은 ‘풀’을 노래할 수 있을까. 아무리 거센 바람이 불어도 쓰러지지 않고 누웠다가도 다시 일어나며 잡초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실제로 아무리 거센 바람 앞에서라도 쓰러지고 마는 잡초는 보질 못했다. 그래서 나는 우리들 앞에 놓인 어려움이 고작 바람에 불과하기를 바란다. 끝날 것 같지 않는 무더위도, 숱한 오해와 이기심들도 불면 날아가는 바람이기를 바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잡초와 같은 ‘사람’이니까.

오, 세상에나. 날씨가 더워서 그런지 처음에 하려고 했던 이야기가 뭐였는지도 생각나지 않게 풀 이야기만 하고 집에 들어간다.(또 날씨 탓이네?!!)

어쨌든 나머지 잡초는 아마 남편이 깨끗이 다 메 줄 것으로 믿는다. 훤해진 마당을 배경으로 아이들이 놀고 있는 사진을 찍어서 자신 있게 친정 엄마께 보내 드려야지.

 
 
김혜율(아녜스)
(학교에서건 어디에서건) 애 키우는 거 제대로 배운 바 없이 얼떨결에 메리, 욜라, 로 세 아이를 낳고 제 요량껏 키우며 나날이 감동, 좌절, 희망, 이성 잃음, 도 닦음을 무한반복 중인 엄마. 그러면서 육아휴직 5년차에 접어드는 워킹맘이라는 복잡한 신분을 떠안고 있다. 다행히 본인과 여러 모로 비슷한 남편하고 죽이 맞아 대체로 즉흥적이고 걱정 없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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