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자 유가족 상처에도 주목

1588-9191. ‘구원’을 상징하는 전화번호로 그동안 약 100만 건 가까운 상담을 해 온 한국생명의전화가 최근 40주년을 맞았다. “스스로 삶을 포기하려는 이들을 세상과 연결해 주는 생명줄”이 되겠다는 목표로 수많은 훈련받은 자원봉사자들이 24시간 5교대로, 365일 고통에 빠진 사람들과 대화를 나눠 왔다.

1976년 서울생명의전화 개통으로부터 40년이 흐른 지금 종교인들이 기억해야 할 교훈은 무엇이 있을까? 서울 종로구에 있는 생명의전화 사무실을 방문해 실무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전화를 받는 상담실도 살펴봤다.

우리나라의 자살 문제가 세계 정상급으로 심각하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중앙 자살예방센터에 따르면 2013년에 자살로 죽은 사람은 1만 4427명이었으며, 10만 명당 자살자 수는 28.5명이다.

▲ 서울 종로구에 있는 한국생명의전화 상담실 모습. ⓒ강한 기자
하상훈 한국생명의전화 원장은 자살에 개인 책임이 전혀 없다고 볼 수 없지만, 공동체의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살하는 사람이 겪었을 수많은 관계 속의 어려움을 염두에 두기 때문이다. 또한 하 원장은 “자살을 막지 못하는 것은 공동체가 그만큼 건강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며, 따라서 “공동체를 어떻게 건강하게 만들어 가느냐가 자살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걱정은 자살한 사람의 유가족이다. 하 원장은 전에는 왜 자살 예방 활동을 하는지 질문 받으면 “생명이 소중하기 때문”이라고 답했지만, 요즘은 ‘남은 사람들의 고통’에 관심을 많이 갖는다.

“즐거움도 보람도 의미도 느끼지 못하고 우울증에 빠져 자살 충동을 갖고 있는 유가족이 많아요. 자살을 막지 못했다는 자책, 수치심 때문에 공동체 안에서 제대로 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죠. 한 사람이 자살하면 평균 5-6명의 심각한 PTSD(심리적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사람이 생깁니다. 1년에 1만 4000명이 자살한다면 그 6배가 되는 사람들이 이렇게 되죠. 어떤 저명한 사람의 자살은 전국민적 외상을 입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외국에서는 자살자 유가족을 희생자(victim), 생존자(survivor)라고 부르기도 한다. 생명의전화가 자살 유가족 상담과 자조 모임, 학생이 자살한 학교를 위한 프로그램에 노력을 많이 기울이는 이유다.

한국생명의전화가 비교적 최근 새롭게 시작한 것이 ‘SOS 생명의전화’다. SOS 생명의전화는 자살하려는 사람에게 ‘마지막 전화’를 하도록 해 마음을 돌리게 하거나 자살 시도를 목격한 사람이 빠르게 신고할 수 있도록 하는 긴급전화기다. 119와 생명의전화로 연결되는 2개 버튼이 달려 있다.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의 지원을 받아 2011년 한남대교를 시작으로 한강의 여러 다리 등 자살 다발 지역에 설치됐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보급에 따라 생명의전화도 변화를 겪었다. 우선 누구나 휴대폰 하나를 들고 다니는 세상은 생명의전화에도 접근성이 더 좋아진 것이다. 전화번호만 알고 있으면 누구나 필요할 때 생명의전화로 전화를 걸어 고민을 나눌 수 있다. 하 원장은 휴대폰 문자메시지, SNS를 활용한 상담 필요성도 많이 느끼지만 생명의전화가 시행하기에는 아직 여력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생명의전화 인터넷 상담은 주로 이메일 상담인데, 하 원장은 인터넷 상담은 문서로 남는다는 점에서 특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상담을 받는 사람들이 상담 메일을 인쇄해 보고, 갖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훨씬 더 책임성이 요구됩니다. 봉사자는 맞춤법부터 띄어쓰기, 줄 간격까지 글쓰기의 하나하나를 훈련 받습니다.”

▲ 마포대교에 설치돼 있는 SOS 생명의전화. ⓒ강한 기자

생명의전화는 그동안 해 오던 전화 상담과 인터넷 상담, 대면 상담을 잘 하면서 종합상담으로 발전시켜 나갈 계획을 갖고 있다. 자살까지 생각할 만큼 고통에 빠져 있는 사람이 대면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장소를 한강에 설치할 준비도 하고 있다. 우선 컨테이너 두 동을 마포대교 하류 주차장에 설치해 시범운영할 예정이다.

세계적으로 생명의전화는 오스트레일리아 감리교의 알렌 워커 목사가 시작한 것이다. 목적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 봉사하며 사랑을 실천한다는 것이고, 초창기부터 개신교 신자뿐 아니라 가톨릭, 불교 신자도 함께해 왔다. 하 원장은 생명의전화 봉사 경험이 불교의 ‘자비의 전화’, 천주교에서는 ‘나눔의 전화’로 발전했다고 말했다. 나눔의 전화는 올해 초 한마음한몸 자살예방센터 상담전화로 합쳐졌다.

이런 경험을 돌아보며 하상훈 원장은 한국에서 생명의전화가 갖고 있는 종교적 바탕은 에큐메니즘(ecumenism, 교회 일치 운동)에 가깝다고 말했다. 그는 “생명의전화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어디에도 속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