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철학, 지금 우리 삶의 철학 - 유대칠]

오늘부터 격주 금요일에 유대칠의 "중세철학, 지금 우리 삶의 철학"(총 12회)이 연재됩니다. 오늘날에도 계속되는 자본, 노동, 여성 인권, 행복 등에 대한 인간 고유의 고민과 염려를 중세에서 어떻게 답했는지, 그 참 '뜻'을 이해하면서 지금 우리 삶을 궁리해 나갈 길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칼럼을 맡아 주신 오캄연구소장 유대칠 씨에게 감사드립니다. - 편집자

‘중세’는 억울하다. 중세라면 흔히 ‘마녀사냥’을 떠올린다. 손발을 묶어 물에 던졌을 때, 물 위로 뜨는지 뜨지 않는지로 식별한다는 비이성적 마녀 식별 방법은 중세 것이 아니다. 16세기 빌헬름 아돌프 스크리보니우스(1550-1600)의 것이다. 루터(1483-1546)와 칼뱅(1509-1564)보다도 후배인 그가 중세를 대표할 수 있을까? 1561-1652년 독일 로텐부르크의 어린이 마녀사냥도 그렇다. 16-17세기가 중세인가? 마녀사냥을 설명하기 위한 대표적 문헌인 "마녀의 망치"도 1486년에 나왔다. 그렇다면 중세가 끝난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가 살던 시기의 작품이 중세를 대변할 수 있는가? 중세는 정말 억울하다.

중세가 정말 비이성이고, 중세철학이 그러한 시대의 산물이라면, 그 쓸모에 대하여 의심할 수 있다. 하지만 오해다. 학문의 중심지인 ‘대학’이 처음 체계적으로 문을 연 것이 바로 ‘중세’다. 그리고 대학에서 철학이라는 이성의 작업이 활발히 진행됐고, 그 철학의 도움 속에서 이성적 동물인 인간이 이성적으로 성서를 이해하고자 노력한 시대다. 그렇다고 이성이 신앙을 지배하지도 않았다. 신앙의 신비 앞에서 이성의 한계를 인정하며 겸손하던 시대이기도 했다. 당장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와 에크하르트(1260?-1327)에게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중세는 이렇게 이성의 치열한 고민과 겸손이 공존하던 시대다.

광신이 아닌 평범한 인간의 시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평범한 인간의 시대다.

“미친 짓을 들으니 마음이 아프구나. 힘들게 대학에 보내 놓으니 공부는 하지 않고, 유흥에 빠져 있다지. 그런 미친 짓을 그만두고 열심히 공부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너에게 도움을 주지 않을 생각이다. 명심해라! 지금이라도 당장 공부하기 바란다!”

13세기에 한 아버지가 볼로냐 대학에서 공부하는 아들에게 보낸 편지다. 토마스 아퀴나스와 보나벤투라(1221-1274), 그리고 대 알베르토(1200?-1280)가 살던 시대다. 하지만 지금 부자간 흔한 이야기와 다르지 않다. 중세의 고민은 이렇게 우리에게 친근하다.

▲ 중세의 삶도 지금 우리와 다르지 않다. '독일 본 도시 건설', 작가 미상. (12세기) (이미지 출처 = commons.wikimedia.org)
자본의 위험성을 아무리 경고해도 당장 눈앞의 이익을 선호한다. 중세도 마찬가지다. 1179년 3차 라테라노공의회에서 고리대금업을 ‘영혼의 죽음’이라 했지만, 막을 수 없었다. 오히려 13세기 초 이탈리아 은행가들은 알프스 이북까지 활동 영역을 넓혔다. 1266년 헨리 6세의 "빵과 맥주에 대한 조례"에서는 상품의 ‘정당한 가치’를 두고 고민했다. 돈에 대한 욕망은 중세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도 막대한 자본을 벌 수 있는 광물 산업은 매력적이듯 중세의 광산개발 붐도 크게 놀랄 일이 아니다. 그들도 돈 욕심을 가진 지금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요즘도 몰래 오염물질을 버리는 이들이 있고, 이는 사회적 문제가 된다. 중세도 다르지 않았다. 1345년 정육점과 가금류를 파는 이들을 향한 런던의 포고령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정육점 주인들은 가축의 내장을 길거리에 버렸다. 거리에서 썩어가는 내장은 질병의 원인이 됐다. 이를 두고 법정에서 서로 다퉜다. 비록 그 오염의 크기가 지금보다 작지만 중세도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했다.

이 문제는 우리의 고민이기도 하다. 최근 메르스 사태와 같이 전염병으로 인해 우린 힘든 시간을 보냈다. 중세도 무서운 돌림병이 유행했다. 이에 따라 13세기 유럽 전역에 많은 병원이 세워졌다. 13세기 초반부터 모든 대학에서 전문 의료인, 즉 의사를 양성하기 시작했고, 14세기부터 의사가 병원에 상주하며 치료하기 시작했다. 비록 지금에 비하면 그 규모나 모양새가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고통을 덜기 위한 궁리는 중세 역시 다르지 않았다.

중세의 많은 고민을 이렇게 나열한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와 다르지 않은 고민을 하며 살았다는 것을 보기 위해서다. 자녀의 학업을 걱정하고, 어찌 하면 돈을 더 벌 수 있을 것인지 고민하며 살아가던 이들이다. 지금 우리와 비슷한 평범한 이성적 동물이다. 이성적 동물이기에 이성적으로 답을 구하려 했다. 둔스 스코투스(1266-1308)는 정당한 가격을 고민했고, 토마스 아퀴나스는 고리대금에 대해 분노했으며, 니콜 오렘(1320?-1382)은 금전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시도했다. 광산 개발이 유행하던 시기 알베르투스 마그누스는 "광물에 대하여"를 적기도 했다. 중세 유럽의 부족한 의학 수준을 해결하기 위해, 당시 아랍의 선진 의학서적을 라틴어로 번역하고, 대학에서 이를 강의했다. 10세기 이후 서서히 발달하는 상업사회와 그에 따른 자본의 중요성과 관련된 사회적 고민 역시 놓치지 않았다.

이처럼 중세 인간은 자신의 이성으로 답을 구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 노력 가운데 하나가 중세철학이다. 그렇다면 중세철학은 지금 우리에게 과거형이 아닌 현재형으로 유의미한 무엇인가를 조언해 줄 수 있을지 모른다. 우리네 삶의 고민과 비슷한 고민을 하며 살아간 이들의 진지한 궁리의 이성적 결실이기 때문이다. 물론 중세철학이 만병통치약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들의 궁리가 지금 우리에게 유익한 무엇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중세철학이란 ‘과거’의 선배는 ‘지금’ 삶의 철학을 만드는 후배 우리에게 매우 유익한 조언을 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중세는 그 동안 너무 억울했다. 이젠 오해를 풀고 조언을 구해 보자.

 
유대칠(암브로시오)

중세철학과 초기 근대철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그와 관련된 논문과 책을 적었다.
혼자만의 것으로 소유하기 위한 공부보다 공유를 위한 공부를 위해 노력 중이다.
현재 대구 오캄연구소에서 작은 고전 세미나와 연구 그리고 번역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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