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선의 너영나영]

“공부를 잘하는 것은 잘난 덕분입니까? 아니면 재능입니까?”

피정에서 신부께서 이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참석자들은 머뭇머뭇하면서도 제가 잘났기 때문이라는 데에 손을 많이 들었다. 그 신부는 음악이나 미술에 소질을 보이면 재능이 있다고 하면서 공부를 잘하는 것은 재능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느냐고 했다.

그 후 신부의 말씀을 종종 되새기는데 점점 더 공부는 재능이라는 생각이 든다. 필자의 믿음이 빈약해서 이제야 공감하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좋은 머리는 주님이 주신 것이고 그 머리를 스스로 계발하도록 도우시는 것도 주님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최고로 머리가 좋은 자들의 범법과 일탈을 보면서 더욱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

부장판사 출신의 최유정 변호사, 검사장 출신의 홍만표 변호사, 현직인 진경준 검사장이 그들이다. 그들은 공부를 잘한 사람들이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어렵다는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사법부와 검찰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사회 정의를 잣대로 사람들을 심판했다. 진경준은 서울법대 3학년 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이듬해에 행정고시에도 합격했다. 그런데 최유정과 홍만표는 퇴직 후 곧바로 전관예우와 로비로 연 수십억-100억 원씩 떡 주무르듯 벌어들이다 변호사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됐다. 진경준은 넥슨 창업주 김정주로부터 공짜로 비상장 주식을 받아 넥슨재팬 주식으로 갈아탄 뒤 10년 만에 팔아 126억 원의 대박을 터뜨렸다.

그들이 범죄에 빠져든 것은 지나친 자기애, 자기중심적 사고 탓일 것이다. 그들은 공부를 잘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엘리트 코스를 거친 것에 대해 순전히 자기가 잘났기 때문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잘난 것을 스스로 확인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 주는 방법은 권력과 금력을 얻는 것이었다. 변호사법 위반과 뇌물 수수로 수십억-100억 원씩 벌어들인 것도 자신에 대한 당연한 보상으로 여겼을 것이다. 그들은 한때 수만 원짜리 물건을 훔친 생계형 범죄자들도 벌했을 것이다. 그런 그들이 범죄를 저지르면서 제 양심을 살펴보았을까.

▲ (이미지 출처 = flickr.com)

만약 공부를 잘한 것을 하느님이 주신 선물로 생각했다면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거저 주신 선물이기에 우리의 것이라고 주장하기 어렵다는 것을 조금이라도 믿었다면 범죄의 늪에 빠져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자기애에 빠져 하느님의 선물을 제멋대로 탕진한 탓에 지금 어두운 감옥과 허무 속에 빠져들고 말았다. 사도 바오로는 말했다. “누가 그대를 남다르게 보아 줍니까? 그대가 가진 것 가운데에서 받지 않은 것이 어디 있습니까? 모두 받은 것이라면 왜 받지 않은 것인 양 자랑합니까?” (1코린 4,7)

요즘 우리 사회를 분열시키는 가장 큰 요인은 불의하게 부를 축적하는 것과 그로 인한 빈부 격차의 확대다. 검사와 판사에게 심판권을 준 것에는 불의하게 부를 축적하는 거악들을 처벌해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 달라는 바람이 담겨 있다. 나향욱 교육부 전 정책기획관은 우리 사회의 1퍼센트에게 부가 집중되는 것을 당연시하고, 99퍼센트의 민중은 개, 돼지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해 국민의 분노를 불렀다. 한데 검찰과 법원의 고위직 출신들이 스스로 불의하게 부를 축적하는 데에 앞장을 섰으니 국민이 분노와 좌절감이 더 클 수밖에 없다.

“....나는 공익의 대표자로서 정의와 인권을 바로 세우고 범죄로부터 내 이웃과 공동체를 지키는 막중한 사명을 부여 받았습니다.... ” 검사 선서를 보면 검사로서의 자긍심과 사명을 강조한다. 하지만 검사들에게 자긍심을 일깨우고 윤리를 가르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제가 잘나서 검사가 되고 판사가 됐다는 자기애는 국민을 섬기는 게 아니라 국민 위에 군림한다는 생각으로 이끌 수 있다.

요즘 재능 기부라는 말이 자주 쓰인다. 이를테면 음악이나 미술을 전공한 분들 중에 자신의 탈렌트를 아무런 대가 없이 기부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느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공부를 잘하는 것도 탈렌트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을 고무하고 격려하는 일은 필요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하느님의 선물임을 일깨울 필요가 있다. 공부를 잘한 것을 하느님이 거저 주신 선물로 생각한다면 우리 사회가 조금은 평화로워지지 않을까. 선물 덕분에 얻은 지위와 부와 지식과 인간관계를 공동체에 환원하고 기부해야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느님의 귀한 선물을 범죄와 비리를 저지르고 국민의 가슴에 못을 박는 데 쓰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

 
 
황진선(대건 안드레아)
논객닷컴 편집인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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