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데기 밥상 통신 - 18]

세상에 쉬운 일이 하나도 없다는 건 진작 알고 있었지만 젖 먹이는 일이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날마다 콩물을 내어 먹고, 미역국을 밤낮없이 먹고, 한약까지 지어 먹어도 젖 나오는 게 시원치 않았다. 심지어 가슴 마사지해 주시는 분을 모셔서 몇 차례 마사지까지 받았지만 크게 효과가 없었다. 마사지로 유선을 자극해서 젖이 잘 돈다 싶어도 다나가 제대로 빨지를 않으니 다시 원상태가 되고, 젖이 잘 나오지 않으니 더 빨지 못하게 되고.... 그런 악순환이 거듭되었다.

태어난 지 두 달 가까이 되어서야 태어날 때 몸무게를 겨우 회복하게 된 다나를 보고 마사지 이모가 말했다,
"자기야, 일단 아기가 힘이 있어야 하니까 분유라도 많이 먹여. 아기가 제대로 힘차게 빨지 않으면 젖이 늘 수가 없어."
"분유를 먹이긴 먹이는데 숟가락으로 떠먹여서 그런가 잘 받아먹지를 않네요."
"젖병에다 먹이지 왜?"
"안 그래도 젖 빨기를 힘들어하는데 젖병에 길들면 아예 젖을 안 빨까 봐서요."

마사지 이모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젖병으로 먹여야 아기가 분유를 잘 받아먹을 거라 말했지만 나는 그때마다 이런 식으로 답했다. 모유도 먹고 분유도 먹으며(젖도 빨고 젖병도 빨며) 잘 크는 아이도 많다고 하지만 모유와 분유 사이에서 결국 모유를 포기하게 된 사례가 훨씬 많기에 나는 그것이 두려웠다. 말하자면 숟가락으로 떠먹이기는 내가 모유 먹이기를 지속하기 위한 마지노선이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꿋꿋하게 버티기엔 심적 부담감이 너무 컸다. 아기 많이 컸냐는 물음 앞에서 언제나 죄인이 된 듯 작아져야만 했으니까. 어떤 날은 다나가 젖을 잘 빨고 젖도 잘 돌아 '이제 됐다, 고생은 끝났다' 싶다가도 어떤 날은 젖줄이 꽉 막힌 듯이 젖이 돌지 않아 '그냥 젖병에 분유 먹여 편하게 키우자. 나도 고생, 애도 고생.... 이게 뭐냐. 괜한 고집 피우지 말고 내려놓자.' 싶은 마음이 들었다.

▲ 곡식 가루에 다시마 조각과 물을 넣고 끓여 국간장으로 약하게 간을 한다. 거기에 물을 넣어 농도를 조정하고 조청 듬뿍 넣어 다나 입으로 쏘옥! ⓒ정청라

그러다가 다나가 태어난 지 딱 90일째 되던 날 오후, 땀을 뻘뻘 흘리며 젖 먹인다고 용을 쓰다가 뭐에 홀린 듯이 젖병을 꺼내 들고 거기에 분유를 탔다. '나도 할 만큼 했어. 이젠 정말 지쳤어.' 하고. 그랬더니 다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반기며 젖병을 잘도 빠는 거다. 숟가락으로 분유를 떠먹일 때는 하루에 분유 100밀리리터 먹이기도 쉽지 않았는데 젖병에 주니 한 번에 80밀리리터를 거뜬히 먹었다. 이렇게 분유를 잘 먹는 아이였다니! 그동안 다나가 분유를 싫어하는지도 모른다 생각하던 터라 난 너무 깜짝 놀랐다. 게다가 다나는 젖병을 빨며 너무나 편안한 자세를 취했다. 그런 다나를 보며 난 스스로를 위로했다. '잘한 결정이야. 이제 포동포동 살이 오를 일만 남았어.'

그런데 예상했던 대로 젖병을 빨자마자 다나는 젖을 거부했다. 젖병을 빨더라도 젖을 잘 빨기를 애타게 바랐지만 젖을 물리려고 하면 한번 빨아보지도 않고 울어댔다. 마치 엄마 젖에 한이라도 맺혔다는 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이제 모유 수유는 물 건너간 건가? 이제 우린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고야 만 건가?'

그렇게 생각하니 다나와 나 사이에 이어져 있던 질긴 끈이 하나 뚝 끊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말도 못하게 서글펐다. 젖이 불어도 다나가 젖을 빨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으니 그걸 짜내서 젖병에 담아 다나에게 물려야 했는데, 기분이 참 묘했다. 아무리 힘들었어도 그렇지 지난 3달 동안 물고 빨던 젖을 이렇게 쉽게 내동댕이치다니.... 아주 오랜만에 미역국 없이 밥을 먹으며 내가 밥을 먹어야 하는 이유마저 잃은 것 같아 몹시 허전했다.

그렇게 이틀을 보냈을까? 그 이틀 동안 온갖 모유 수유 성공담을 찾아 읽으며 다시 젖을 물리기로 결심했다. 나보다 더한 상황에서도 모유 수유를 포기하지 않은 엄마들의 경험이 내게 자신감을 북돋워 주었다. 또한 분유 말고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는데 내가 왜 굳이 분유에만 사로잡혀 있나 싶어 이유식을 일찍 시작하기로 했다.

다행히 우리 집은 농사꾼의 집. 곡식이야 널리고 널렸다. 당장 집에 있는 온갖 곡식(현미, 찹쌀현미, 흑미, 콩, 수수, 귀리, 보리, 밀 등)과 말린 밤을 씻고, 말려서 곱게 가루를 내 만반의 준비를 해 두고 다음 날 아침 날이 밝자마자 그것으로 죽을 쒔다. 일명 아가죽.

▲ 아가죽 먹고 온 얼굴에 죽 범벅이 된 다나. 다나야, 땅 엄마 은혜 잊으면 안 된다.ⓒ정청라

"다나야, 엄마가 이랬다저랬다 해서 미안한데 엄마는 너한테 젖을 꼭 먹이고 싶어. 엄마 젖이 모자라면 땅 엄마가 주신 젖으로 채우면서 그렇게 한번 해보자. 오늘부터 젖병 없으니까 배고프면 젖을 빨거나 죽을 먹거나 둘 중 하나야. 처음엔 괴롭겠지만 우린 할 수 있을 거야."

내가 흔들리면 다나도 더 힘들어할 것 같아서 아예 못을 박고 시작했다. 그랬더니 오전에는 아가죽을 꽤 많이 받아먹고 오후에는 다시 젖을 빨기 시작했다. 그 뒤로도 이삼일 동안은 다나가 혼란스러워 하긴 했지만 결국은 예전처럼 다시 젖을 빨게 되었다.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끝이 아니라서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나는 신이 나서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그렇게 극적으로 모유 먹이는 (고생 속의) 기쁨을 되찾았다. 또한 신기하게도 100일 이후부터는 다나 먹을 만큼은 젖 양이 맞춰지는 것 같다. '모자라면 어떠냐, 나오면 나오는 대로 먹고 모자란 양은 아가죽으로 채우면 되지....'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서 그런가? 아무튼 다나는 몸무게가 부쩍부쩍 늘진 않아도 잘 먹고 잘 싸며 무탈하게 자라고 있고 죽도 젖도 잘 먹는다. 분유와 모유는 양립이 어렵지만 아가죽과 젖은 그렇지가 않으니 참으로 놀라운 일!

내가 다 먹여 살리지 못해도 땅 엄마가 대신 먹여 살려 주실 테니 아무 걱정 없다. 아가죽아, 앞으로도 다나를 잘 부탁한다. 

▲ 온갖 곡식은 다나를 먹여 살릴 땅 엄마의 젖. ⓒ정청라

정청라
산골 아낙이며 전남지역 녹색당원이다. 손에 물 마를 날이 없이 늘 얼굴이며 옷에 검댕을 묻히고 사는 산골 아줌마. 따로 장 볼 필요 없이 신 신고 밖에 나가면 먹을 게 지천인 낙원에서, 타고난 게으름과 씨름하며 산다.(게으른 자 먹지도 말라 했으니!) 군말 없이 내가 차려 주는 밥상에 모든 것을 의지하고 있는 남편과 아이들이 있어서, 나날이 부엌데기 근육에 살이 붙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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