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규 신부] 7월 24일(연중 제17주일) 루카 11,1-13

하느님 아버지께 청하는 건, 무엇이든 얻을 수 있다는 명제는 옳다. 적어도 하느님은 이루어 주셨고 앞으로도 그러실 것이다. 무엇을 청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걸 염두에 둔 말이 아니다. 하느님은 뭐든 이루어 주신다. 이제껏 하느님은 우리 인간을 배신한 적이 없다. 비는 건 모두 이루어 주셨다. 입시면 입시, 건강이면 건강, 사업이면 사업, 권력이면 권력.... 모든 걸 이루어 주셨다.

무슨 소리냐? 하나도 이루어진 거 없는데? 그렇다! 하나도 이루어진 게 없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하느님이 모든 걸 이루어 주셨다는 소리가 무엇이냐? 나는 ‘우리’의 관점에서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이루어 주셨다는 말은 그분께 빌고 비는 주체를 "우리"로 규정할 때 그렇다. 우리 중에 누군가는 좋은 대학을 나왔고 우리 중에 누군가는 건강과 사업이 잘 되었고 우리 중에 누군가는 권력을 잡았다. 내 것이 되지 못했다고 하느님께서 이루어 주시지 않은 게 아니다. 오늘 복음에 나타나는 등장인물은 온통 복수형으로 소개된다. 제자들, 그들, 너희, 청하는 이들.... 우리 중 누구는 무언가 이루었다. ‘우리’는 그러므로 하느님 아버지께 비는 무엇이든 이루어진 자리다.

우리가 하느님께 비는 대부분의 것들을 두고 흔히 기복신앙이라 비판하기 쉽다. 허나 종교는 기복이 빠진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기복 신앙의 모난 부분을 고쳐 나가는 방법은 내가 바라는 세속적 가치들을 무시하거나 외면해서 될 일이 아닌 듯하다. 세상 누군가는 받고, 누군가는 잃을 것인데, 받는 것이 세속적이라 애써 외면하면 잃는 것에 길들여질 수밖에 없는 이들에게 너무 미안한 일이다. 예수도 개인적 바람을 이야기했고, 사도 바오로도 그랬다.(마르 15,36.39.41; 2코린 12,8 참조) 기복신앙이 악한 것은 ‘개인’을 위해 ‘우리’가 모조리 무시되기 때문이다. 기복을 ‘우리’ 안에서 확장시키는 것으로 기복은 선한 아버지의 뜻이 될 수 있다.

▲ '나, 우리, 하나', 얀 엔. (1906) (이미지 출처 = commons.wikimedia.org)


하느님은 "우리" 아버지시고 하느님께 비는 건 "우리"로서 가능하다. 하느님은 아들과의 관계 안에서 아버지시고, 관계 안에서 아들은 하느님을 아버지로 고백했다.(호세 11,1; 말라 3,17; 신명 1,31 참조) 빌고 얻는 건, 관계 안에서의 일이지 개인적 호불호에 따르지 않는다. 카인이 살인자가 되지 않고 아벨 곁에서 박수치며 축하했더라면 어땠을까 상상해본다. 개인이 강하면, 그것이 전부면 ‘우리’는 죽어간다.(‘아벨의 피’가 복수 형태로 사용된 것은 유의미하다)

오늘 복음에 주님의 기도는 하늘 뜻이 일상의 필요함에 놓여 있고 인간 서로의 용서 안에서 이루어지길 비는 데 소용되어야 하며, 비유의 친구는 다른 친구를 위해 간절히 청하는 것이므로 개인의 청으로 이해해서는 안 되는 데 그 가치가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따라서 오늘 복음은 관계로의 의지로 이해해야 한다. 관계의 의지는 개인들의 바람이 충돌하는 데서 생기는 ‘우연’의 기쁨이다. 설사 그것이 순간적 개인의 욕구에 충족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는 조금씩 성장하고 발전했다.

가끔씩 세금을 많이 낼수록 모두가 부유하게 사는 나라들을 보고 듣는다. 함께 손을 잡고 끌어 주면 분명 우리가 원하는 것들 대부분이 이루어질 것이다. 종교가 현실을 살기 위해 신에게 빌고 비는 데 그 역할이 주어져 있다면, 계급적 차별과 현실적 요구에 눈 감은 채 유토피아를 꿈꾸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하느님은 육화하셨고, 하느님은 일상의 필요함 속에 당신을 내어 바치셨다. 세상의 계급을 극복하고 ‘우리’로서 잘사는 데(그것이 물질적이든 영적이든) 종교적 고민과 실천들이 이루어진다면 우린 그걸 혁명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적어도 개인끼리 치고받는 대한민국에서 그런 종교를 기대하는 건, 과히 혁명적이다. 

 
 

박병규 신부(요한 보스코)
대구가톨릭대학교 인성교육원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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