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수가 본 교회와 사회 - 34]

1. 10여 년 전 일이다. 졸업 후 연락이 없던 대학 동창이 급히 만남을 청했다. 사연은 이러했다. “우리 어머니가 본래는 어릴 때 성당에서 영세하셨는데, 개신교 집안으로 시집오게 되셨어. 우리 친가는 3대째 내려오는 개신교 집안이라 온 가족이 다 개신교 신자야. 아버지는 엄마가 성당에 나가는 것을 허용할 태세였는데, 할아버지가 완고하셔서 결국 성당에 나가실 수 없었지. 어머니는 시집오기 전까지 매우 독실하셔서 늘 마음속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셨어. 그러다 우리 키우느라 시간 보내고, 시아버지, 남편 병수발 드느라 뜻을 이룰 수 없으셨지. 그런데 이제 노환으로 얼마 살지 못하실 것 같으니 유언같이 내게 부탁을 하시네. 어머니께서 적어도 장례식만은 천주교에서 하고 싶다 하셔. 내가 유독 엄마와 가까웠으니 소원을 들어드리고 싶어. 가족들은 내가 설득할 거고. 방법을 찾아 주면 고맙겠어.”

하도 친구의 뜻이 간절해 친구 어머니가 입원해 계신 성모병원에 찾아가 원목신부님께 연결해 드렸다. 원목신부님이 잘 마무리해주셔서 친구 어머니께서 편안히 눈을 감으셨고, 장례도 잘 치렀다.

우리나라는 종교다원사회라 이런 일들이 제법 일어나는 편이다. 한국의 유력한 제도종교들은 여성이 많고 남자가 적은 성비(性比) 불균형 상태에 있다. 천주교가 유독 심한 편이다. 교적 상으로는 남자가 적진 않은데, 20-30대가 성당에 잘 안 나오다 보니 성비 불균형이 이 연령대에서 더 심하게 인지되는 것이다.

개신교는 가족의 신앙인 경우가 많고, 청년들을 흡인하는 요인도 우리보다 많아 남자 청년들이 교회에 제법 있다. 게다가 천주교와 개신교는 1990년대 이후 신자 계층구성이 중산층 중심으로 편제되어 시장에서 흔히 말하는 괜찮은 신랑감들이 개신교인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우리보다 신자수가 많고, 계층 구조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개신교인이 많으니 천주교 신자 여성이 개신교 남성을 배우자로 만날 가능성이 높다.

친구 어머니처럼 개신교 집안에 며느리로 들어가면 그 집안은 가족 전체가 신자일 가능성이 높아 혼자 성당에 나가겠다고 주장하기가 쉽지 않다. 요즘이야 다소 자유로워졌지만 지금 40대 이상인 분들한테는 이 주장이 어려운 일이었다. 이런 사정 탓에 본인이 의사가 있더라도 집안에 분란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 후일을 도모하는 경우가 제법 있다.

이런 일이 흔하다 보니 연구자들은 “신자 여성이 개신교도 남자와 결혼하면 개신교 신자가 될 확률이 높고, 불교 신자나 비신자 남성과 결혼하면 그들이 천주교 신자가 될 확률이 높다”는 말을 가끔 하곤 한다. 사실 제법 확률이 높은 판단이다. 아무튼 이런 이유로 잠정적으로, 또는 아예 천주교를 떠나는 신자들이 있다.

▲ 성당에서 열리는 결혼식. (이미지 출처 = www.youtube.com)

2. 다른 사례를 하나 더 소개한다. K는 남성이고 50대 초반이며 회사원이다. 서울에 있는 대학을 졸업했다. 당시는 시절이 좋아 졸업 뒤 바로 직장을 얻을 수 있었다. 자랄 때 식구들은 무종교였다고 한다. 자신도 종교 경험이 전혀 없었다. 다만 다닌 학교가 가톨릭계 대학이라 교양 필수로 가톨릭 과목을 2개 수강했다.

그는 20년 전 직장에서 신자인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아내는 신자라고는 하나 사실상 냉담자였다. 그래서 종교 때문에 결혼이 지체되리라는 생각은 아예 하지 않았다. 그런데 결혼 허락을 받으려 하니 장인이 완강하였다. ‘다른 조건은 다 무시할 수 있는데 신자가 아닌 건 용납할 수 없으니 반드시 세례를 받고 와라!’

그래서 그는 울며 겨자 먹기로 예비자 교리반에 등록했다. 안 받는다고 했다간 여자 친구에게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오해를 받을 가능성도 있었다. 마침 평일 저녁은 여유가 있는 직장이라, 여자 친구가 교리반에 같이 다녀 주겠다는 약속을 믿고 시작했다. 정작 다닐 때는 재미가 있어 빠지진 않았다. 그렇게 8개월여 출석 끝에 세례도, 혼인성사도 받았다.

뜻을 이루고 나니 성당에 나가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아내라도 열심히 하면 어찌 해 보겠는데, 아내도 의사가 강하지 않았다. 그래서 둘이 뭉개게 되었고, 그 결과 아이 영세를 안 시켰고, 주일학교도 보내지 않았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나이가 들면 신앙이 의지처가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하고 있다. 성당에서 장례미사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조금은 있다. 그러나 당장은 이제까지와 마찬가지로 성당에 나갈 생각이 전혀 없다.

3. 30여 년 전 서강대학교에서 직장인 예비자교리 봉사를 한 적이 있다. 거의 6년을 했다. 이때 경험한 일인데 어느 기수에서 젊은 여성들이 명동성당에서 혼인해 보고 싶어 예비자 교리반에 들어왔다는 소개를 한 적이 있다. 처음 들을 때는 귀를 의심했는데, 그녀는 진심이었다. 그 뒤로도 교리반에서 같은 경우를 여러 번 더 목격했다.

20여 년 전 즈음 개신교에서 한국 갤럽에 의뢰한 조사가 있었는데, 여기서도 비슷한 결과를 본 적이 있다. 당시 무종교인들 가운데 연령별로는 20대, 직업으로는 대학생인 여성들이 천주교 입교를 다른 연령대, 직업군에 비해 더 원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들이 천주교 입교를 희망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성스러운 결혼식이었다.

▲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4. 사실 성당에서 결혼하고 싶어 영세하겠다는 말이나, 나이 들어 장례미사로 생을 마감하고 싶다는 생각은 동기 면에서 큰 차이가 없다. 물론 둘 사이에 다소 차이는 있다. 전자의 경우는 뜻을 이루면 냉담할 확률이 높은데, 후자는 신자로 생을 마감하니 냉담과 무관할 수 있는 점이다.

5. 이렇게 천주교 신자가 되려는 이유는 다양하다. 혹자는 진지함이 부족한 일부 입교희망자들의 생각에 혀를 찰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난 이들에게 혀를 차기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마이클 샌델이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라는 그의 책에서 상품 아닌 것이 없는 미국 사회의 현실을 고발하였는데, 우리도 미국과 비슷한 처지에 있다고 보는 까닭이다.

과연 종교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이 아니라는 사실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한국교회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고유한 그 무엇이 있을까? 아마 여기에 답할 것이 있다면 신앙, 교회를 상품으로 소비하는 이들을 야단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답할 것이 없다면 이들을 비난할 수 없다.

날로 입교과정이 쉬워지고, 짧아지고, 가벼워지는 현실을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있다. 지당한 우려다. 이 때문에 혹자는 입교절차를 더 엄격히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해법은 아니라 생각한다. 종교 혹은 교회가 그 본연의 내용을 잃은 것, 또는 잃고 있는 것이 더 문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간이 걸려도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박문수(프란치스코)
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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