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수녀의 이콘응시]

En Cristo
겨우내 추운 날씨 속에서도 어떻게 준비하였는지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웅장한 봄의 함성이 온 천지에 울린다 했더니 어느새 숲이 우거졌다. 녹색은 자연의 색이다. 아무리 바라보아도 지겹지 않고 편한 색감이다. 특히 산의 푸르름은 녹색 스스로가 명암을 만들어 조화로움을 한층 돋보이게 한다.

우리 수녀원 마당에도 갖가지 야생화들이 고개를 내미는가 했는데 들꽃들과 어우러져 잡초들도 “나! 꽃!”이라 외치며 벌써부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는 잡초를 뽑지 않기로 했다. 곱게 다듬은 예쁜 잔디도 좋지만 어디에든 씨가 떨어져 잎을 내고 꽃을 피우는 잡초도 자연의 한 생명체로써 마주보며 함께 살기로 하였다. 꽃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아무렇게나 어우러져 있는 이들의 모습은 어디에서나 자신의 모습으로 충실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세상 같아 아름답다.

서울을 다녀오면 공기 좋고 물 좋은 강원도에서 살고 있는 지금이 얼마나 행복한 시간인지 다음 날 아침의 상쾌하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다시 한 번 감사하게 된다. 또한 좋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재미를 주신 것도 선물처럼 느껴지는 것은 지금의 시간이 어느 날을 위한 준비라는 생각이 들기에 매일이 감사롭고 소중하다.

구원자 그리스도 13세기

자! 이콘을 바라보자!
친근한 느낌의 ‘구원자 그리스도’ 또는 ‘통치자 그리스도’ 이시다.
이 계통의 이콘 중에서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것 중의 하나다. 그리스도의 표정이 평화롭다. 온화함이 가득 담긴 시선으로 인간의 가장 근원지인 마음이라는 장소를 조용히 응시하시는 듯하다. 강복을 주시는 오른 손 또한 인간에 대한 자비하신 하느님의 창조적 사랑의 축복처럼 보인다.

왼 손에 들고 계시는 복음서는 여러 가지의 보석으로 장식되어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

그리스 정교회의 전례에 참례했을 때 부제가 들고 나오는 복음서를 보고 놀랐다. 독서대에 단순한 성경이 놓아져 있는 우리 나라와는 다르게 도금한 철제판에 형형색색의 보석으로 장식하고 사제의 입당을 알리면서 복음서를 높이 들고 앞장서 나오는 모습은 말씀이신 주님에 대한 존경심을 갖게 하며 사뭇 엄숙함을 더 했다.

예수님의 후광 양 옆에는 IC, XC 곧 희랍어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약자가 세월의 흐름 만큼 흔적이 지워져 있다. 13세기의 이콘인데도 보존 상태가 좋아 '통치자'라는 제목이 붙어 있지만 일반적인 이미지의 세상 통치자와 다른 자비심 가득한 사랑의 통치자임이 그대로 전해옴과 동시에 이렇게 주님과 우리가 서로 바라볼 수 있는 것도 은총의 자리라 느껴진다.

외국에서 선교를 하다가 가난한 자들의 딱한 사정을 듣고 필요한 그 무엇을 어찌 해결할 것인가를 공동체가 고민하다 보면 얼마 되지 않아 생각지도 않은 방법으로 그것이 해결 될 때가 있다. 그 때 이렇게 작은 기도도 들어 주시는 하느님께서 우리가 온 마음으로 간절히 바라는 기도를 어찌 아니 들어 주시겠는가 싶어 더욱 열심히 하느님께 매달린 적이 있다.

그분의 눈을 깊게 바라보자.

우리를 바라보는 그분은 우리를 알고 계신다. 우리의 바램을 아시고 무엇이 우리를 나약하게 만드는지도 알고 계신다. 우리의 속마음까지 꿰뚫어 보시고 숨겨진 거짓과 진실까지 아신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분을 바라보지만 그분을 모른다. 바라봄으로도 이렇게 다른 시선을 가진 인간이면서도 그저 청하기만 한다. 요구 밖에 모르는 인간을 향하여 그래도 주님은 오른손을 드시며 축복을 주신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임종숙/ 루시아 수녀,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수원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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