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교회의 선택은?

(제프리 커비 신부, <크룩스> 기고자)

7월 11일은 서방교회 수도생활의 아버지인 성 베네딕토 축일이다. 이 위대한 5세기 후반-6세기 초의 성인은 교회 역사 안에서 많은 문명화 노력과 운동에 영감을 줬다.

현대에, 이 성인의 모습에 자극을 받아 일부에서 “베네딕토 모델”(Benedict Option)이라 부르는 것이 떠올랐다.

베네딕토 모델이 정확히 무엇인가, 또는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여러 학자 간에 토론이 있지만, 대체로는 세속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물러나 문명과 그리스도교 신앙의 긍정적 측면을 보존하고 함양하며, 그럼으로써 궁극적으로는 도덕적 진실과 선한 문화를 갖춘 세상을 점차 이루려는 것이다.

이런 모델을 실천할 때, 교회는 “남은 자”(remnant), 즉 믿는 이들이 모인 작은 선택된 집단의 모습을 취한다.

베네딕토 모델이 신자들이 취할 하나의 합법적 가능성이기는 하지만, 과연 이것이 지금 현재 교회가 취할 최선의 선택일까? “남은 자”의 상을 갖고 현대 세상 속에서 교회의 사명에 어떻게라도 도움이 될까?
모델에 관해 중요한 것은 여러 가지 선택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베네딕토 모델에 더해, “다윗 모델” 또한 생각해 볼 수 있다.

다윗 모델은 거인 골리앗과 싸웠던 목자-왕인 다윗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는다. 구약의 이야기에서 골리앗은 압도적이며 폭력적이고 공격적이며, 이스라엘 민족에게 상존하는 위협이었다.

젊은 다윗 왕은 공포에 굴복하지 않았고 이스라엘 진영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는 필리스티아인들과 맞서 싸웠다. 다윗은 소박한 옷만 입었을 뿐 군복을 입지 않았고, 갑옷을 입거나 통상적인 무기도 들지 않았다. 그는 정의감에 힘입었고 땅바닥에서 주운 돌로 골리앗의 머리를 멋지게 맞춰 승리를 거뒀다.

다윗의 행동들은 그의 순수함과 선함으로 고상한 모습을 띄었고 이로써 그는 이스라엘 안에서뿐 아니라 여러 민족 사이에서 도덕적 권위를 얻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인 다윗의 사례에서 끌어낸  “다윗 모델”은 현대 세계의 교회에게는 도전이자 기회다. 목자-왕을 본떠, 이 모델을 따르자면 교회는 왕의 복장이나 갑옷도 갖거나 치장하지 않으면서 소박함을 갖춰야 한다.

이 모델을 따르자면 교회는 성스러움에 초점을 유지하고, 이념이나 권력욕, 또는 정치적 목적이 아니라 정의와 선함의 진실된 정신으로 세상에 참여해야 한다.

다윗 모델을 따르자면 교회가 우리 시대의 골리앗들의 “머리”에 “돌”을 박아야 한다는 것은 상징적이다. 문화의 지성적 개종을 위해 존중하는 토론과 이성을 수단으로 써야 한다는 것이다.

▲ 다윗이 용감하게 골리앗에게 도전했듯이 오늘날 가톨릭교회는 "다윗 모델"로 문화적 과제들에 대응할 수 있다. (이미지 출처 = Shutterstock)
신앙주의(fideism, 편집자 주- 종교적 진리는 이성이 아니라, 믿음에 의해서만 파악된다는 입장), 과중한 신학 체계들, 성급한 도덕적 판단, 오만, 고립주의, 그리고 이런 것들과 비슷한 정신이나 접근법들은 다윗 모델에서는 설 자리가 없다. 이 모델에서는 남은 자를 위한 공간이 없다. 이 모델은 인류 가족 안에서 교회가 제대로 설 자리를 명확히 예시한다. 특히 도덕적 진실이 문제가 되고 무시되며 시대가 어두워 보일 때 그러하다.

다윗 모델이 선택되었을 때 제대로 작동하려면, 교회는 골리앗이 아니라 다윗이 되려고 의식적으로 선택해야만 한다. 성경 이야기에 나오는 이 인물들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교회 생활에서, 사람들이 중요하지 않게 보이고, 선이 찬양되기보다는 악이 고발되는 때에는, 그리고 도덕적 진실이 사람들을 수치스럽게 하고 소외시키는 방식으로 제시될 때, 교회는 골리앗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제도에 대해 충성하고 진흥에 힘쓰면 보상을 받고 이런 것이 인간 존엄, 그리고 아동을 비롯한 취약한 이들의 보호보다 더 우선에 놓일 때, 교회는 골리앗을 따르고 있다.

대중을 관리하도록 창조된 바로 그 제도들 안에서 자비의 사업을 열정적으로 실천하는 일과 대중이 가려진다면 그 교회는 골리앗을 따르고 있다. 미혼모 센터들보다 법원 건물들이 더 중요하고, 가난한 이나 병자보다 제의와 교회 장식물들이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면, 그 교회는 골리앗을 본뜨고 있다.

하지만 교회가 다윗 모델로 복귀하면, 교회는 자신의 권세를 포기하고, 더 이상 종교 외적 형식을 추구하거나 사회 질서 안에서 통제권을 가지려 하지 않는다. (골리앗 교회가 받던) 특권과 특혜는 포기되고, 교회는 인류의 선함에 대한 신뢰를 선택하며 인류의 자유를 존중하는 데 따르는 위험을 감수한다.

이러한 교회는 소박하고 진실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이성과 선함을 이용하여 세상에 관여하고 오늘날의 암흑의 거인들과 맞서 싸운다. 성경의 지혜는 하느님께서는 오만을 배격하시며 설사 그 오만이 옳다고 해도 그렇다고 가르치므로, 이는 겸손하게 하는 선택이며 교회가 진지하게 고려해야만 하는 모델이다.

교회가 다윗 모델을 선택하고 그에 따라 타협 없이 그 모델대로 열심히 산다면, 하느님께서는 그 교회의 일을 축복하실 수 있다. 선의의 백성은, 더 이상 교회의 적대 상대가 아니게 되며, 오히려 친구가 되고 교회와 협력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교회는 어두움에 대해 놀라운 승리들을 거두게 될 것이다. 다윗 모델은 모든 사람들 안에 있는 선함을 존중하고 그에 호소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윗 모델을 선택함으로써 교회의 권세가 사그라듦에 따라, 교회는 민족들 사이에서 자신의 위치와 도덕적 권위를 되찾을 것이다.

이것이 다윗 모델의 과제이며 전망이다. 이 모델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교황 직무에 가장 닯은 선택이다. 또한 그를 제외한 나머지 교회 전체가 대담하게 채택하고 충실히 실천해야 할 방향이다.

기사 원문: https://cruxnow.com/commentary/2016/07/10/rather-st-benedict-church-try-david-o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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