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진흥 전 사무총장이 말하는 KCRP 30년

한국 종교인평화회의(KCRP) 30년에 대한 평가를 듣고자 변진흥 전 사무총장을 7월 1일 경기도 파주 민족화해센터에서 만났다. 변 전 사무총장은 이곳 민족화해센터에 있는 천주교 의정부교구 소속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변 전 사무총장은 종교인평화회의 30년을 ‘한반도 평화와 남북 종교 교류의 견인차 역할’, ‘한국 종교 문화 성숙에 대한 기여’, ‘민관 협력 시스템 구축’, ‘국제관계에서 한국 종교계 영향력 증대’라는 4가지 주제로 풀어 설명했다. 그는 1994년부터 종교인평화회의에 관여하기 시작해, 1996-2008년, 2011-2014년 두 번에 걸쳐 약 15년 동안 사무총장을 맡았다.


한국 종교인평화회의 사무총장을 오랫동안 맡았다. KCRP 30주년에 대한 소감은?

한국 종교인평화회의가 종교 대화 운동에 중심 역할을 여태까지 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종교인평화회의 설립 전부터 시작된 종교 대화 운동의 정신을 이어오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바람직하다. 실무적으로 뒷받침하는 책임 역할을 했던 사람으로서 보람 있고 감회가 새롭다.

▲ 변진흥 전 한국 종교인평화회의 사무총장. ⓒ강한 기자

과거를 돌아볼 때 종교인평화회의가 특히 잘 했고, 한국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친 점은 무엇일까?

우선, 종교인평화회의는 남북한 종교 교류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우리 종교계가 단순히 선교, 포교 차원이 아니라 민족 문제 해결을 위해 상당 부분 역할을 했다. 특히 북의 종교계를 공식적 파트너로 인정하고 국제관계에서 관계 설정을 했다.

1986년 서울에서 아시아 종교인평화회의(ACRP) 3차 총회가 열린 뒤 1991년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서 4차 총회가 열린다. 이 총회에 느닷없이 북한이 ‘조선종교인협의회’라는 이름으로 참여했다. 총회 진행을 맡았던 강원용 목사가 국제적 감각과 리더십이 있는 사람이었다. 원래 바로 처음 들어온 대표단을 회원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데 강 목사가 ‘남과 북은 하나다. 이미 KCRP가 들어와 있는데 ACRP가 남쪽을 인정한다면 (북쪽도) 똑같이 받아줘야 한다’고 설득해 조선종교인협의회를 공식 가입시켰다. 그 결과 조선종교인협의회가 북한에서 공식적 지위를 갖고 대외활동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준 것이다. 그 점에서 강 목사의 공이 크다고 본다.

1993년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정부와 종교의 관계가) 민관협력 시스템으로 발전한다. 문민정부 전에는 민주화의 보루 역할을 한 종교계와 정부가 갈등 관계에 있었다. 문민정부가 민과 대화 창구를 열고자 하면서 종교계로 눈을 돌린 것이다. 그러면서 종교인평화회의에 종교 지도자 세미나를 제안하며 예산도 지원했다.

청년캠프와 종교언론인협의회가 만들어진 것도 그 무렵이다. 그런 민관협력 통로를 만든 것이 종교인평화회의다. 사실 정부가 필요해서 먼저 나섰는데, 종교계도 이제는 문민 시대니까 옛날과 다르다 하고 대응해 나간 것이다.

(종교인평화회의가) 1998년에 청년 캠프를 열면서 ‘이웃종교’라는 새로운 용어를 탄생시켰다. ‘이웃종교’라는 말은 다른 종교를 바라보는 시선을 선린 관계로 바꿔 놓았다. 그 전에는 ‘타종교’라고 하고 ‘타종교 이해 강좌’를 했는데, 그것도 ‘이웃종교 이해 강좌’로 바꿨다.

2012년부터 이웃종교 화합주간을 지내면서 ‘이웃종교’라는 용어가 완전히 정착됐다. 2011년에 유엔이 2월 첫 주간을 World Interfaith Harmony Week로 결정하자 종교인평화회의는 이듬해 이웃종교 화합주간을 선포한 것이다.

끝으로 국제관계인데, 종교인평화회의를 통해 한국 종교계는 아시아에 대한 영향력을 키웠다. 1990년부터 한일 종교청년 교환캠프가 계속돼 왔고, 2005년 뒤 중동 이슬람 지도자들과 한국 종교 지도자들의 교환방문이 이어져 왔다. (한국에서) 이슬람과의 대화도 매년 있다.

▲ 2012년 12월 15일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의 죽음을 멈추자는 뜻으로 5대 종단 종교인들이 참여한 ‘생명살림 국민행진’. 천주교 수녀와 원불교 교무가 앞장서 걷고 있다. ⓒ강한 기자

종교인평화회의에 아쉬운 점이 있다면? 종교인평화회의와 종교간대화 운동이 발전하고 우리 사회에 기여하기 위해 더 잘 하길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한국 종교계가 생각보다 이슬람에 대해 배타적이다. 아직도 이슬람이 종교인평화회의 회원으로 가입을 못했다. 사실 이슬람은 한국 종교인평화회의에 가입돼야 한다.

종교인평화회의에 참여하는 ‘7대 종단’이라는 것이 프리미엄처럼 돼 버렸다. 그 장벽을 없애고 어느 종단이든지 들어올 수 있어야 한다. 불교도 조계종이 참여하고 있는데 태고종 등도 들어올 수 있다. 종단 가입에 대한 최종결정을 공동회장 회의에서 하게 돼 있고, 그 회의가 일종의 전원일치제다. 이슬람이 못 들어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1997년 만들어진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는 엉뚱하게 만들어진 것이다. (편집자 주 :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는 불교, 개신교, 천주교, 원불교, 유교, 천도교, 민족종교 지도자들이 종교간 화합과 유대를 키우고 사회에 올바른 가치관을 제시하고 실천하겠다는 뜻으로 만들어진 단체로, 개신교 참여 단체가 한국 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 NCCK) 대신에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라는 것을 제외하면 한국 종교인평화회의와 구성원이 같다.)

교회협에 반발해 보수적 개신교회들을 묶어서 만든 게 한기총이었다. 종교인평화회의에는 이미 교회협이 들어와 있으니, 한기총이 압력을 넣기 시작하고 정부가 굴복해 만든 것이 종교지도자협의회다. 종교지도자협의회와 종교인평화회의는 한기총이 있냐 없냐 차이 밖에 없으니, 다른 종단에서 보면 힘만 분산시키는 게 된다.

정부 측에서 개신교를 상대하며 가장 힘든 게 개신교의 진보, 보수를 아우르는 대표가 없다는 것이다. 천주교는 그 안에 보수도 진보도 있지만 주교회의가 통할한다는 것과 다르다. 이것을 한국 종교 대화 운동의 분열이라 볼 수는 없지만, 한국 종교계의 암적 요소일 수도 있고 한계일 수도 있다.

또 아쉬운 것은 종교인평화회의가 종교 NGO, NPO 역할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보면 수장들을 중심으로 하는 ‘GO’(정부기구)처럼 돼 버렸다는 점이다. 종교인평화회의의 활동을 보고 나도 저런 종교 대화 운동에 참여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일반인이 있어도 참여할 길이 막혀 있다. 종단을 통한 대표성을 갖고 들어와야 된다.

▲ 2015년 2월 25일 서울 조계사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범종교인 '답게 살겠습니다' 운동 선포식. 7대 종단의 평신도 협의체가 중심이 돼 시작한 이 운동에 종교인평화회의에서도 관심과 지지를 보내고 있다. ⓒ강한 기자

종교인평화회의가 좀 더 열린 구조로 가야 한다. 실제로 이 종교 대화 운동이 마지막으로 도착할 지점은 ‘내가 사는 곳에서 내 이웃종교인들과 공동선을 위해 협력하고 노력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 본당 옆에 개신교 교회가 얼마나 많나. 원불교도 있고, 사찰도 있다. 우리는 종교적 평화가 잘 이루어지는 사회니까 그렇게 하면 지역사회의 여러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 지역에서 대개 집단이기주의 형태로 나타나는 문제를 푸는 절충, 화합적 역할을 할 수 있는 구조로 종교 대화 운동이 풀뿌리처럼 퍼져야 한다.

좋은 사례들 중 하나가 서울에서 화계사와 근처 성당, 교회가 함께 수유리 바자회를 여는 것이다. 다른 사례들도 있고 많이 확장됐지만 문화적 소통에 그치고 있다. 실질적 삶의 구조, 예컨대 양극화를 완화하는 자발적 시민운동을 이끌 수 있는 형태의 종교 대화 모임이나 평화운동으로 가야 하는데 쉽지 않다.

또 종교인평화회의의 예산이 정부 지원에 의존하고 있다. 각 종단에서 종교 대화 운동을 위한 예산을 따로 내놓을 수는 없을까. 정부에 의존하지 말고 자체 기금을 마련해 풀뿌리 운동을 하고, 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운동과 출판도 하면 좋겠다.

각 종단과 수장들이 정부의 지원, 공공자금을 활용하는 데 관심이 너무 많다. 종교간대화 운동이 ‘파이를 나누는 모임’이 되면 안 된다. 우리가 우리만의 파이를 만들어서 종교가 사회를 구제하는 본래 역할을 해야 한다. 정부도 종교계는 돈이 많은데 왜 국고 지원에 목을 매다느냐고 묻는다.

끝으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독자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더 있다면?

제가 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위원회 위원이기도 하다. 위원장 김희중 대주교께서 로마에서 열린 회의에 다녀와 교회일치, 종교대화 운동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게 아니라 해야만 하는 의무사항이라고 말했다. 사실 천주교 사목자들이 이 부분에 대한 관심이 적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에 비춰 봐도 교회일치, 종교대화 운동은 책임과 의무라는 의식을 갖고, 자신의 사목 영역 속에 중요한 부분으로 열어 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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