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선의 너영나영]

오늘부터 매달 첫째 수요일에 교회 안팎에 관한 시사비평 "황진선의 너영나영"이 연재됩니다. ('너영나영'은 '너랑 나랑'을 뜻하는 제주 방언이며, '너랑 나랑 잘 어울려 살자'는 뜻입니다.) 칼럼을 맡아 주신 논객닷컴 편집인 황진선 씨에게 감사드립니다. - 편집자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서울 중랑구갑)을 좋아했다. 그를 TV에서 처음 본 것은 2012년 중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소속 초선 의원으로 활동할 때다. 여성에다 비법조인임에도 법조인 출신 남성 동료, 선배 의원들보다 더 날카롭고 논리적이었다. 정부의 잘잘못을 지적할 때 주눅이 들거나 머뭇거림이 없었다. 판검사와 변호사 출신 의원들에 대해서는 법조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게 아닌가 하는 시선을 거두기가 쉽지 않은데, 그는 국민의 시각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그의 대정부 질문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했다. 시원시원했다. 비법조인이지만 역대 법사위원 가운데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던 조순형 전 의원 못지않은 여성 의원이 나왔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해 10월 대법원에 대한 법사위 국정감사장에서 있었던 일화도 기억에 남아 있다. 그는 이화여대 총학생회장으로 학내외 집회와 시위를 주도하다 1986년 10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돼 1987년 4월 집행유예 판결을 받고 풀려났다. 서 의원은 그 기억을 되살리며 이런 요지의 말을 했다. 질타와 고성이 오가는 국정감사장은 잠시 감동의 물결에 휩싸였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을 전하려고 합니다. (재판) 당시 반성문을 안 써서 실형을 받는 게 뻔하다고 생각했는데 당시 판사님이 이례적으로 집행유예를 선고하셨습니다. 지금 여기 있을 수 있는 것은 그때 소신 있는 판결을 해 주신 판사님 덕분인지도 모릅니다. 오늘 법원에서 알려 줘 (그 판사님) 성함을 알게 됐습니다.”

▲ 서영교 의원 (이미지 출처 = www.youtube.com)

서 의원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과 엔지오(NGO) 모니터단이 2014년과 2015년에 각각 선정한 ‘국정감사 우수의원’이었다. 현재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 소장으로 있는 장유식 변호사가 남편이라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장 변호사가 오랫동안 참여연대 등에서 시민운동을 해온 점도 서 의원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서 의원이 법사위원으로 눈에 띄는 활동을 한 데에는 변호사 남편의 도움 덕도 있을 것이다.

한데 안타깝게도 지금 서 의원은 더민주당의 윤리심판원에 회부돼 제명이나 당원자격 정지의 중징계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탈당 가능성도 제기된다. 그렇게 되면 차기 국회의원으로 공천을 받을 수 없어 정치인으로서 미래를 기약하기 어렵다.

촉망받던 서 의원이 한순간에 추락한 것은 자기관리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는 19대 국회 때 남동생을 5급 비서관으로, 친오빠를 후원회 회계 담당자로 썼다. 보좌관에게도 연 500만 원의 후원금을 받았다고 한다. 석사 논문을 표절했다는 의혹에도 휩싸였다. 그중에서도 결정적인 것은 자신의 딸을 젊은이들이 선망하는 의원실 인턴으로 채용해 스펙을 쌓게 한 뒤 로스쿨에 합격토록 했다는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날로 심해지는 취업난 속에서 고위 공직자와 기업가를 포함한 상류층 자녀들이 부모 덕으로 스펙을 쌓고, 취업을 하고, 사회적 지위와 재력까지 대물림받는 것에 좌절감을 느낀다. 부모의 권력과 재력에 따라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흙수저를 물고 태어난다는 ‘수저계급론’ 사례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더구나 서 의원은 갑의 횡포에 맞서 을의 눈물을 닦아 주고 권리를 지키겠다고 만든 더민주당 내 을지로위원회 위원이었다. 그러니 ‘자신이 하는 것은 로맨스요, 다른 사람이 하면 불륜이냐’는 비아냥을 들을 수밖에 없다. 올해 초 같은 당의 신기남 전 의원도 로스쿨 3학년인 아들이 교내 졸업시험에 떨어져 변호사시험에 응시할 수 없게 되자 로스쿨 원장에게 졸업을 청탁했다는 의혹을 받아 공천을 받을 수 없는 당원자격 정지 3개월의 중징계를 받았다.

▲ 부모의 권력과 재력에 따라 다른 수저를 물고 태어난다는 '수저계급론' 사례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미지 출처 = dacilove.deviantart.com)

서 의원 측은 ‘의도된 마녀 사냥’이 아니냐며 억울해 하는 것 같다. 새누리당과 정부를 ‘저격’하는 것에 앙심을 품고 본때를 보이려는 측의 음모라는 것이다. 사법시험 존치 진영에서 정보를 흘렸을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신기남 전 의원 역시 ‘정치적 음모’라고 주장한다. 두 사람 모두 사법시험 존치에 반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런 측면이 있다 하더라도 이미 드러난 사실만으로 서 의원은 국민의 눈 밖에 났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앞으로 믿음을 회복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뛰어난 대여(對與) 공격수’는 더욱 더 자신을 엄격하게 관리해야 한다. 국민의 눈높이와 시선으로 끊임없이 자신을 되돌아보고 성찰해야 한다. 정치 입문 당시의 초심을 잃지 않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절제와 자기 희생이 요구된다. 서 의원은 초심을 잃어버리고 자만한 것 같다.

사제도 마찬가지 아닐까. 서품될 때의 초심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치인과 마찬가지로 끊임없는 절제가 요구된다. 정치인이 초심을 잃으면 국민에게 외면당하듯, 사제도 초심을 잃으면 하느님께는 물론 신자들에게도 외면당하지 않을까. 어떤 일이나 문제에 닥쳤을 때 하느님의 눈으로 봐야 한다. 어디 사제만 그럴까. 가톨릭 신자라면 언제나 하느님의 눈과 마음으로 식별하고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물론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정치인 서영교의 추락은 반면교사다.

 
황진선(대건 안드레아)
논객닷컴 편집인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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