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구청, 주민숙원사업이다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가 생태환경 파괴를 걱정해 성북천 산책길 공사를 반대하며, 주변 본당에서 산책길 설치를 재고해 달라는 서명 운동을 벌였다. 성북천을 관할하는 성북구청은 홍수에 대비 제방여유고를 두고, 주민들의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산책길을 만들려다 이 의견에 부딪혀 공사를 멈춘 상태다.

지난 5월 20일 성북구청은 성북천 구간 중 바람마당교부터 삼선교 분수마루까지 1.15킬로미터 구간 오른편에 폭 1.5미터짜리 산책길 공사를 시작했다. 공사가 진행되고 며칠 뒤, 이 지역에 사는 이재을 신부(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 서울대교구이사회 담당사제)가 이를 발견하고 공사를 막았다.

성북천은 서울 백악의 동쪽 골짜기에서 시작돼 삼선교, 돈암동을 거쳐 청계천으로 접어들며, 전체 길이는 5킬로미터다. 2008년 생태하천 복원을 시작해 산책길, 자전거 도로 등을 만들어 2011년에 주민들에게 개방했다. 현재는 많은 지역 주민들이 산책과 휴식 공간으로 쓰고 있다.

당시 예산이 모자라 만들지 못했던 한성대입구부터 성북구청(돈암성 성당 부근)까지 오른편 산책길을 이윤희 서울시의원이 시에서 예산을 확보해 9월까지 공사를 마무리할 예정이었다.

▲ 산책길 공사(왼쪽)는 이재을 신부의 저지로 멈춰진 상태다. ⓒ배선영 기자

이재을 신부는 8년간 조류와 어류의 서식지가 되는 등 생태가 정착됐고, 미세먼지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더욱 식물을 보존하기 위해 개발을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도 이 신부와 뜻을 같이해 7월 1일 성북구청장에게 청원서를 보냈다.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 이재돈 신부는 청원서에 “이미 성북천 내부 왼편과 성북천 위 양쪽에 산책길이 있어 따로 산책길을 만들 필요가 없으며, 지금 서울은 한 평의 녹지라도 더 확보해야 한다”고 썼다.

환경사목위는 식물을 걷어 내고 포장도로를 만들면 성북천 내부 온도가 오르고, 야생조류의 생활을 위협할 수 있다는 서울시립대 이경재 명예교수의 의견서도 첨부했다.

한편, 성북구청은 계속해서 오른편에도 산책길을 만들어 달라는 민원이 있던 주민숙원사업이며, 안전을 위해서도 필요한 공사라는 의견이다.

▲ 산책길이 하나 더 만들어졌을 때 모습을 예상한 조감도 (이미지 출처 = 성북구청)

성북구청 관계자는 3일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성북천은 구청이 신경 써서 가꾼 것인데, 이걸 파괴하려고 하겠냐”고 억울해 했다. 그는 성북천에 있는 식물을 직접 골라 심고, 미꾸라지를 푸는 등 유지관리를 해왔다고 덧붙였다.

성북구청은 산책길을 만들 자리에 있던 철쭉, 나리, 붓꽃 등의 식물을 성북천 내 다른 곳에 옮겨 심을 계획이다.

서울시 환경영향평가 조례에 따르면 공사구간이 하천 길이 3킬로미터 이상일 때 환경영향평가를 하게 돼 있는데, 이번 공사는 1.15킬로미터라 평가 대상이 아니다.

현재 왼편에 산책길이 있으며, 중간에 돌다리가 있어 건널 수 있는데도 산책길이 더 필요한지에 대해 성북구청 관계자는 “장애인, 유모차를 끄는 사람 등은 돌다리를 이용할 수 없다”며, “시민 보행을 최우선으로 생각했다”고 답했다.

또 “설계빈도(수리 구조물을 설계할 때 규모를 결정하기 위한 기준으로, 확률적으로 접근해 산출한 수문량의 발생빈도, 성북천의 설계빈도는 50년이다)에 맞춰야 하는데, 지금는 홍수가 났을 때 여유분이 부족하다며, 산책길을 조성하면서 제방여유고 60센티미터를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성북천에 있는 오리들 ⓒ배선영 기자

현재 성북구청은 공사를 멈추고 이재을 신부 측과 의견을 조율 중이다. 6월 16일 이 신부는 성북구청장을 만나 자신의 뜻을 밝혔다. 성북구청은 7월 12일 성북천의 생태계 환경조사를 실시하고, 전문가 토론회를 준비 중이다.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는 7월 4일 산책길 공사 구간 바로 앞에 있는 돈암동 성당에서 신자들을 대상으로 서명을 받았다.

돈암동 성당 이충희 주임신부는 “녹지를 유지하자는 의견도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라고 서명운동에 참여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산책길을 원하는 사람이 있어서 산책길 조성하기로 했을 텐데, 반대하는 의견도 있다는 것을 정책 결정에 반영하면 좋겠다고 했다.

돈암동 성당 신자이자 이 지역 주민인 김근영 씨(토마스 아퀴나스)는 “(오른쪽에) 산책길이 없으니까 요구할 수 있고, 이런 요구를 하면서 개발의 논리나 환경파괴까지 생각이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며 (산책길을 만들어 달라는 요구를) 납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환경을 보존하자는 뜻에 찬성해 서명을 했지만, 산책길을 만들자는 사람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이어 산책길을 만드는 과정에서 생태계가 받는 영향이 최소한이 되도록 해결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 7월 3일 이재을 신부(왼쪽)와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가 돈암동 성당에서 성북천 산책길 설치 재고를 요청하는 서명 운동을 벌였다. ⓒ배선영 기자

또 다른 신자인 송광근 씨(마티아)는 산책길이 없는 오른편 삼선동 5가에 살고 있다. 산책길이 없어 불편하지 않냐는 질문에 그는 불편하지 않다고 답했다. 이어 “환경을 이대로 두면 좋겠다”며 “여기로 가도 길이고, 저기로 가도 길인데, 일괄적으로 다 길을 만들 필요가 있냐”고 했다. 또 “오리도 살아야지, 사람만 살면 되냐”고 덧붙였다.

한편,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는 돈암동 성당을 시작으로 성북구 관할 다른 성당에서도 서명운동을 펼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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