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불능시대 넘어서기] 그리고 누가 이 전쟁을 끝낼 것인가

한국에 살다보면 평시(平時)에 대한 감각이 둔해지기 마련이다.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민방위 사이렌 소리처럼 전쟁 위기도 자주 반복된다. 전쟁은 단순히 가능성으로만 남지 않는다. 남북 간에는 실제로 크고 작은 교전이 끊이지 않았다.

최근 한국 정부는 ‘연평도 포격 도발’을 ‘연평도 포격전’으로 고쳐 부르기로 결정했다. 연평도에 주둔하고 있던 연평부대의 적극적 대응을 국민에게 알리자는 해병대 사령부의 건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서해에서 NLL을 두고 경비정끼리 교전을 치렀던 사건들도 ‘연평해전’으로 부르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바다와 육지 모두에서 전투가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정부가 적극 나서 알리고 있는 셈이다.

언제나 전시이니, 안보를 위해서라면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 일들도 상식이 된다. 병무청은 최근 고등학교 중퇴 이하의 학력을 지닌 현역입영대상자 6000여 명을 집으로 돌려 보냈다. 필요인원에 비해 매년 2만 3000여 명 정도의 현역자원이 남아돌고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매년 700명 내외의 병역거부자들을 감옥에 집어넣으면서도 현역자원 부족을 이유로 대체복무제만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게 군 당국의 입장이었다. 대체복무제가 생기면 대체복무를 선택하려는 젊은이들이 너무 많아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병역거부를 하는 사람들이 한 해 800명 정도지만 국방부는 현역자원이 부족하다는 주장만 반복할 뿐이었다. 그런데 사람이 2만 명이나 남아돌고 있었다니. 한쪽에서는 현역자원이 모자란다며 전과자를 양산하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현역자원이 남아돈다며 학력에 따라 현역입영대상자를 잘라 내는 일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다. 한국은 언제나 전시이기 때문이다.

▲ (사진 출처 = commons.wikimedia.org)

평시를 살고 있다는 감각

전시와 평시의 구분은 근대에 들어서 가능해졌다. 전쟁은 그 이전까지만 해도 귀족들끼리 하는 것이었다. 귀족이 아닌 피지배자들의 지위는 전쟁이 있거나 없거나 크게 달라질 것이 없었다. 애당초 위축될 권리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시를 살고 있다는 감각은 근대인에게만 허락된 권리다.

프랑스 혁명 이후 근대 계몽주의자들은 전쟁을 시민의 일로 만들었다. 그들은 군 복무를 직업 군인들에게 맡기지 않고 시민의 의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프랑스 혁명으로 계몽주의자들의 구상이 현실이 된 것을 목격했던 군사 이론가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는 "전쟁론"에서 당시의 혁명적 변화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18세기의 상황 하에서 국민은 직접적으로는 무가치한 존재였으며, 단지 보편적 도덕 또는 과오를 통해 전쟁에 간접 영향을 미칠 뿐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정부는 국민으로부터 유리되어 정부 자체를 국가인 것처럼 간주할 정도로 전쟁은 순수하게 정부의 관심사가 되었다. 따라서 정부는 가방 속의 은화, 자국과 주변국의 유랑인들을 수단으로 (군대를 모아) 전쟁을 수행했다....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났을 당시의 상황은 이상과 같았다.... 1793년에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전투력이 등장했다. 전쟁은 돌연히 국민의 관심사가 되었다. 자신을 국민으로 여기는 인구는 총 3000만 명이었다.... 프랑스 국민이 전쟁에 참여하게 됨에 따라 정부와 군을 대신해 전체 국민의 비중이 힘의 균형을 좌우하게 되었다.”

국민 동원이 전쟁의 승패를 가르게 되면서 시민권에 대한 인식 역시 획기적으로 달라졌다. 시민들은 이제 절대 왕정의 신민이 아니라 공화정의 주인이 되었다. 또한 계몽주의자들이 부르짖었던 인민주권이 프랑스 혁명을 통해 현실화되면서 시민의 대표체 의회가 공포한 법률이 최고의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프랑스 혁명기에 등장한 "인권 선언"은 소유, 생명, 안전 등에 대한 시민의 권리를 명시했다. 이때부터 법률에 의해 ‘불가침의 신성한 권리’를 보장받는 시간, 바로 평시가 등장한 것이다.

▲ 프랑스 혁명기에 등장한 "인권 선언"은 소유, 생명, 안전 등에 대한 시민의 권리를 명시했다. (이미지 출처 = commons.wikimedia.org)
그러나 평시는 시작할 때부터 취약한 시간이었다. 국가의 안보가 위기에 처하면 시민에게 부여됐던 법적 권리들이 ‘합법적으로’ 유예되거나 사라지곤 했다. 국가 권력은 외부의 침략이나 내부의 봉기에 맞서 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할 경우 시민들의 사상과 인신의 자유를 구속할 수 있는 권한을 가졌다. 시민들의 법적 권리를 정지시키는 계엄령이 바로 그것이었다.

문제는 계엄을 선포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을 할 권리가 누구에게 있냐는 것이다. 정치철학자 카를 슈미트는 이 문제를 간단하게 정리했다. “주권자는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자다.” 주권자는 예외상태를 선포함으로써 평시와 전시를 가르는 자였다. 프랑스 혁명 직후 제헌 의회가 공포한 법률에서부터 법의 효력을 정지시킬 수 있는 계엄령 선포가 이미 포함되었다. 법률의 정지 권한을 갖는 예외상태가 법률에 의해 정당화된 것이다.

전시와 평시의 구분을 위협하는 ‘새로운 전쟁’

오늘날 전쟁 양상은 완전히 변하고 있다. 역사가 메리 캘도어나 정치학자 헤어프리트 뮌클러 등은 탈냉전 이후의 전쟁 양상 자체가 테러로 점철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정치적 폭력이 어디에나 퍼져 있고, 주로 민간인이 대상이 되며, 공식적 전쟁과 비공식적 범죄가 구별되지 않고, 종교나 종족 등 정체성의 정치에 기반을 두거나 그러한 정치를 조장하는 것이 바로 새로운 전쟁의 성격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전쟁에선 전방/후방, 정규전/비정규전, 전시/평시처럼 그간 익숙했던 구분이 모호해지는 양상을 보인다. 유럽은 전후방이 뒤섞이는 와중에 전시에 돌입하게 됐다. 유럽에서 연달아 벌어지고 있는 테러는 이처럼 혼란스럽게 변화하는 전쟁 양상의 한 단면을 보여 주고 있다. IS의 미디어 전략이 아니었다면 유럽에서 자생한 ‘외로운 늑대’가 저 멀리 중동에 자리 잡은 이슬람 과격주의자들과 연계해서 테러를 벌일 수 없었을 것이다.

이제 전쟁은 중심부와 주변부를 가리지 않는다. 새로운 전쟁에선 로켓과 미디어 같은 기술의 발달로 거리가 중요하지 않아졌다. 그에 따라 전선은 전후방을 무시하고 도처에서 불쑥불쑥 나타나며 전시와 평시의 구분도 희미해졌다. 시민들이 권리를 임시로 국가에 양도하던 예외상태가 이제는 일상이 되어 버렸다.

새로운 전쟁은 더 이상 국민들을 총동원하지도 않는다. 다시 말하면 국민들을 동원하기 위해 설득하고 협상하고 투표에 붙이는 절차가 불필요해졌다는 것이다. 통치자의 입장에선 바다와 공중에서 오가는 기계들의 파괴력에 주로 의지하기 때문에 지상군은 소수 정예일수록 좋다. 그렇다고 군인을 덜 징집했기 때문에 테러가 나는 것도 아니다. 징병제 폐지가 경제적 통치에 유리한 마당에 전쟁을 위해 국민들에게 동의를 구해야 할 이유 또한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최근 한국의 안보주의자들이 모병제 도입을 진지하게 고민해 보자고 제안하는 것도 이러한 추세와 관련이 깊다.

▲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게다가 전쟁의 속도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빨라졌다. 오늘날 전면전은 상대가 미사일을 발사하는 순간 이쪽에서는 자동적으로 대응하는 시스템 위에서 벌어진다. 거의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대응에서 국민은 둘째 치더라도 통수권자마저 전쟁선포 권한을 빼앗기고 만다. 주권자가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자라면, 새로운 전쟁에서는 주권의 자리 자체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근대의 시민이 참전을 통해 평시의 권리를 누렸다면, 오늘날 전시와 평시의 구분이 불가능할 만큼 뒤얽힌 상황은 시민들로 하여금 스스로의 권리를 국가에 기한 없이 양도하라고 강요하고 있다. 그것이 테러건 핵실험이건 무엇이건 간에, 일상적 예외상태를 지속시키는 위기가 끊이지 않는다. 다시 평시가 되기까지 기다리는 건 누워서 감 떨어지길 기다리는 일이나 다를 바 없다. 북쪽에서 미사일 실험을 하면 남쪽에서 테러방지법을 만드는 게 이상하지 않을 만큼 새로운 전쟁은 혼종적인 양상으로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디도스 공격이나 댓글 전술처럼 사이버전이 활성화되면서 전쟁이 모호해졌다. 전쟁이 무엇인지 애매하니 언제가 전시인지도 판단하기 어려워졌다. 실체도 모호한 전쟁이 그것을 이용하던 세력조차 통제할 수 없이 오직 그 자체의 영속을 위해 치러지고 있는 현실이다.

전쟁은 이제 어디에서나 일상처럼 지속된다. 전후방의 경계가 무의미해짐에 따라 한반도의 ‘후진성’도 더 이상 도드라져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한반도가 세계의 미래였는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 앞이든 간에, 세계가 온통 전시인 오늘날에 전쟁은 어디에서건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공통의 현실이 되었다.

 
 

백승덕(미카엘)
징병제 연구자. 서울대교구 가톨릭대학생연합회에서 부의장과 교육위원장을 맡았다. 2009년 9월 병역거부를 선언했다. 용산참사, 쌍용차파업 진압에서 국가폭력이 맹위를 떨쳤던 해였다. 출소 후 징병제 연구를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다. 한양대 트랜스내셔널 인문학과에서 ‘이승만 정권기 국민개병 담론’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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