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규 신부] 6월 26일(연중 제13주일) 루카 9,51-62

프랑스 말을 한창 배울 때 일이다. 대개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건, 새로운 문화와 사상을 접하는 것이어서 "이걸 왜 이렇게 표현하지?"하는 물음이 차고 넘쳐 난다. 내가 좋아하는 프랑스말 표현에 이런 것이 있다. "s'il vous plait(실 부 플레)". 한국말로 번역하기엔 까다롭다. 영어로는 플리즈(please) 정도에 해당한다. “실 부 플레”를 직역하자면 "그것이 당신에게 기쁨이 된다면....”이란 뜻이다. 어느 누구에게 무엇을 청하거나 바랄 때 우린 상대의 마음을 살피게 된다. 이왕 살필 거면 상대가 기쁠 수 있는 걸 청하고 바랄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실 부 플레’를 내뱉을 때마다 들곤 했다.

루카가 말하는 예수는 뭐라 해도 기쁨을 전하러 온 예수다. 복음서 처음부터 카이로(χαίρω 기뻐하다), 카라(χαρά 기쁨) 등의 단어가 수시로 나타난다. 예수의 탄생으로 유대 사회가 기다려 온 구원이 이루어졌다고 루카는 생각하기 때문이다. 구원의 완성은 하느님의 현존을 가리키는 예루살렘 성전을 배경으로 그려지고 복음서 전체의 공간적 흐름도 예루살렘을 향해 나아가는 예수의 일행과 더불어 묘사된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의 일행은 예루살렘으로 향한다. 말하자면 구원이 완성된 기쁨의 공간으로 이동 중인 셈이다.

그런데, 예수의 여정은 모두에게 기쁨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예수는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마리아인들과 만나야 했고, 예수를 따른다 하면서도 제 일이 먼저인 사람들을 맞닥뜨려야 했다.

사마리아인들은 예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스켐 근처 그리짐 산이 참된 예배를 드리는 곳이라 생각하는 사마리아인들에게는 예루살렘 성전으로 향하는 무리는 달갑지 않다. 그런 사마리아인들에게 불을 내려 응징하려는 제자들의 태도는 예수 당시 유대와 사마리아의 사회적 갈등을 여실히 드러낸다. 예수의 여정은 이런 갈등을 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갈등을 갈등으로 대하는 제자들을 꾸짖는다. 예수는 기쁨을 향해 나아가고 있고, 그 여정에 ‘응징’의 자세는 합당치 않기 때문이다.

▲ (이미지 출처 = offsite.com.cy)

예수를 따르되 아버지 장례와 가족과의 작별 인사를 우선시하는 이들에 대한 예수의 태도는 이해하기 참 어렵다. 예수를 따르지 않겠다고 거부한 것도 아니어서 아버지의 장례나 가족과의 작별 인사 정도는 당연하고 옳은 것일 수 있다. 그런데, 예수는 이런 이들에게 하느님나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불을 내려 사마리아인들을 응징하겠다는 제자들을 꾸짖던 ‘자비로운’ 예수는 온데간데 없다. 일상의 당연함마저 뿌리치고 자신을 따르기를 바라는 예수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대개 우리는 너무나 일상적인 것들에 대해 반감이나 비판의 의견을 내는 데 불편해 한다. 다른 가치와 관점에 대해 낯설어 하는 것이 일상이 되면, ‘왜’라는 질문을 잃어버린다. 그냥 그렇게 받아들인 것들엔 나의 주체적 애정을 싣지 못하지만 치열하게 투쟁하고 얻어 낸 것엔 고귀함과 소중함을 가지게 마련이다. 아버지의 장례든, 가족과의 작별 인사든, 너무나 당연한 것들에 ‘왜’라는 질문을 던지길 예수는 지금 원한다. 하느님나라에 맞갖는 이는 새로운 세상에 열려야 하고 그 세상을 가지겠다며 옛 세상을 뿌리칠 수 있어야 한다. 옛것을 두고 옳다, 그르다 논할 이유가 없다. 새것은 새로운 가치 체계와 질서가 있는 까닭이다.

예수의 여정이 참된 기쁨을 찾아가는 것이라면, 그 여정은 갈등이나 고통, 그로 인한 얼마간의 불편함을 외면한 길이 되어선 안 된다. 갈등이나 고통없이, 이를 테면 자극이나 충격없이 주어지는 기쁨은 자기가 가진 기존 욕망의 투사로 변질되기 십상이고 더럽고 추하고 하찮은 것을 냉대하는 이분법적 옹고집으로 귀결될 때가 많다. 예수의 수난, 죽음, 부활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승천’으로 묶어 표현하는 루카는(9,51) 가난 속의 기쁨, 억압 속의 해방을 외치는 예수를 소개했다.(루카 4,18 참조) 나와 뜻이 달라도 ‘너에게 기쁨이 된다면’, 나는 어떠한 길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이야기가 오늘 복음 이야기고 루카의 일관된 ‘실 부 플레’다.
 

 
 

박병규 신부(요한 보스코)
대구가톨릭대학교 인성교육원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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