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제규의 간디에서 보낸 4년] 푸른 누리 생활을 돌아보며

▲ 무 캐던 날-푸른누리에서

해방학기는 4개의 프로젝트로 나누어져 있는데 푸른 누리는 그 중 하나다. 그리고 프로젝트가 한 개씩 끝날 때마다 우리는 일주일 가정학습을 하러 갔다가 다시 모였다.

배는 고프고 시간은 많을 때 우리들은 공책에 먹고 싶은 음식 리스트를 만들고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우리는 때때로 먹는 것 때문에 정말 의미 없는 대화를 나누곤 했다. 때로는 모두가 누워서 떠들고 있을 때였다.

“아! 돼지고기 잔뜩 넣은 김치찌개에 하얀 쌀밥을 먹고 싶다! 김치 국물하고 돼지고기 밥에 얹어서 숟가락에 꽉 차게 떠서 한 입 먹으면......... 크!!!”
“나는 고구마 무스를 추가한 치즈 크러스트 피자를 먹고 싶다! 아 그 늘어나는 한계 없이 늘어나는 치즈의 예술성이란......... 고구마 무스까지 먹으면 정말 행복해질 텐데.......”

참다못한 다른 친구 “아 놔 배고파 죽겠는데 먹는 이야기 그만 좀 해!” 라고 죽는 소리를 낸다. 그럼 옆에 있는 친구가 소리 지른 친구에게 “넌 피자랑 김치찌개 중에 뭘 먹을래?” “응? 난 김치찌개........”

듣던 사람들 모두 큭큭 거리며 한참을 웃는다. 다른 친구들은 듣다가 자기는 피자네 김치찌개네 서로 뭐가 더 맛있다며 답 없는 싸움을 몇 분에서 몇 십분 동안 하곤 했다. 그러다 누군가 “어차피 집에 가면 죽도록 먹을 건데 잘도 지랄한다.”하고 추임새를 넣으면 대화가 끝났다.

“야 너 무슨 메신저 써?”
“내는 아무거나 다하는데.”


어떤 음식이 더 맛있다며 으레 갑을론박을 벌이던 우리들이 집에 가는 날이 왔다. 모두들 이메일 주소, 싸이 주소, 메신저 주소를 주고받으며 가정학습 기간에도 만나서 놀자며 서로 약속하고 있었다. 멀리 있어서 못 만날 것 같은 친구들은 계속 연락하다가 학교에서 만나자며 오랫동안 헤어질 것처럼 난리들이었다.

친구들도 친구들이지만 푸른 누리와 헤어지는 게 자못 아쉬웠다. 나는 왜 발걸음이 무거웠을까? 여기서 내가 그렇게 무너질 듯 말 듯 무너졌다가도 다시 일으켜 세우면서까지 지키려 했던 규율에 더 이상 얽매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 뭔가 아쉬운 이 기분. 왜 그렇지? 더 이상 고민 할 필요도, 여지도 없다는 것이 왜 아쉽지? 참 애매하다. 자신을 얽매는 무언가와 맞서는 싸움을 즐기게 된다는 게 아직까지 어떤 것인지 잘 모르겠다. 경쟁자가 없어진 뒤 오는 허무함 같은 것일까. 내가 지켜서 전혀 해가 될 게 없는 룰이라는 게 싸움의 끝을 씁쓸하게 만드는 원인으로 보인다.

▲ 자장면 집에서

왜 나는 산에서 내려가는 순간부터 푸른 누리에서처럼 살지 못하는 걸까?

고백하자면 나는 푸른 누리에서 몰래 초콜릿을 먹은 적이 있고, 생 라면을 먹은 적도 있다. 그것은 다른 사람 몰래 규칙과 선을 넘어서는 희열과 약간의 쾌락을 제공했다. 그러나 절대로 기쁘진 않았다. 오히려 걸린 뒤에 벌칙으로 노작으로 칡을 캐고 노작시간을 다 채웠을 때 마음이 더 편했다. 분명 나는 무한히 자유로워질 앞으로의 시간이 기대되고 기뻐야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자유는 과연 어떤 존재일까?

더 이상 규칙과 싸울 필요가 없다는 건 우리가 공책에다가 썼던 음식을 마음대로 먹고 다시 몸은 예전 상태로 돌아간다는 걸 의미했다. 그것은 여기에서 경험한 삶을 무의미하고 일시적이고 지나치게 이상적으로 만들어 버렸다. 내가 내려가는 걸 달가워하지 않는 두 번째 이유다. 왜 나는 산에서 내려가는 순간부터 푸른 누리에서처럼 살지 못하는 걸까? 실제로 이렇게 살고 싶다 이야기 하지만 마음은 이미 그러지 못할 거라고 잠정적으로 결론을 내린 상태다. 왜 나는 스스로 키운 야채와 손수 채취한 나물로만 먹고 사는 게 이런 곳에서만 〈?求鳴?생각하는 걸까? 왜 고기와 유제품과 군것질을 일시적으로라도 멈추면 생각하고 힘들어 하는 것일까?

나약한 문명인

나는 과거 원시인들의 늑대 같은 강인함을 가지지 못했다. 그렇다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드는 지성을 가진 것 또한 아니다. <월든>의 저자인 소로우의 말에 따르면 우린 그냥 나약한 문명인이다. 정말 나는 나약하다. 얼음물에 발 한 번 담그면 그저 얼어 죽을 것 같아 빨리 방으로 들어가야 한다. 산을 내려가는 순간 이 경계는 당연하다는 듯 깨져버린다. 실제로 나는 집에 가자마자 그날 저녁 고기반찬을 먹었다. 아무렇지 않게. 고기를 들고 잠깐 주춤하긴 했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너무나도 무감각하다. 강해지려면 나는 무엇부터 해야 할까. 예민해지려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 아직도 해답을 찾지 못했다.

푸른 누리에서의 생활을 거치며 자신이 지나치게 육식 문화에 길들여져 있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푸른 누리에서 목요일마다 한 번씩 갔던 중국집에 환장하던 게 비단 색다른 메뉴를 먹어서 만은 아니다. 지금도 나는 고기반찬이 너무 좋다. 그러나 이익 창출의 원리에 따라 죽어가는 동물들의 모습이 슬프다. 그럼에도 나는 먹었다. 그저께도 어제도 오늘도. 먹고 또 먹는다. 이런 내가 밉지만 정말 치명적인 유혹이다. 내가 푸른 누리에서의 배움을 잊지 않았다면 하루 빨리 부분적 채식으로라도 돌아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늘도 내일도 생각만 더 해가니 자괴감은 두 배로 빨리 쌓인다. 빨리 실천의 날이 와야만 한다.

육식사회, 인습에서 벗어나야

사회는 왜 그렇게 육식사회일까?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고기를 아무렇지 않게 먹어서 이젠 며칠만 안 먹어도 아쉬워하는 사람이 참 많은 것 같다. 과거에도 그랬을까? 전에 <육식의 종말>에서 본대로라면 아마도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나도 없으면 굳이 찾아 먹진 않지만 없는데 주면 좋아라 한다. 이런 사회에서 내가 고기를 좋아하는 건 당연한 현상일수도 있지만 나는 내가 가진 인습 중 최악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나는 어떤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야 할까? 생각은 이런데 고기를 잘도 처먹고 있는 내가 한심하다 정말.

푸른 누리는 우리가 다녀간 이후로 단체 손님을 받지 않는 쪽으로 운영 방침을 선회했다. 아무래도 우리가 너무 개판을 친 탓(유제품 및 군것질 유입, 명상 시간 깽판 등)이 컸을 것이다. 거기에 나도 한 몫 했기 때문에 다음 기수에 들어올 동생들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지금도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정말 미안합니다."

집에 가선 부모님과 많이 싸웠다. 컴퓨터 때문이었다. 집에 돌아가서도 예전처럼 컴퓨터를 많이 했고 그것도 게임을 많이 해서 싸웠다. 화가 난 아버지는 나에게 “넌 가족의 1/4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니 네가 전부인양 착각하지마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네가 관심을 가지고 신경 써야 하는 건 게임이 아니라 가족하고 네 자신”이라며 나를 비판하셨다. 처음엔 참고만 계시던 엄마도 급기야 “도대체 배운 게 뭐고 달라진 게 뭐냐”고 나를 다그치셨다. 그러나 철없던 나에겐 그저 듣기 싫은 잔소리에 불과했다.

그리고 분명 배운 게 있는데 이걸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몰라 쓸데없이 화만 냈고 대화는 엉망이 됐다. 그럼 그렇지. 역시 사람이 한 순간에 변하고 성장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거나 불가능한 일이다.

집안이 아파트 단지의 화약고가 되도록 싸우다가 친구들을 만나러 가정학습이 끝나기 하루 전 날 올라갔다. 그러나 좋기만 할 것 같던 친구들 사이에서도 균열이 생기려는 조짐이 보였다. 눈앞이 깜깜하다. 이제 진짜 학교생활이 시작되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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