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데기 밥상 통신 - 16]

얼마 전에 다녀가신 외삼촌께서 우리 집 마늘을 보고 말씀하셨다.

"이게 뭐다냐? 뭔 마늘이 이렇게 작대? 살다 살다 이렇게 작은 마늘은 첨 본다. 사진 잘 찍어서 올려 놔야쓰겄다."

내가 보기엔 그냥 마늘일 뿐인데 외삼촌에게는 눈이 휘둥그레지게 놀랄 일인가 보다. 그도 그럴 것이 시중에 나오는 마늘은 우리 마늘의 두세 배는 되게 굵직굵직하니까.

마늘만 그런가? 완두콩, 당근, 무, 배추, 옥수수.... 우리 밭에서 나온 것들은 대개가 알이 작아도 한참 작다. 거름을 거의 쓰지 않고 비료 또한 넣지 않으니 그냥 제멋대로 자라 그런 것이다. 남들 눈에는 비리비리해 보이겠지만 올곧게 자라 아주 짱짱하고 여물기는 하다. 시중 것과 맛을 비교해 보면 자부심을 가질 만큼 제 맛을 품고 있기도 하고 말이다. 그러하기에 나는 작다고 우습게 보는 눈길에 흔들리지 않는다.

▲ 우리 집 당근과 마늘. 이렇게 작아도 당근은 당근 맛이고 마늘은 마늘 맛! ⓒ정청라

오히려 알이 무시무시하게 굵은 마늘이나 잎사귀가 커다랗고 새파란 배추 같은 것을 보면 섬뜩해지곤 한다. '엄마야, 저기에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싶어서 말이다. 나 역시도 농사를 아예 모르던 때에는 알이 굵어야 농사를 잘 지은 것인 줄 알았는데 이젠 보는 눈이 완전히 달라진 셈이다.(매력적인 농사 '상품'을 만들어 내는 별의 별 약이 다 있다. 알 굵어지게 하는 약, 때깔 좋아지게 하는 약.... 거기에다 비료만 팍팍 뿌리면 수확량이 두 배 이상 확 달라지는 마법이 일어난다. 그걸 아는 이상 어찌 크고 예쁘다고 좋아할 수 있겠는가.)

보는 눈만 달라진 게 아니라 대하는 태도 또한 많이 달라졌다. 한 예로 감자를 캐면 예쁘고 잘생긴 감자알보다 캐다가 호미에 찍힌 것, 모양이 괴상한 것, 껍질에 병이 난 것, 작디 작은 것에 마음이 쓰인다. 어느 것 하나 버리지 않고 잘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못난 것들부터 따로 모아 추스리게 된다. 한때는 '왜 농사짓는 사람은 좋은 건 남 주고 자신들은 안 좋은 걸 먹나. 내가 농사를 짓고 산다면 젤로 좋은 것부터 먹겠다'는 다짐을 품고 살기도 했지만 그게 그렇게 되지 않는다. 못나고 아픈 자식부터 챙기게 되는 부모 심정이라고 할까? 딱 그와 같은 마음이다.

그리하여 신랑이 밭에서 캐온 감자 가운데 아픈 자식(호미에 찍혀 상처난 것)부터 골라 손질했다. 그걸 삶거나 구워 먹기도 하고, 국에도 넣고, 채 썰어 볶기도 하고, 강판에 갈아 감자전도 부쳐 먹고, 깔뚝썰기 해 조림을 해서 먹기도 한다. 그야말로 감자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햇감자는 껍질도 얇고 맛도 훨씬 부드러워서 어떻게 먹어도 맛있고, 자주 먹어도 물리지 않는다. 남녀노소 누구에게라도 살갑게 다가가 안기는 그런 서글서글함이 있다.

▲ 아이들과 신랑이 자주감자를 캐고 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작업에 열중하는 다랑이. ⓒ정청라

특별히 나와 우리 가족이 사랑해 마지않는 감자 요리가 있으니 그건 바로 감자범벅! 상처 난 감자, 못생긴 감자.... 그 어떤 감자로 해도 좋지만 알이 작은 감자를 골라 하면 동그란 감자 알이 살아 있어 더 맛있다. 만드는 방법도 아주 간단하다. 먼저 감자를 껍질째 깨끗이 씻어 냄비에 넣는다. 그런 다음 감자알이 잠길락말락하게 물을 붓고 소금과 설탕으로 약하게 간을 하여 끓인다. 감자가 푹 익을 때까지 끓이다가 다 익으면 뚜껑을 열고 숟가락으로 까불면 감자 분이 나오면서 물기가 완전히 사라지는데 그때 불을 끄면 된다.(숟가락으로 까불 때 들기름을 조금 넣으면 고소함이 배가되어 금상첨화!)

내가 감자범벅을 하고 있으면 아이들은 냄새를 맡고 달려들어 호들갑을 떨고는 한다.

"엄마, 감자범벅 다 됐어?"
"다 됐긴 한데 아직 뜨거워. 식으면 먹자."
"괜찮아. 뜨거울 때 호 불어 먹어야 더 맛있단 말이야."

▲ 이것이 바로 알감자범벅. 다울이 말처럼 뜨거울 때 호 불어 먹으면 더 맛있다. ⓒ정청라

아이들 성화에 할 수 없이 뜨거운 채로 접시에 내어 놓으면 호호 불어 먹는 모습이 얼마나 예쁜지.... 알감자처럼 작고 실한 내 새끼들이 먹고 살겠다고 집중하는 모습에 저절로 웃음이 번진다. 또한 자식 입에 들어가는 음식이 내 입에 들어가는 것마냥 배불러 하고 있는 나를 보며 알감자의 엄마인 씨감자를 떠올린다. 새끼 감자들에게 자기 몸을 밥으로 다 내어주고 녹아버린 씨감자 말이다.(감자를 캘 때마다 몰캉몰캉 온 몸이 녹아 있거나 이미 껍질만 남기고 사라져 버린 씨감자를 보면 울컥해지곤 한다. 왜? 내 엄마 같고 엄마로 살고 있는 나 같아서....) 씨감자가 남 같지 않아서 알감자범벅을 먹으며 소리 없이 말을 건네 본다.

씨감자야, 이제 난 네 마음 안다. 새끼들 먹여 살리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았니. 그래도 괜찮지? 네 한 몸에서 다른 생명들이 몽글몽글 피어나는 기적을 살았잖니. 잘난 자식은 잘나서 못난 자식은 못나서.... 그렇게 하나같이 귀한 생명을 말이야. 고맙다. 네 덕에 우리가 산다. 나 또한 기꺼이 네가 될래. 내 몸 내 마음 아낌없이 다 내어 줄래. 그것이 바로 내가,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니까.

정청라
산골 아낙이며 전남지역 녹색당원이다. 손에 물 마를 날이 없이 늘 얼굴이며 옷에 검댕을 묻히고 사는 산골 아줌마. 따로 장 볼 필요 없이 신 신고 밖에 나가면 먹을 게 지천인 낙원에서, 타고난 게으름과 씨름하며 산다.(게으른 자 먹지도 말라 했으니!) 군말 없이 내가 차려 주는 밥상에 모든 것을 의지하고 있는 남편과 아이들이 있어서, 나날이 부엌데기 근육에 살이 붙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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