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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증오한다 무관심을[서평] "나는 무관심을 증오한다", 안토니오 그람시, 바다출판사, 2016
강변구  |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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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6.21  11:3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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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관심을 증오한다"는 이탈리아의 정치가, 사상가인 안토니오 그람시의 산문집이다. 1920년대 전후 ‘이탈리아에 파시즘이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잡고 있던 그람시의 고민이 글 한 편 한 편에 담겨 있다. 그람시는 파시즘의 등장 배경으로 대중의 정치적 무관심을 주요한 이유로 든다. 지금 당장 먹고 살 일이 걱정인 사람들은 정치와 경제, 역사와 사회에 대해 무관심하게 되고, 이에 독재자가 나타나 그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고 선전하며 권력을 잡게 된다는 것이다. 이 글이 쓰일 무렵인 1920년대 전후는 전쟁 직후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시기였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지도자가 나타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바라는 대중의 열망을 등에 업고 무솔리니가 환호 속에 등장한다.

그람시는 ‘왜 가난한 노동자와 농민이 자신들의 이익과 전혀 무관하게도 파시스트 독재를 더 지지하는가’라는 의문을 가졌다. 이는 지금 한국 정치를 보면서 똑같이 드는 의문이다. 선거 때마다 부모님에게 1번을 찍지 마시라고 설득하다 끝내 포기하면서 드는 그런 의문 말이다.

정치적 무관심은 무지를 낳는다. 여기에 눈속임에 가까운 현란한 선전까지 더해지면 시민들은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정치적 자유를 축소시키며, 학교를 경쟁의 전쟁터로 만들고, 교과서를 국가가 장악하려는 정권에 표를 준다. 자기들 손으로 최대의 적에게 권력을 쥐어 주는 것이다. 이런 일은 한국 정치에서 끊임없이 반복되어 왔다. 그람시가 고민하던 1920년대에 비해 지금은 원하면 언제든지 꽤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시대인데 왜 여전히 이런 일이 반복되는 걸까.

나는 누구나 평소에 정확히 잘 정리된 정보를 제공받고 생각할 기회와 시간이 있다면 더 양질의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믿는다. 정치에 관심이 있던 사람들이 무관심한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바로 그런 점이다. 자신은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더 많은 정보를 얻게 되었고, 그래서 판단도 더 정확해진 것이다. 무관심한 사람은 그 반대일 뿐이다. 그래서 정작 증오해야 할 대상은 무관심으로 인해 생긴 무지함이다. 무지를 걷어내고 합리적 판단을 내리기 위한 첫 걸음이 관심이다.

   
▲ "나는 무관심을 증오한다", 안토니오 그람시, (김종범), 바다출판사, 2016. (표지 제공 = 바다출판사)
그러나 그 관심을 갖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은 많이 줄었겠지만 1990년대 대학의 번화가를 걸을 때면 술집, 미용실 광고지부터 학생회의 선전물까지 여러 손길들이 제각기 관심을 호소하곤 했다. 술집과 미용실 선전물을 나눠 주시는 어머님 같은 분들의 손길을 거절하고, 이웃 학교 등록금 투쟁 선전물도 눈감고 외면하고 나면 이제 지하철역으로 내려가서 식량과 식수 부족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의 얼굴을 지나쳐 골수암 기증 약정까지 피해서 집으로 가야 했다. 당장 SNS를 켜면 우리의 관심을 정말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세계의 수많은 사람이 나눠 주는 온라인 전단지를 보게 된다. 하나하나 정말이지 사람의 목숨이 달려 있고, 인류의 미래가 걸린 문제들이다. 그럼 그것들을 다 받아서 읽고 자기 문제로 소화할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다. 이 시대는 우리에게 어쩔 수 없이 대부분의 세상일에 대해 무관심한 사람이 되게 한다.

한편 무관심이 좋을 때도 있다. 누구나 이렇게 외치고 싶을 때가 있지 않나. “제발 나 좀 내버려 둬.” 이런 경우에 우리가 줄 수 있는 긍정적 무관심은 상대방이 스스로 문제 해결을 할 수 있을 때까지 보호해 주고 기다려 주는 것이다. 반대로 적개심에서 나오는 무관심도 있다. 그 사람의 어떤 말이나 행동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거나 거리나 복도에서 마주치고도 일부러 못 본 체 하면서 상대방에게 무관심을 적극(?) 표현하여 그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 말이다.

누구나 모든 문제에 열렬히 관심을 가질 수 없고, 또 무관심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그러나 사람이 자기 영역에 대해 무관심해지면 바로 문제가 생긴다. 부모가 가정과 자녀에 대해 무관심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노동자가 자기 업무와 관련된 여러 일들에 대해 무관심해질 때 그 일을 계속 할 수 있을까. 농부가 날씨에 무관심할 때, 교사가 학생에게 무관심할 때, 그리고 자기 삶의 정치적 조건들에 대해 무관심한 인간이 하나의 소비자로서만 세상을 떠다닐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 자기 자신 또는 관련된 일에 대해 무관심해지면 자기 소외 현상이 나타난다. 자기 일을 남과 함께 구경만 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귀찮아서, 내 일이 아닌 것 같아서 무관심하다 보면 나중에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 독재자에게 권력을 주기 위해서는 단 한 번의 선거면 충분하지만 그를 권좌에서 끌어내리기 위해서는 수많은 사람의 피가 필요하다.

모든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질 필요는 없지만 나에게 직접 관련된 일과 넓게 봐서 내가 사는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드는 일에 대해 작은 관심이라도 기울여 보자. 그러면 앎의 영역이 넓어지고 그 넓이만큼 판단의 크기도 커지지 않을까.

무솔리니는 권력을 장악한 뒤 그람시를 감옥에 집어 넣었다. 그람시를 기소한 검사가 했다는 "위험천만한 그람시, 우리는 이 자가 앞으로 20년 동안 두뇌를 쓰지 못하도록 조치해야 할 것이다."라는 말은 유명하다. 실제로 그람시는 20년 형을 선고받았고 1937년 옥중에서 숨을 거두었다. "나는 무관심을 증오한다"는 이 모든 일이 일어나기 전 점점 파시스트의 세상이 되어가는 이탈리아를 걱정하며 쓴 글들이다. 이 책은 한국에서 지금보다 몇 년 전에 나왔어야 했다.

 
 
강변구
출판 노동자, 파주에 있는 출판사에서 십여 년째 어린이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올해 딸이 태어난 새내기 아빠랍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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