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주교회의 매스컴위원회 포럼 2 - 성공신화는 "예외"였다

천주교주교회의 매스컴위원회는 ‘헬조선 현상을 통해 보는 한국의 청년 문화’를 주제로 대담회를 열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는 이 내용을 2회에 걸쳐 싣는다.

1. 당신을 삼킨 '공부 중독'
2. "거저 받고 거저 줄 수 있어야 산다"

6월 19일 열린 천주교주교회의 매스컴위원회 ‘문화의 복음화 포럼’ 1부에 이은 2부 대담에서는 ‘헬조선’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에 어떻게 집중하며 실마리를 찾아야 하는가를 말했다.

“지금까지 성공 신화는 ‘예외’였다.”

앞선 1부 대담에서 어른 세대의 전능감, 만능감과 ‘교육 중독’은 자녀 세대의 ‘공부 중독’과 전능감으로 이어졌으며, 이는 모든 세대가 “무력감과 무능감”에 빠지는 동시대적 문제를 겪고 있다고 진단하면서, “삶을 파괴하는 공부가 아닌 성장하고 성숙하기 위한 공부로 전환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엄기호 씨는 이에 대해, “한국사회는 ‘하면 된다’고 믿는 사람들을 성공시키는 시스템이며, 교육과 성장, 격려 모든 것이 그 중심”이라면서, “예외가 중심인 사회에서 대다수는 탈락의 공포를 겪게 된다. 하면 된다가 아니라 안 되는 것이 있고, 한계가 있다고 자각하는 이들을 사회가 보호하고 성장시키는 쪽으로 패러다임이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양한 생활양식을 인정해야 안전할 수 있다”

하지현 씨는 “오늘날 청년들은 1980-90년대의 결실을 가지고 살아갈 수 없으며, 현상유지조차 힘든 상황”이라면서, “공부 중심의 믿음 체계, 예전처럼 하면 된다는 신념 체계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부모 세대에게 자녀들에 대한 지원의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청년들은 부모 세대보다 결혼과 출산, 취업 모든 것이 늦고, 예전처럼 부모와 자식이 동시에 돈을 버는 것이 불가능해져, 수입 없이 지내는 기간이 상당하다면서, “부모 세대가 자녀들에게 해 줘야 하는 것은, 무리한 지원과 도움이 아니라 부모 스스로의 삶을 잘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엄기호 씨는 다양한 생활양식이 만들어지고 또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상성’의 기준이 달라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예를 들어 새로운 가족의 형태가 나타나면 그것을 가정으로 사회가 인정해 줘야 ‘탈락, 낙오의 공포’가 가중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하지현 씨는 기존 가치관이나 정상화의 기준이 여전히 통하는 이유에는 ‘집단동조화’가 강한 사회적 분위기가 있다면서, “한 예로 한 드라마 시청률이 40퍼센트를 넘는 것은 정말 이상한 일이며,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어떤 현상에 몰입하고 공유하는 비정상적인 현상이 다양한 생활양식을 획일화하고 통제한다”고 말했다.

▲ 엄기호 씨와 하지현 씨는, "다양한 생활양식을 인정하는 태도와 기존 신념 체계를 버리는 것이 우선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현진 기자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 주고 보따리까지 내어 주는 상호호혜성의 관계 회복”
“문제가 무엇인지 다 안다는 태도가 우리를 망쳤다”

“우리는 보통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 줬더니 보따리 내 놓으라는 비유를 하며 화를 냅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우리는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성경에 나온 착한 사마리아인의 가르침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강도당한 사람을 구해 주고, 치료하고 여관비까지 내 줬습니다. 생명을 구했으면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국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로 엄기호 씨는, 상호 호혜성 즉 ‘거저 주고 거저 받는’ 관계의 회복이 절실하다면서, “이것이 곧 교회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엄 씨에 따르면, 현재 사회는 교환 중심의 인간관계로 이뤄지고 있다. 어떤 행위에 대한 즉각적 보상, 즉 교환적 관계는 공동체가 아닌 시장만을 형성하며, 그 시장에서 사람은 구매력으로 등급화 된다. 이런 사회에서 청년들의 ‘소박한 꿈’은 ‘구매력을 가진 사람’이다. 사회에서 보호받고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가 ‘구매력’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교환 중심에서 호혜성에 입각한 관계로의 회복을 주장하며, 가톨릭교회의 신자 단체인 ‘연령회’를 들었다. 예로 연령회는 상을 당한 이웃 신자가 있으면 가서 무료로 염습을 해 주고 장례식장에서 묘지까지 망자를 위한 기도로 유가족을 위로하는 단체다.

그는, “거저 주고, 거저 받을 수 있어야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계속 당부하는 것도 ‘비시장적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라면서, “착한 사마리아처럼 내가 구한 생명을 끝까지 책임지는 것이 바로 비시장적 관계이며, 교회는 교환이 아니라 호혜와 선물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 가톨릭 청년들. (사진 출처 = 지금여기 자료사진)

“하느님나라를 미리 살아 보지 않으면 하느님나라를 맞을 수도, 그 이후를 살아 갈 수도 없습니다. 하느님나라는 거저 주고, 거저 받는 관계에서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관계와 사회에 대한 ‘다름’을 보는 감각, 다른 가능성을 교회는 과연 보여 주고 있는지 물어 봐야 합니다.”

특히 교회 전체가 고민하고 있는 청년 사목의 관건은 “교회는 청년들에게 비시장적 관계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에 있다”면서, “다른 삶의 가능성을 발견하지 못하는 교회가 청년들에게 무엇을 요구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엄기호 씨는, 최근 이탈리아에서 “배고파서 도둑질한 것은 처벌할 수 없다”고 판결한 것을 예로 들면서, “세계적으로 사적 소유, 교환 관계가 어떻게 인간과 사회를 범죄화했는가를 성찰하며 저항하고 있다”며, “거저 주고, 거저 받는 것을 호의가 아니라 의무라고 가르친 것은 바로 교회”라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빨리 해법을 찾으려는 태도가 우리를 망쳤으며, 문제를 문제로 인지하는 과정과 시간 자체가 ‘문제적’이었다”면서, “문제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아야 해법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어느 예외적 시도를 모델이나 성공신화로 만드는 방식, 즉 여전히 진행 중인 새마을 운동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사회의 문제 해결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해법을 찾는 속도, 문제가 벌어지는 속도를 늦추는 것”이라는 그는, “문제 자체를 긴 호흡으로 깊이 있게 보고 천천히 해결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것을 위해 필요한 것은, 다양한 생활양식을 인정하고, 다른 것, 다른 방식도 가능하다는 영감”이라고 말했다.

천주교주교회의 매스컴위원회는 ‘헬조선의 청년 문제’를 하반기에 다시 다룬다. 이번 포럼을 통해 ‘헬조선’과 청년 문제에 대한 분석과 문제의식을 공유했다면, 다음 하반기 포럼에서는 보다 구체적인 해법을 찾으려 시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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