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주교회의 매스컴위원회 포럼...전문가 대담 열어

천주교주교회의 매스컴위원회는 ‘헬조선 현상을 통해 보는 한국의 청년 문화’를 주제로 대담회를 열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는 이 내용을 2회에 걸쳐 싣는다.

“공부하느라 공부할 시간이 없다”

한 대학생의 한탄이다. 앞의 공부는 과제와 자격증 등 이른바 스펙을 위한 공부, 뒤의 공부는 삶의 성장을 위한 총체적 도구다.

성적과 스펙을 위한 공부가 성공의 답이며 만능키라고 믿는 사회. 이른바 ‘기승전공부’로 귀결되는 사회적 현상을 ‘공부 중독’이라고 진단한 두 전문가가 ‘공부’를 화두로 ‘헬조선의 청년’을 어떻게 바라보고, 구제할 것인가를 대담했다.

6월 19일 주교회의 매스컴위원회가 주최한 ‘문화의 복음화포럼’에서 문화학자 엄기호 씨와 건국대 의학전문대학원 신경정신과 교수 하지현 씨는 “요즘 애들”의 문제를 넘어 부모세대로부터 이어진 ‘공부 중독’이 어떻게 청소년과 청년층에 영향을 미치며, 한국 사회를 잠식하고 있는지 분석했다.

▲ 이날 '문화의 복음화 포럼'은, "사회문화적 현상을 짚어보고 분석하면서, 신앙생활과 복음화가 이뤄지도록 기여하기 위해" 마련됐다. ⓒ정현진 기자

“공부만 잘하면 다 된다”

1950년대 중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태어난 세대는 ‘학력 자본’만 있으면 성공할 수 있었다. 식민지와 전쟁 후 폐허 위에서 시작된 고성장시대에서 다른 자본보다 학력은 힘이 셌고, “공부했으면 교수 될 수 있었는데, 놀아서 삼성 갔다”는 말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압축적으로 이뤄낸 근대화의 자신감은 다음 세대로 이어졌다. 공부하면 성공한다는 ‘신화’는 채 20년을 버티지 못했지만, ‘공부’는 여전히 ‘성공’의 다른 말이며, 다른 가능성과 다름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됐다.

그런 부모세대 아래서 성장한 청년과 청소년들이 현재를 살고 있다. 모두가 공부에 뛰어들었지만, 이미 공부로 모두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 있다. 공부만 하면 잘 살 수 있었던 부모세대의 15-20년은 특수한 예외였음에도 그것은 한국 사회 전반을 휩쓰는 여전한 성공 신화다. 근본적으로 자신이 이해하는 세상이 다르다는 세대 간 차이는 결국 서로에 대한 이해와 소통을 어렵게 만들며, 대안을 만들기 어렵게 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이러한 공부 중독의 증상은 어떻게 이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는가.

먼저 엄기호 씨와 하지현 씨는 그들이 직접 강의실과 상담실에서 만나는 이들의 경험을 통해 이 시대 청년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말했다.

엄기호 씨는, 청년들이 가장 절박하게 느끼고 있는 것은, “탈락에 대한 공포”라고 말했다. 취업하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 비싼 등록금과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끊임없이 알바를 해도 빚쟁이로 졸업하게 되는 현실에서, 이들이 안심하기 위한 방법은 ‘다시 공부’다.

하지현 씨는 상담을 오는 청소년, 청년 그리고 부모세대들을 만난다. 이들의 대부분은 우울증을 걱정하고, 실제 우울증인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부모 세대의 이해와 요구 그리고 자녀 세대의 실제 체험이 어긋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우울증’은 근본 원인이 아니라 2차로 나타나는 증상이며, “부모에 순응했던 이들은 사회에서 자기 모습에 만족하기 어렵고, 반대로 늘어나는 가족 해체 분위기에서 스스로 살아남아야 하는 아이들은, 최소한의 사회화도 되어 있지 않다”며, “이들은 모두 세상에 대한 냉소와 화 그리고 무력감에 빠져 있다”고 말했다.

하지현 씨는 “헬조선에서 말하는 ‘지옥’이란, 무엇을 해도 벗어나지 못하는 곳”이라는 의미라면서, “열심히 순응하는 이들, 낙오하는 이들 모두에게 다른 길을 추구할 수도 없고, 꿈도 희망도 없는 곳이 바로 헬조선이며, 청년세대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청년 세대의 좌절은 다른 사회문화적 맥락에서도 이뤄진다. 이날 언급된 것은 ‘매체 환경의 변화’다.

먼저 휴대전화의 일반화로 면대면 소통이 더욱 어려워졌다. 또 보이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SNS 세상은 특별한 누군가의 경험을 일상적이고 평범한 것으로 판단하게 한다.

엄기호 씨는, “유명인과 SNS상에서 대화하면서 모두가 평등하다고 생각하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끊임없이 비교하고 비교당하게 되는 것이 온라인 세상의 특성”이라면서, “가공되고 과장된 세상을 표준화하면서 자신의 삶이 초라하다고 여긴다. 어렸을 때부터 온라인 세상이 당연한 세대는, 온라인은 현실의 확장이고, 그 안에서 현실에 대한 괴리감을 느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 포럼에는 100여 명이 참석했다. 주로 부모세대인 이들은 자녀들이 겪는 '헬조선'을 어떻게 이해하고, 자녀들과 자신들의 삶을 어떻게 이끌어가야 할 것인지 함께 고민했다. ⓒ정현진 기자

좌절을 겪어보지 못한 채 갖는 ‘전능감’....‘공부 중독’의 ‘독’
“공부 잘하는 사람이 다 잘할 것이라는 나쁜 생각”

엄기호, 하지현 씨는 ‘공부 중독’에 따른 가장 큰 폐해는 청소년, 청년들이 가진 ‘전능감’ 또는 ‘만능감’ 그리고 이것이 채워지지 않았을 때 몰려오는 좌절감과 무력감이라고 말했다.

“흔히 부모들이 ‘애 기죽을까 봐’라는 말을 많이 하죠. 기죽을까 봐 무엇을 사 주고, 해 달라는 대로 해 주고, 온실 속에서 상처 하나 없이 키워요. 하지만, 이렇게 성장한 아이들은 좌절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뭐든 할 수 있다는 전능감을 갖지만, 정작 사회에 나와서 그 전능감을 펼쳐야 할 때는 망설이죠. 실패하면 바로 좌절하고요.”(하지현 씨)

엄기호 씨는 한국사회는 ‘성과 사회’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성과를 내야 하고, 성과가 나오면 칭찬이 돌아와야 한다면서, “한국사회의 성과란 바로 교육, 공부를 중심으로 판단하고 바라보며, 공부를 기준으로 다른 능력을 측정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공부를 잘하면 모든 것을 잘할 것이라 평가받고, 반대의 경우, 아무 능력도 없다고 판단하는 상황에서 한계를 인식하는 것은 곧바로 ‘추락’인 셈”이라며, “특히 공부를 기준으로 절대 측정할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인간관계, 연애"라고 말했다. 

하지현 씨는, "사람 관계에서도 열심히 하면 상대방이 나를 좋아해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 경우 사랑과 스토킹을 구분하지 못한다"며, "열심이 좋아했음에도, 상대방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경우, 좌절하면 데이트 폭력과 같은 폭력적 상황을 불러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엄기호 씨는 한계를 깨닫는 체험은 곧 성장의 기회지만, 한국 사회는 “한계를 인정하면 안전하지 않다. 그런 이들도 인정하고 성장하도록 해줄 수 없는 사회”라면서, “다른 의견을 말하면 틀렸다고 말하고, 틀리면 바로 추락하는 이 사회는 성장을 시도하면 죽는 사회, 성숙한 인간을 포기한 사회”라고 말했다.

하지현 씨는, 성숙의 기준은, 자아 중심에서 남들을 생각할 수 있게 되는 것, 그리고 자신의 만족을 조절할 수 있느냐의 여부라면서, “미성숙은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 만연되어 있으며, 자아중심성과 즉각적 만족에 대한 보상이 이뤄진다는 것이 이미 당연해졌다”고 말했다.

1부 대담에서는 헬조선 현상의 원인과 현상을 살폈다. 이어진 2부 대담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탈피할 것인가. 그리고 교회의 몫은 무엇인가에 대한 내용으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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