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호 전 의원 인터뷰

서울대교구 가톨릭대학생연합회 회장을 지내던 시절, 가톨릭운동을 발전시키려면 신학적 배경이 필요하다는 선배들의 권유로 신학을 공부하기도 했던 그는 "아무래도 영성이 모자란 것 같아서" 곧 그만뒀다면서 너털 웃는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는 의정활동 내내 가톨릭학생회 활동과 선후배들의 시선을 가장 많이 의식했다는 서기호 전 의원을 14일 만나 그의 최근 인생에서 가장 중요했던 19대 의정 활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열심히 했으나 "정작 가톨릭 신앙인다운 의원이었는가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정치는 세력으로 하는 것이며,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힘을 길러야 한다”

4년 의정활동 내내 머리를 때렸던 화두였다고 했다.

SNS에서 대통령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평생의 길이라 여겼던 판사직에서 물러나 우여곡절 끝에 초선 의원이 되고, 4년 의정활동을 불출마 선언으로 마치기까지, 서기호 의원이 현실 정치에서 겪었을 일들이 함축된 말이기도 했다.

지난 2월, 테러방지법 반대를 위한 필리버스터를 마친 직후 20대 총선 불출마 선언을 했던 서기호 전 의원(베네딕토)은, “소신을 가지고 쉼 없이 일했기에 후회는 없다”면서도, “국회의원으로 잘 하고 있는지 성찰한 결과,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표를 위해 소신과 다른 말을 해야 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와 가진 인터뷰 자리에서도 그는, 지난 4년간 실감한 ‘한계’에 대해 “특히 한 지역구에서 1명의 의원만 뽑는 소선거구제에서는, 정책의 참신함이나 진정성, 청빈함만으로는 승부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면서, 거대 양당 체제 아래의 소수당 그 중에서도 비례대표 의원으로 겪어야 했던 고충을 털어놨다.

▲ 서기호 전 정의당 의원. 그는 국민들이 국회를 적극 감시하고 의견을 펴는 것이 가장 큰 정치참여일 것이라고 했다. ⓒ정현진 기자

사법개혁은 곧 정치개혁.... 재판 투명화 위한 법안 상정 실패가 가장 안타까워

그 자신이 사법부 모순의 피해자였던 만큼, 서 전 의원이 국회에 들어가면서 내걸었던 목표는 “사법개혁”이었다. 법복을 벗은 직후 가졌던 인터뷰에서 “예수는 권위주의 타파의 원조이며, 형식적 법치주의의 희생자였다”고 말했던 그는, 국회 법사위 소속으로 꾸준히 사법개혁을 위한 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사법개혁은 비단 사법부만의 차원이 아니라 대법원장이 대통령 코드에 따라 임명되고, 법조계 출신 국회의원이 다수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현실에서 “정치개혁”과 맞물려 있다.

그는, “법원 관료화, 판검사들이 힘 있는 편에 서는 현상을 바꾸려고 여러 법안을 발의했지만 상정되지 못했다”면서, “광범위한 국민 여론도 필요했지만, 무엇보다 법관 출신이 다수인 국회 구조, 그리고 대통령과 정부 여당의 의지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고 말했다.

그가 발의한 법안 중 가장 아깝다고 여기는 것은, “재판 내용을 의무적으로 녹음하고 증거자료로 제출하도록 하는 법안”이었다. 현재 재판 내용은 녹음이 되더라도 공개되지 않는다. 재판 내용은 증인심문을 제외하고는 주요 부분만 간추려 정리된다. 그 과정에서 재판 당사자의 주장이 빠지거나 왜곡되기도 하고, 재판장이 폭언을 하거나 고압적인 말을 하는 경우도 당연히 빠진다.

서 전 의원은 “재판 내용 녹취는 법원에서도 점차 시행하고자 하지만, 전국 법원에서 의무로 강제하는 것은 여전히 부담스러워하고, 법안 내용도 대법원의 반대로 통과되지 않았다”고 아쉬워하면서, “작은 일인 것 같지만 이 법안이 이뤄진다면, 사법부 불신, 재판부나 검사의 막말 파동이 거의 없어질 것으로 본다. 사법개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사와 재판의 투명화이고, 변호사 전관 예우도 없어질 것”이라며, 이것은 예산이나 시스템 구축이 아닌 ‘의지’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16년 만의 여소야대’로 20대 국회가 출발했고, 국회에 이전과 다른 기대감을 갖는 시민들이 많다. 하지만, 대한민국 의회정치가 제 꼴을 갖추기까지는 의원 300명을 때로는 지지하고, 때로는 압박해 제 길을 가도록 하는 더 많은 세력과 힘이 필요하다.

지난 2월 필리버스터는 의회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 특히 20-30대의 관심을 크게 불러일으켰다. 그동안 언론을 통해 접하던 당대표나 원내대표 또는 이른바 스타급 의원 외에 알지 못했던 의원들의 존재를 알게 되기도 했고, 방청을 통해 직접 지켜보는 시민들의 열기도 높았다. 또 필리버스터에 참여한 의원들에 대한 후원도 이어져, 서기호 의원이 불출마 선언을 앞당기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 2014년 8월, 세월호 특별법 통과를 촉구하는 단식농성에 참여했던 서 전 의원. ⓒ정현진 기자

국회 회의록 모니터링 등,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 알려 줘야

의회 정치가 집권 유지와 공천이 아닌, 국민 삶을 위한 법안 마련과 예산 심의라는 기본에 충실할 수 있도록 만들려면, 국민들은 어떤 세력과 힘을 만들어야 할까. 서기호 전 의원은 “국민들이 국회를 끊임없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려 줘야 한다”면서, 특히 “교회 안에서 평신도들의 정치 참여를 가르치면서도 ‘정치인’은 터부시하는 분위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와 일반 국민 사이의 상당한 괴리감은 국회 의정활동이 국민 전체가 아닌 일부를 대상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라는 그는, “국민들의 투표권은 다 같은 1인 1표가 아니다. 실제 기업가와 지역 유지들, 이익단체가 관여하는 것을 반영하면, 일부 힘 있는 이들의 표는 1인 100표로 작용한다”며, “현재 투표권은 평등하지 않고 실질적 가치가 다른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근본 해결은 대통령과 여당 사이의 종속관계를 끊는 것이지만, 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선거 제도를 통해 전체 국민의 의사를 충분히 반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했다.

국회의 기본 역할은 입법이다. 국민의 삶 구석구석에 영향을 미치는 법을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민생이 바뀌지만, 국민들은 정작 당사자로서 법안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다.

시민들이 입법 과정에 참여하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 서기호 전 의원은 입법 청원, 국회 회의록 모니터링 등을 들었다.

입법 청원은 시민단체나 이익단체 등에서 관련 법안을 직접 청원하는 것인데, 각 소위에는 이를 심사하는 청원심사소위원회가 있다. 법사위의 경우, 의원 발의법안을 심사하는 1소위와 2소위, 예산결산심사소위 그리고 청원심사소위가 있는 식이다.

그러나 서 전 의원은 최소한 지난 4년간 법사위에서는 청원심사소위가 열린 적이 없다고 했다.  “의원이 직접 발의한 법안과 달리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밀어붙이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며, “간접민주주의를 보완하기 위한 직접민주주의 장치가 작동하지 않고 있다.”

그는 본회의와 상임위 회의록를 모니터링하는 것도 상당히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본회의와 각 상임위, 소위원회 회의록은 모두 공개된다. 법안이나 예산 심사를 위한 소위원회 단계에서 가장 심도 깊고 전문적인 논의가 이뤄지며, 이 결과가 본회의까지 간다고 설명하면서, “논의의 내용과 맥락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법안 발의 전후로 직접 해당 의원에게 의견을 전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법안 통과를 위한 입법고시 과정에서 제출되는 기초검토보고서는 전문위원들이 최종 검토, 확정해서 의원에게 제시하는데, 그 자체도 좋은 자료가 될 뿐더러, 보고서 방향과 법안이 반대로 진행되는 경우는, 거의 대부분 이익단체의 로비가 통했거나 이권이 개입하는 것이라고도 설명했다.

그는, 정치를 바꾸는 것은 결국 국민들의 감시와 지원, 관심과 참여뿐이라면서, “의원들이 제대로 활동하도록 채찍질 하는 것,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인지시키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서 전 의원은 현재 변호사를 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판사를 그만 뒀을 때도 변호사는 생각해보지 않았을 정도로 평생 법관이 그의 길이라 믿었지만, 지난 4년의 시간을 통해 또다른 길을 모색하게 됐다. 

법의 사각지대에서, 오히려 보호받아야 할 법에 의해 상처받은 이들을 위한 지원을 고민하기도 한다는 그는, 불출마 선언에서 “삶이 정치라는 마음으로 일상에서 생활정치를 수행할 것”이라고 밝힌 것처럼, 다시 법조인으로서 일상의 정치를 이어갈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세간에 떠도는 잘못된 정보 하나를 꼭 풀고 싶다면서, “국회의원으로 하루만 지내도 연금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며, “연금을 받을 수도 없지만, 받을 생각도 없다. 지난 4년간 얻은 소중한 가르침을 살 수 있다면 그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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