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야구인을 기억하며

(조지 위겔)

야구는 스포츠 중에서 가장 가톨릭적인 운동으로, 우리가 한없는 관심과 열정을 쏟아 붇는다.

▲ 1951년 폴로 그라운즈의 평면도. (이미지 출처 = en.wikipedia.org)
야구는 시계 없이 하므로, 전례와 비슷하다. 시간을 초월한 시간의 맛, 하느님의 시간, 영원인 시간. 야구는 또한 공간적 의미에서 종말론적이라고 할 수 있고 또는 무한이라고 할 수 있다. 이론상, 야구장은 무한정 확대될 수 있다. 뉴욕의 옛 폴로 그라운즈 구장은 진짜 그래 보였다. 다만 그 공간이 사라지게 만든 한 인간, 윌리 메이스가 보여 준 더 고상한 투지가 그곳을 지나쳤을 때를 빼고는 말이다. (편집자 주- 야구장 형태가 욕조처럼 왼쪽과 오른쪽은 폭이 좁고 가운데가 길어 센터 쪽으로 홈런을 치기가 무척 어려웠던 야구장. 홈플레이트에서 센터 쪽 담장까지 최장 길이는 147미터였다. 1954년 월드시리즈 1차전에서 8회 2-2 상황에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빅 워츠는 주자를 1-2루에 두고 뉴욕 자이언츠의 돈 리들 투수의 공을 쳤다. 자이언츠의 중견수 윌리 메이스는 펜스 근처까지 달려가면서 어깨 너머 뒤에서 떨어지는 이 공을 잡아 냈다. 이 전설적 장면은 The Catch라는 고유명사로 불린다.)

그리고 우리는 야구와 가톨릭 사회교리를 잊지 말자.

가톨릭 사회교리는 네 가지 기본 원칙을 갖고 있다. 인간 존엄, 공동선, 보조성, 그리고 연대성. 야구에서는 이 네 가지를 모두 찾아 볼 수 있다. 야구는 각 개인이 자유로이 살며 장점을 발휘하고 그러한 개인적 성취가 협동적 팀워크 안에서 발휘되는 교계제도적 책임성의 잘 조직된 분배를 통해 공공복지에 기여하는 게임이다. (나는 언젠가 이 점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 설명하려고 한 적이 있었는데, 아아, 성공하지는 못했다.)

▲ 'The Catch', 1954년 월드시리즈에서 윌리 메이스가 빅 워츠가 친 공을 받아 낸 전설적 장면. (이미지 출처 = en.wikipedia.org)
야구가 지닌 가톨릭성은 또한 필드 위와 아래에 있던 과거의 많은 고귀한 사람들에게도 적용된다. 올해 2016년 시즌이 시작되면서 그 가운데 두 사람이 내 마음에 떠올랐다.

첫 번째는 빌 프리헌이다.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소속인 그는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사람을 결정하는 투표권자들이 전에 저질렀던 실수를 바로잡을 책임이 있는 위원회가 유심히 살펴볼 가치가 있는 이로서, 11번이나 올스타 게임에 포수로 출전했다. 프리헌의 전성기는 1968년이었다. 그가 없었다면 타이거스는 그 해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지 못했을 것이다. 카디널스의 루 브록이 홈으로 들어와 득점하려는 것을 그가 멋지게 막아냈고, 그럼으로써 제5차전의 게임 흐름이 바뀌어 타이거스가 이기고, 잇달아 6차전과 7차전도 이겼던 것이다.

프리헌의 딸인 캐시는 내 본당 신자다. 그래서 위대한 호랑이인 프리헌이 손자들을 보려고 왔을 때 그를 만날 몇 번의 즐거운 기회가 있었다. 우리는 야구인들이 그러듯, 옛날 일을 얘기했다. 그는 내가 응원하던 볼티모어 오리올스(꾀꼬리들)의 프랭크와 브룩스 로빈슨에 맞서 경쟁하던 것을 자기가 얼마나 즐겼는지 얘기했다. 그는 원래 볼티모어 소속이었던 레기 잭슨이 볼티모어를 떠나 뉴욕의 환락가를 찾아 건방진 양키스로 간 뒤 볼티모어의 메모리얼 스타디움에서 첫 경기를 펼칠 때 볼티모어 팬들이 2층 관중석에서 엄청난 양의 핫도그를 던져댔던 얘기를 즐겨했다.(편집자 주- 볼티모어의 메모리얼 스타디움은 “세계 최대의 야외 정신병원”이라는 별명이 있다.)

빌 프리헌은 신실한 가톨릭 신자였으며 진정한 스포츠맨으로, 지금은 호스피스 돌봄을 받고 있다. 알츠하이머병 때문이다. 나는 기도 속에 그를 생각하며 당신들도 그러하기를 바란다. 설사 당신이 1968년의 안 좋은 기억들을 지닌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팬이라 해도 말이다.

▲ 빈 스컬리. (이미지 출처 = simple.wikipedia.org)
그리고 두 번째로, 올해 88살인 빈 스컬리가 있다. 그는 현재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부스에서 전속방송을 하고 있는데 이번 시즌을 끝으로 은퇴할 예정이다. 그는 드물게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스포츠방송을 맡으면서 재키 로빈슨, 샌디 쿠팩스, 커크 깁슨, 그리고 클레이턴 커쇼가 던지고 있을 때 콜드 게임을 경험한 바 있다. 스컬리의 옛 파트너이자 멘토였던 레드 바버가 부드러운 발음에 남부 억양이 들어간 수수한 비유-“이 게임은 어느 비 오는 날에 새 신발 한 켤레를 신은 것보다 더 꽉 죄는군요.”-의 달인이었다면, 스컬리는 마음 편히 인간의 조건을 살피는 한 철학자의 관점을 보여 줬다. 이는 아마도 그가 제2차 대전 직후에 다닌 (예수회의) 포덤 대학에서 받은 인문학 교육에서 처음 형성되었을 것이다. “안드레 도슨은 무릎이 멍들었는데 날마다 출전 명단에 있어요. (잠시 쉼.) 우리 모두 다 그렇지 않아요?”

빈 스컬리는 다른 이들이라면 크게 상처받거나 주저앉았을 많은 비극을 겪으며 살았다. 처가 죽었고, 아들 하나가 죽었다. 그는 자신이 뉴욕의 브롱크스에서 자라나며 지녔던 가톨릭 신앙이 자기 삶의 의지처였다고 공개적으로 밝힌다. 그는 일요일이면 캘리포니아 주 웨스트레이크에 있는 사도 성 유다 성당에 가서 말씀과 성사로 배를 채운 뒤 (오후에는 구장에 가서) 평생에 걸친 배움과 음악 같은 목소리의 방송을 한다. 그 소리는 샤베스 라빈에 있는 다저스 구장의 마이크 뒤 그의 자리에서부터 수많은 가정과 차, 그리고 이어폰 속으로 울려 퍼진다.

빌 프리헌과 빈 스컬리, 두 명인, 두 가정적인 남자, 두 신사, 두 가톨릭 신자, 둘 다 인생의 황혼 녘에 들고 있다. 사람들은 이 둘을 그리워할 것이다. 무엇보다 이들이 보여 준 품위의 본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신앙으로 자양분을 얻어, 우리 모두를 위해 좋은 모범을 보여 줬다.

(조지 위겔은 워싱턴에 있는 윤리와 공공정책센터의 특별선임연구원으로서, 이곳에서 가톨릭학 분야 윌리엄 사이먼 석좌교수를 맡고 있다.)

기사 원문: http://www.firstthings.com/web-exclusives/2016/06/two-catholics-and-the-catholic-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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