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 스님 등 직선제 서명 운동 전개

이웃종교인 불교 쪽에서 조계종 총무원장 선출방식을 놓고 논란이 한창이다. 모든 승려가 총무원장 선거에 직접 참여하자는 직선제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조계종은 지난해 이어 올해도 출가승과 신도들이 종단개혁을 위해 토론하는 ‘사부대중 100인 대중공사’를 하고 있다. 지난 3월부터 5월까지 중앙과 지역에서 총무원장 선출제도를 주제로 9번의 대중공사가 열렸고, 참가자 61퍼센트가 직선제를 원했다. ‘대중공사’는 가톨릭의 공의회와 비슷하다.

그러나 조계종의 입법기관인 중앙종회는 6월 21일에 열리는 임시중앙종회에서 직선제가 아닌 추첨방식인 ‘염화미소법’을 상정하고 논의한다. 염화미소법은 선거인단이 추천한 후보자 3명 중에서 종정(종단의 상징적 수장)이 추첨으로 뽑는 방식이다. 기존에 500인 이내였던 후보추천인단을 재가자와 비구니를 포함해 706명으로 늘렸다.

염화미소는 “꽃을 집어 들고 웃음을 띠다”라는 뜻으로, 부처와 제자인 가섭 사이에 서로 말 없이 이심전심으로 법통이 계승된 일화를 말한다. 조계종 총무원 홍보국에 따르면 확정된 법안 이름이 아니라 가칭이고 처음 제안한 사람이 붙인 이름이라 계속 따라 부른다.

이에 서산 천장암 주지인 허정 스님, 박재현 신대승네트워크 협업미래센터 소장, 전준호 대한불교청년회장 등이 나서 포털사이트에 ‘조계종 총무원장 직선 실현을 위한 서명운동’이 진행하고, 직선제 홍보영상을 만들어 배포하는 등 대중의 뜻을 모으고 있다.

▲ 총무원장 직선제 홍보영상 중 한 장면 (이미지 출처 = '허정서림' 유투브 동영상 갈무리)

직선제를 주장하는 이들은 그동안 소수에 의해 운영되던 구조를 비구니(여자 승려)를 포함해 대중의 뜻을 반영하는 것으로 바꿔 종단의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데 의미를 두고 있다.

현재 총무원장은 중앙종회회원 81명과 24개 교구에서 10명씩 나온 선거인단까지 총 321명이 선거에 참여한다. 1만 1000여 명의 승려 중 3퍼센트다. 이중 비구니는 중앙종회회원 10명뿐이다.

이번 대중공사에서 패널로 참여해 직선제에 대해 발제했던 박재현 소장은 교구에서 비구니가 선거인단에 참여하면 안 된다는 법은 없지만 실제로 비구(남자 승려) 중심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사실상 비구니의 선거 참여가 어렵다고 말했다.

박 소장은 10일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와의 통화에서 대중공사에서는 61퍼센트가 직선제안을, 선거인단을 확대하는 안을 19퍼센트가 지지해 결국 80퍼센트 정도가 지금의 선거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의견인데, 의결기관인 중앙종회에서 이를 받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동안 간선제로 소수에 의해 종단을 운영했지만, (조계종이) 사회적 신뢰를 잃고, 대중의 뜻과 무관하게 운영되며, 내부 구성원에 대한 존경심도 생기지 않고 오히려 반대로 가고 있다”며 대중이 참여할 수 있도록 체계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정 스님도 “한국불교에서 하나의 주제에 정성과 노력을 들여 의견을 모은 것은 최초의 시도이고, 대중공사는 만장일치 아니면 다수결로 진행돼 왔다”며 “종회의 권한으로 이를 받지 않는 것은 불교적이지 않고 정치적”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직선제가 금권선거, 비구니의 투표권 등 지금 종단의 문제를 완벽하게는 아니더라도 해결할 수 있으며, 불교가 건강해지는 방법이라고 여겼다.

▲ 5월 18일 불광사에서 총무원장 선출제도를 의제로 열린 사부대중 100인 대중공사 (사진 출처 = 대한불교조계종 홈페이지)

6월 21일에 열리는 종앙종회에서 직선제가 아닌 염화미소법을 논의하는 이유에 대해 조계종 총무원 홍보국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염화미소법은 지난해 여름에 이미 법 조항이 만들어진 상태다. 직선제는 법안이 준비가 돼 정식 안건으로 올린 다음에 (중앙종회에서) 의견을 나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직선제안을 바로 만들 수 없으니, 대중의 선거참여 의지가 드러난 대중공사의 의견을 무겁게 받아 들여 재가자, 비구니 참여를 확대한 염화미소법안을 냈고, 직선제도 포함해 폭넓게 논의하는 취지”라고 덧붙였다.

한편, 종단이 대중공사의 의견을 받지 않는 것은 이미 예상된 일이며, 오히려 선출방식보다는 특정 방식의 선출제도로 몰아간 총무원 승려들의 자세와 행동을 먼저 지적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지난 4일자 <불교닷컴>에 실린 “직선제 논의, 진정 반성해야 할 사람들”이란 칼럼에서 바른불교재가모임 우희종 교수는 “허울 좋은 대중공사를 내세워 내부 부정부패와 비리에 대한 시선 돌리기를 해온 총무원의 행태를 몰라서 대중공사에 참여했다면 무지했던 것이고, 알면서도 동참했다면 위선”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대중공사의 결과만 강조하고 집행부와 종회만을 지적하는 것보다는 대중공사 노력이 이토록 허무하게 무시되는 종단의 구조적, 문화적 문제점에 관심을 두고 행동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자 허정 스님은 “대중공사를 이용해 염화미소법을 소환하려는, 속이 들여다보이는 수라는 느낌을 받았지만 직선제에 대한 열망이 커지면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기대했다”고 답했다. 그는 “왜 대중공사에 참여해서 이용당하냐, 종회에서 안 받으면 끝이 아니냐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9번의 대중공사를 했기 때문에 61퍼센트라는 지지율도 나올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허정 스님은 “죽을 때까지 노력해서 안 되는 일이라도 옳은 일이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이런 신념으로 하다 보면 이번에는 안 되더라도 다음 총무원 선거 때는 (직선제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추진한다”고 말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