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터 카스퍼 추기경의 "가정에 관한 복음" 서평

고통을 직접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 고통 깊은 곳에 있는 아픔을 잘 알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부모님이 이혼한 가정에서 자라나야 하는 자녀들의 고통은 원인을 제공한 부모조차도 깊게 알지 못할 것이다.

나는 이혼한 부모님 밑에서 긴 세월 동안 많이 아프면서 살아야 했다. 다행히 그리스도인으로 살려고 노력했기에 그 아픔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축복이 된다는 것도 경험했다.

수많은 가정이 고통 중에 있고, 가톨릭교회가 그 고통에 관해 얼마나 함께 아파하고 있는지를 깊게 체험하게 된 경험이 있다.

나는 어린 시절 인생의 목표를 ‘좋은 아버지, 좋은 남편이 되는 것’으로 정해 놓을 만큼 이혼한 부모님에게서 아프게 성장했다. 한동안 아버지와 한동안은 어머니와 함께 살았던 나는 혼인하고 나서 ‘한국 새가정운동’ 대표 부부로 일하게 되었고, 그 자격으로 전임 베네딕토 16세 교황을 개인 알현하는 영광을 누렸다.

알현 중에 교황은 우리 부부에게 “교회가 교회법 때문에 사랑해 주지 못한 가정들을 위해 일하라”고 당부했다. 우리 부부는 ‘소임’을 받았다고 믿었고 20여 년 동안 별거 중이거나 이혼하려는 300쌍의 부부들에게 다시 사랑하는 부부가 되도록 도움을 줄 수 있었다. 그래서 또 많은 가정들의 앓이를 보고 듣고 같이 아파하며 살아 왔다.

▲ "발터 카스퍼 추기경의 가정에 관한 복음", 발터 카스퍼 지음, 이진수 옮김, 바오로딸, 2016. (표지 제공 = 바오로딸)
지난해 가정을 주제로 한 ‘주교시노드’가 열린다는 소식을 접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매일매일 교회 소식에 귀를 열고 지냈다. 결과를 보고 아직은 때가 아닌가 보다 싶던 중에 이번에 출간된 "발터 카스퍼 추기경의 가정에 관한 복음"을 읽게 됐다.

책은 2014년 2월, ‘가정’을 주제로 한 세계주교대의원회의(시노드)를 앞두고 열린 추기경단 임시회의에서 발터 카스퍼 추기경이 한 강연을 토대로 엮었다. 시노드를 앞두고 열린 강연인 만큼, 가정사목에 대한 답변을 제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질문을 자극하기 위한 토대를 마련한다.

창조질서 안의 가정, 가정 안에 있는 죄의 구조들, 그리스도교 구원 계획 안의 가정, 가정교회로서 가정, 이혼 후 재혼한 이들의 문제 등을 다루고 있으며, 가장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로 “이혼 후 재혼한 이들”을 다루면서 “무엇을 위해 교회가 있는가”라고 묻는다.

“어떤 여인이 죄도 없이 이혼당하고 자녀들을 위해 아빠가 필요해서 사회혼을 통해 두 번째 혼인 생활을 하게 되었음에도 신자로서 살아가고 자녀들을 그리스도교적으로 양육하려 애쓰며 본당활동에도 모범적이라면....”(84쪽)

이런 사례를 직접 옆에서 같이 아파했던 경험이 있다. 본당에서 제대 봉사자로 일하던 자매였지만 “이혼한 여자가 어찌 제대 위에 올라갈 수 있느냐”고 질책을 당하고, 이혼 경력이 알려지고 나서 제대 위에 올라가지 못하게 되었다던 그 자매를 상담하면서 같이 울었다.

아픈 사람,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있어야 할 교회가 어찌 아픈 사람을 또 때리는가 싶었지만, 교회는 사랑이신 하느님의 계획 속에 있다고 다시 믿게 되었다. 책 62쪽, “개개 사람들의 구체적인 상황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단지 서류나 문서만 가지고 결정을 내리는 것이 과연 현실적이고 그리스도교적인지 물어야 합니다.”라는 구절 때문이다.

우리 평신도들은 교회법이나, 신학을 공부할 기회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매일 성체를 영하면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영양분을 갖게 된다.’고 배웠다. 그렇다면 성체를 영할 수 없는 사람은 굶어야 하는가?

“1994년 신앙교리성은 이혼 후 재혼한 이들이 성사적 영성체는 할 수 없지만 영적인 영성체는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은 2012년 밀라노에서 열린 국제 가정대회에서 이것을 거듭 확인하셨습니다.”(63쪽)

교회는 그 어느 누구도 사랑받을 권리가 있다고 가르쳐 주었고, “그 어느 누구도”에서 이혼한 사람도 제외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해 주는 것 같아 매우 기쁘다.

▲ 소중한 가정.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우리는 사람들이 가정 안에서 말과 행동으로 삶의 행복을 찾고 다른 가정에게 그러한 행복을 증거할 수 있도록 기여해야 합니다. 가정을 가정교회로 이해하고, 새로운 복음화와 교회 쇄신을 위한 우선적인 길이 되게 해야 합니다. 교회는 인간들 사이에서 인간들과 함께 하느님을 향해 걸어가는 길 위에 있기 때문입니다.”(69-70쪽)

어려움이 있는 가정은 이 책을 통해서 위로받기를 바란다. 이혼하고 싶을 정도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은, 이 책을 통해서 우리 가정 하나가 이 세상에서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기를 바란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행복을 건설하고 기쁘게 살아야 할 그리스도인 가정의 의무를 다시 한번 깊게 새기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발터 카스퍼 추기경의 이 강연을 두고 “무릎 꿇는 겸손한 신학”이라고 말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마음을 읽어 본다. 그리고 사회정의를 위해 수많은 이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듯이, 가정을 지키려고 일하는 모든 기혼자들은 모든 어려움을 주님께 맡기고 행복한 가정을 건설해 내는 것이 교회에 대한 소임일 것이라고 믿는다.

 
손엘디(비오)
10여 년 간, 포콜라레 새가정운동 책임자로 활동했으며, 현재는 부인 배금자 씨와 가정 문제로 고통받는 부부를 상담하는 한편, 교회 내 가정사목 프로그램 강사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자신들의 신앙과 위기극복 경험을 바탕으로, "아내가 입을 열 때 나는 귀를 연다", "아빠 최고의 아들이 되세요" 등의 책을 냈으며, 딸들에게 "아빠 같은 남자 만나서 엄마같이 살고 싶다"는 말을 듣는 아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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