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찻길 옆 공부방을 지은 이일훈 씨 인터뷰

인천 '기찻길 옆 공부방', 한국순교복자수도회의 '자비의 침묵 수도원' 충북 음성의 생극성당 등을 지은 건축가 이일훈(건축연구소 후리) 씨를 만났다. 주거환경은 인간생활의 세 가지 기본요소 가운데 하나이다. 일상에서 삶의 공간이 장애인들에게는 어떻게 다가오는가?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Barrier Free) 인증제도가 생기면서 장애인과 고령자 등 신체적으로 약한 사람들이 좀 더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건축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건축가로서 장애인 건축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어봤다.


경제 잣대를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를 바꾸자

▲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정신운동이 시급하다고 하는 이일훈 씨     (사진 / 박오늘)
이일훈 씨는 "장애인들이 시설을 이용하는 데 불편함이 없어지지 않는 이유는 결국은 비용(돈) 문제"라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면에서 30cm 턱이 올라가려면 계단 두 개만 있으면 되는데, 경사로를 놓으려면 그 몇 배의 면적이 필요하고, 그게 다 비용"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면적을 배려하는 사람은 (장애인을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낭비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장애인들을 위한 편의시설이 늘어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최소의 투자로 활용가치가 큰 건물을 만들려고 하니, 장애인을 배려하는 시설에는 인색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건축법에 (공공시설 등에는) 장애인을 위한 규정이 있는데, 이러한 것들을 법으로 규제하는 것 자체가 성숙하지 못한 사회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법은 최소한의 규칙인데 그 이상의 배려, 그런 규정이 없어도 알아서 배려를 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규정이 없는 것보다야 낫지만, 사람들의 의식이 따르지 않는 상황에서는 최소규정만을 지키는 것으로 끝난다고 지적한다. 장애시설이 있어도 주요시설에만 있는 경우가 있는데, 교회를 예로 들면 성당에는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어도, 교리실이나 고해소를 이용하려면 여전히 힘들다는 것이다. 그나마 휠체어를 타는 지체장애인이나 시각장애인들을 보조하는 시설은 있어도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시설이나 배려를 하는 곳은 거의 전무하다

"사람들의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 장애물 없는 건축물을 넘어서 장애가 없는 사회가 돼야 한다. 장애인을 위한 충분한 배려를 해야 하는데 상업건축에서는 그렇게 못하지만 사회 공공시설과 종교 건축은 그렇게 해야 한다. 미사에 참석하는 사람의 수가 줄어든다고 해도 장애인 시설에 신경을 써야 한다. 종교는 그러한 책무가 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 "우리도 곧 미래의 장애인이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지금의 나만 보면서 건강하고 젊다고만 생각하는데, 사고가 아니더라도 나이가 들면 신체적으로 약자가 되기 때문"이라며 장애인을 배려하는 문제를 곧 나 자신의 문제로 생각한다면 지금의 사회 현상은 많이 달라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애인이 불편을 느끼지 않는 사회는 모두에게도 편한 세상이기 때문이다.

'채 나눔' 건축 방식은 '편함'과 '효율성'만을 따지는 사회를 성찰하게 한다

그이는 '채 나눔'이라는 독특한 방식으로 건축을 한다. 채 나눔은 곧 '불편하게 살기', '밖에서 살기', '늘려 살기'를 말하는데, 이는 극단적으로 편리함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이 과도한 에너지 사용으로 말미암아 복구할 수 없을 정도로 환경을 오염시키고, 그러면서도 오히려 건강하지 못한 삶의 환경을 바꾸자는 것이다. 그러자면 모든 기능을 한꺼번에 집중시킨 내부지향적인 구조를 지양해야 하는데, 조금 불편하게 살고, 편한 집보다는 햇볕이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건강한 집을 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채 나눔' 방식이 불편함을 이야기 한다고 해서 장애인을 불편하게 하려는 것은 아니다. 장애인들의 행동을 방해하는 것과 불편하게 사는 것은 다르다는 것이다. 그이는 "편한 건축물은 많은 소비를 가져오는 건축물이다. 그것을 성찰하고 건축물을 짓자는 것이지 장애인이 접근할 수 없도록 짓자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또한 그는 건물 안에서만 살면서 자연과 어울리지 못하는 현실. 짧은 동선이 합리적이라는 생각으로 걸으면서 사유할 수 있는 시간마저 갖지 못하는 현실을 성찰하며 '밖에서 살기'와 '늘려 살기'를 강조한다. 많은 장애인들의 문제가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을 만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볼 때, '밖에서 살기'와 '늘려 살기'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만남을 늘리고 소통하는 데도 도움을 줄 것이라 생각한다.

▲ 선진국은 수출을 많이 한다고 오는 것이 아니다. 이웃과 더불어 살 마음이 많아져야 선진국이다.     (사진 / 박오늘)

생각을 바꾸면 건축도 바뀐다

"지금 우리 사회는 분열증을 일으키고 있다. 한 쪽에서는 보존하자고 하고 다른 쪽에서는 부수고 있다. 지역에 재개발 승인이 되면 경축 현수막을 거는데, 재개발이 부수자는 것 아닌가? 집 부수는 걸 왜 그리 좋아하는가? 6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수도 서울에서 역사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가?"

그이는 경제적 효율성만을 따지는 사회는 병든 사회라고 단호히 말한다. "전 국토의 80퍼센트 이상이 도시화하였고 전 인구의 팔구십 퍼센트가 도시에 산다. 오늘날 도시의 주택난을 해결한다며 환경과 여건의 차이는 고려하지 않고 고층 고밀도 방식의 건물을 짓는데, 이는 가장 손쉽고 경제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환경을 고려하여 저층 고밀도 또는 중층 중밀도 방식을 적절히 혼용할 수도 있지만 돈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이런 방식은 외면당한다고 안타까워한다.

"천박한 자본주의는 돈이 사람 앞에 있고 조금 나은 자본주의는 사람이 돈 앞에 있다. 장애인 문제도 성숙한 사회는 장애인이 건장한 사람 앞에 있어야 한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장애가 있고 없음의 문제인 것이다. 따라서 시설 보급운동보다는 생각을 바꾸는 운동을 먼저 해야 한다. 시설 고치는 문제만 이야기하면 30년 뒤에도 지금과 똑같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장애를 가졌다고) 소외시키지 않고 서로 어울려서 함께 살고, 그들이 자라 건강한 사회 일원으로 의사결정권자가 되었을 때를 생각하면, 15년이면 해결된다고 본다. "

그이는 "건축은 세상의 일부다. 세상이 돈을 좇는 분위기라면 건축물도 돈을 좇게 만들어지고,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성숙한 사회라면 건축물도 그 만큼 바뀐다."며 시설을 개선하는 제도보다 먼저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운동이 활발해져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