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되살림 미술, ‘숲이 되어’ 전시회

되살림 미술의 작가인 우명희 씨(안젤라). 자신의 삶의 터전 안에 작업 공간인 ‘뜨락’과 더불어 그 한구석에 전시실도 마련하였다. 그녀는 휴지심을 소재로 한 ‘숲이 되어’ 전시회를 열고 있다. 

▲ ⓒ김용길

버려진 것들에 대한 연민

무엇이든지 다 소비해야 경제가 잘 돌아간다고 세뇌당하고 사는 현대인. 이런 분위기에서 휴지심, 비닐팩, 죽은 나무는 우리에게 아무런 활용 가치가 없다. 이미 존재 가치가 사라진 것들에 다시 생명력을 넣어 주는 작가의 연민을 엿볼 수 있다. 길바닥에서 뒹굴거나 휴지통에 처박힐 운명에 처한 일회용 비닐팩은 자신을 온전히 내어 주며 죽음에서 생명으로 부활한 휴지심에게 안식처를 제공한다. 이 얼마나 기쁜 탄생이며 공존인가. 천사는 이 기쁨을 온 세상에 알린다.

▲ ⓒ김용길

그녀에게 되살림 미술의 의미와 이번 전시회를 열게 된 이유를 물었다.

‘되살림 미술’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요?

단순히 사물을 재생하는 것이 아니라 저의 경우에는 ‘사람의 마음도 함께 되살리는 미술’이란 뜻으로 해오고 있습니다. 버려진 물건들을 주워서 보고, 만지고, 새로운 생명으로 탄생시키려다가 오히려 ‘내가 회복’되는 경험을 반복했지요.

 

▲ ⓒ김용길

이번 전시회, ‘숲이 되어’에서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인가요?

무심히 버린 것들을 바라보며 새삼 환경의 문제를 일깨우고 더불어 우리들의 ‘내면과 만남’을 주선하고 싶었어요. 형식에서 벗어나 왜 작은 공간 벽면에 버려진 휴지심이 가득 들어와서 숲이 아닌 ‘숲이 되어’야 했는지 각자 자문하는 시간을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마치 숲길을 거닐 듯, 나무가 전하는 소리를 들으며 무언가를 느끼고 다짐하는 저마다의 행위 또한 예술의 일환임을 함께 나누고 싶었다고 할까요?

많은 소재 중에서 휴지심을 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요?

버려지는 소재들이 주변에 널려 있지요. 환경의 문제를 외면하고 살 수는 없고 어떻게 미술과 접목시킬 수 있는 소재이자 주제를 찾을까 고민하다 휴지심이 떠올랐어요. 무엇보다 가장 낮은 모습으로 우리 곁을 찾아 오더군요. 언젠가, 처음엔 거부하던 청소년 아이들도 마침내 둥근 휴지심을 매만지고 자연을 그리면서 웅크리고 있던 마음속 더듬이를 길게 내밀고 밖으로 나와 말랑말랑하게 변하는 표정을 보며 감동했지요. 아주 미천한 것이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교훈을 줍니다.

휴지심을 모을 때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었나요?

전 아주 쉽게 생각했어요. 그동안 모아둔 것이 있었고 나머지는 지인들에게 보내달라고 부탁을 드렸지요. 몇몇 분이 정성스럽게 보내 주셨지만 빙산의 일각이었어요. 갑자기 어디서 구할 지 막막하더군요. 일주일이 되어도 모은 것은 한 자루도 채 안 되고, 곰곰이 생각하다 어머니가 사시는 아파트 단지로 주말마다 달려갔지요. 단지를 한 바퀴 돌면 꼬박 두 시간에 걸쳐 두 자루 모을 수 있었지요. 그렇게 한 달 넘게 모으니 20자루가 되더군요. 그 흔한 것도 약에 쓰려니 없다는 속담을 절감하며 대형 종이수거함에서 기껏 서너 개씩 보이는 휴지심을 만나면 그리도 반갑고 기쁘더군요. 마치 숲속에서 발견한 새집에서 따끈하게 갓 나온 새알을 꺼내듯이 행복한 마음으로 주웠답니다. 아주 어릴 적에 넝마 줍던 사람들이 생각났어요. 우리들의 편견으로 손가락질당하던 그 사람들이 결코 불행한 사람들은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이 바뀌면서 많은 깨우침을 얻은 귀한 시간이기도 했답니다.

▲ ⓒ김용길

휴지심을 모으고 그것을 배치하는 작업을 하면서 느낀 점은 무엇인가요?

작업을 하면서 저절로 시가 되어 나온 말이 있어요. ‘늘 모으고 줍고 만지다가 성실한 나무의 너그러움에 마음을 닦습니다.’
하나하나 손으로 만지고 부치면서 묵언수행자가 된 듯 내내 침묵 속에서 작업을 했어요. 마침 사순시기와 겹쳐서 십자나무를 묵상하게 됐지요. 아낌없이 주는 자연, 나무의 무한한 내어줌을 깊이 생각하다가 휴지심의 너그러움에 마음을 닦았지요. 일용할 양식과 동일한 배출! 늘 뒤에서 묵묵히 우리의 몸을 닦아주던 나무의 살결, 휴지를 받쳐 주고 남은 휴지심은 다시 제 길을 가려고 버려졌다가 저와 만나게 된 거지요. 그 만남은 두 달 가까이 씻음의 예식을 치루고 나서야 저를 놓아 주더군요. 무참히 잘리어 우리 곁으로 온 까닭은 몸이 아니라 마음을 닦아 주기 위해서였음을 알았지요. 다 주고 숲이 되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에 머물러 있을 휴지심은 그래서 귀한 나무라고 생각합니다.

▲ ⓒ김용길

막힘과 뚫림, 어둠과 빛의 조화

버려진 반 조각의 휴지심이 수없이 서로의 맨살을 마주하며 드디어 숲이 되었다.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는 고통으로 숲에는 한 치의 빛도 방문을 허락받지 못했다. 번민으로 구멍이 숭숭 뚫린 마음에 고통만이 자리 잡은 줄 알았는데 어느새 찬란한 햇살이 그 빈자리를 메웠다. 숲이 된 나무와 빛은 상처 난 마음을 닦아 주고 꽉 채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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