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교리 렌즈에 비친 세상 - 박용욱]

1. 나머지는 다 잡아 먹었습니다.

아프리카 한 선교지에 유럽 출신 선교사 신부가 도착했다. 신부님의 열성적 복음 선포와 헌신적 봉사가 헛되지 않았던지, 세례를 청하는 이들이 문전성시를 이루게 되었다. 문제는 이들이 아직도 일부다처제의 풍습을 지키고 있었던 것. 교회의 가르침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일부다처제를 유지하는 한 세례를 줄 수 없다는 신부님의 입장은 확고했다. 낙담하고 떠나가는 영세 후보자 또한 줄을 이었다.
그런데 하루는 떠나갔던 영세 후보자 한 사람이 다시 찾아왔다. 선교사 신부님이 반가운 마음에 물었다. “세례 받을 준비를 다 하셨습니까?” “예”. “당신은 부인이 열 명이었는데, 그 중에 첫 번째 부인만 남기고 다 정리하셨습니까?” “예. 다 정리했습니다.” 신부님은 감탄하며 다시 물었다. “나머지 부인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남자의 대답에 신부님은 기절초풍하고 말았다. “나머지는 다 잡아 먹었습니다.”

선교학 세미나 중에 어느 아프리카 신부님이 들려 준 이야기다. 교회의 공식적인 가르침이 확립된 문제라 할지라도 그것을 다양한 맥락 안에서 실제로 적용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뜻이다.

2. 남과 여, 그리고 구체적 현실

이상은 높은 곳에 있고, 규범은 명징하다. 그러나 인간의 구체적 현실은 그 높은 이상과 서릿발같은 규범을 배반하기 일쑤다. 결혼과 가정이 겪는 현실 또한 그러한데,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사랑으로 만나서 한 가정을 이루고 죽을 때까지 변함없이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은 곧잘 원론적인 이상론에만 그친다.

예컨대 세상에는 남자와 여자라는 두 성(性)만 있어서 이 둘 사이에만 연인 관계가 성립할 줄 알았는데, 최근의 생물학 연구는 남성과 여성 말고도 또 다른 성들이 존재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XY염색체와 남성 생식기를 가진 남성, XX염색체와 여성 생식기를 가진 여성 뿐만 아니라, XY염색체인데 자궁, 나팔관을 함께 가진 사람도 있고, XX염색체에 남성 생식기처럼 모호한 성을 지닌 사람도 있다.

뿐만 아니라 남녀가 사랑으로 만나서 함께 하는 것이 혼인이라 하지만 실제로는 사랑 없이 오직 돈 때문에 가정을 꾸리는 경우도 없지 않다.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가 사랑으로 만나서 함께 살겠다면 천륜을 거스른 일이라고 펄펄 뛰면서도 내 아들 내 딸이 사랑보다는 돈 많은 배우자를 원한다면 입을 닫는 부모가 없다고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혼인의 필수 요소가 사랑이라고 하기에 현실은 너무도 비루하다. 요컨대 윤리적 판단과 규범을 내세우기 전에 그 현실을 경청하고 주목하는 일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다.

▲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3. 사랑의 기쁨

지난 4월 발간된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사도적 권고 "사랑의 기쁨"(Amoris Laetitia)이 계속해서 구체적 현실을 감안하라고 강조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교황께서는 오늘날 사람들이 겪고 있는 다양한 상황들을 더욱 깊이 고려하라고 권하신다.("사랑의 기쁨" 3항 참조) 특별히 "사랑의 기쁨" 296항을 통해서 교황께서는 이런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 교회가 가져야 할 태도를 제시하신다. ‘교회 역사 전반에 걸쳐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두 가지 사고방식이 있습니다. 하나는 추방, 또 다른 하나는 다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첫 번째 공의회 이후로 교회의 길은 언제나 예수의 길, 그러니까 자비와 다시 받아들임의 길이었습니다. 교회의 길은 누군가를 영원히 단죄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된 마음으로 하느님 자비를 찾는 이들에게 그 자비의 향유를 부어주는 데 있습니다. 따라서 다양한 상황들의 복잡성을 고려하지 않은 판단을 멀리해야 합니다.’("사랑의 기쁨" 296항 참조, 졸역)

4. 조당보다는 용서라는 말이 더 자주 들리는 성전

성당에서 혼인 이야기를 하다 보면 신앙생활을 통해 혼인의 어려움을 소화해냈다든가, 이혼의 아픔을 교회에서 위로 받았다는 미담보다, 조당 운운하는 판단의 말을 더 자주 듣게 된다. 교회를 이루는 세례 받은 그리스도교 신자들로서 부끄러운 모습이다. 세상은 남의 가정사에 함부로 입 대는 사람을 그다지 반기지 않는다. 더욱이 판단보다 자비를 앞세워야 할 그리스도인은 더욱 새겨야 할 일이다.

박용욱 신부(미카엘)
대구대교구 사제.  포항 효자, 이동 성당 주임을 거쳐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과 간호대학에서 윤리를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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