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속풀이-박종인]

어쩌면 오늘 속풀이 주제를 읽는 분들 중에는 종부성사(終傅聖事)라는 말을 생경하게 들으실 분들도 계시리라 어림합니다. 요즘은 사용하지 않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종부성사는 죽음을 앞둔 병자에게 마지막으로 기름을 바르고 축복하였던 성사를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랬던 것이었는데, 이 성사가 가지는 본 의미를 더 잘 나타내는 표현으로 바뀐 것입니다. 요즘 사용하는 말은 그냥 병자성사입니다. 병자가 건강을 되찾길 기원하며 베푸는 성사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초기 교회의 분위기를 잠시 훑어보면, 우리 가운데 앓는 사람이 있을 때 그 사람은 교회의 원로들을 부르도록 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원로들은 그를 위해 기도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그에게 기름을 발랐습니다.(야고 5,14-15) 이것이 병자성사의 기원입니다.

그럼에도, 가톨릭 전통 안에서 자란 신자들은 병자에게 죽음이 임박했다고 여기게 되면 종부성사를 떠올리게 됩니다. 지난 주일에 전화를 해 오신 제 선배도 그런 분 중에 하나였습니다. 모친께서 예전에 위급하셔서 종부성사를 받도록 해드렸는데, 며칠 전에 다시 위기를 겪으셨고 지금은 호흡기 없이 숨 쉴 수 있으시지만, 사실상 이런 상태가 얼마나 지속될지 더 이상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알려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종부성사를 다시 받을 수 있는지를 물어 오셨습니다.

“종부성사"는 용어 자체에 이미 “마지막”이란 의미를 크게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칫 잘못하면 사제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된 병자에게 저승사자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위로와 용기를 주러 갔다가 오히려 병자를 낙담으로 빠뜨려 버릴 일을 만들어 버리는 셈입니다. 그리하여 성령의 능력을 통해 병마와 싸워 이기고자 하는 용기를 북돋워 주거나 병자의 내적인 태도가 바뀌어 평안히 하느님과 일치하려는 희망으로 죽음을 맞아들이고 오히려 부활을 더욱 깊이 믿도록 이끌어 주는 그 성사의 의미를 온전히 전달하지 못하게 합니다.

따라서 요즘에 사용하는 병자성사라는 용어가 병자를 방문하여 고백성사, 안수, 도유(병자 성유를 바름), 영성체로 짜여진 예절의 본 의미를 더 잘 드러내 줍니다. 병자성사를 구성하는 요소들은 환자의 상태에 따라 조정할 수 있습니다. 의식이 없는 분이 고백을 하거나 성체를 모실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 '병자성사', 필리프 슈마허, 1920 (이미지 출처 = commons.wikimedia.org)

병자성사를 받게 되는 대상은 보통, 위험한 수술을 앞둔 사람, 병세가 위중해 보이지 않다고 해도 노환으로 많이 쇠하신 어르신, 이 성사를 통해 위로를 받을 만큼 철이 든 어린이. 혹은 철이 들었는지 의심이 든다 해도 병자성사의 대상이 됩니다. 병자가 의식이 없어도, 그가 의식이 있었다면 당연히 이 성사를 청했을 것이라고 여겨지는 이에게도 병자성사를 줘야 합니다. 혹여, 사제가 병자를 방문하러 왔을 때, 병자가 이미 사망한 상태라 해도 사제는 정해진 예식에 맞춰 병자성사를 집전합니다.(한국천주교주교회의, "병자성사 예식-병자의 도유와 사목적 배려 예식(시안)", 2011, 15항 참조)

그리고, 병자가 도유를 받은 다음 건강을 회복하였다가 다시 병들거나 같은 병세가 계속되다가 더 깊어지는 때에는 병자성사를 반복해서 줄 수 있습니다.(같은 책, 9항)

이처럼 병자성사에서 도유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사제는 병자의 머리에 병자성유를 바르면서 “주님, 주님의 자비로우신 사랑과 기름 바르는 이 거룩한 예식으로 성령의 은총을 베푸시어 (아무)를 도와주소서. (아무)의 모든 죄를 용서하소서”라고 기도하고, 이어서 병자의 두 손에 도유하면서, “또한 (아무)를 죄에서 해방시키시고 구원해 주시며 자비로이 그 병고도 가볍게 해 주소서”라고 기도합니다.

기도문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병자성사의 효과가 성령의 은총이라는 점입니다. 병자성사에서 도유는 병자가 아직 속죄해야 할 죄가 있다면 그 죄를 없애 주고, 죄의 흔적을 씻어 주어 병자의 영혼을 위로하고 격려해 주며, 그에게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커다란 신뢰를 불러 일으킵니다. 그리하여 병자는 다시 힘을 얻어 병고를 더 가볍게 견디도록 합니다.(교황 바오로 6세, "병자도유성사에 관한 교황령" 참조)

병자성사에 대해 아셨다면, 여러분도 이제는 주변에서 병고에 시달리는 분들의 상태를 좀 더 자주 점검해 주시어 성사를 청하시기 바랍니다.

 
 

박종인 신부(요한)
서강대 인성교육센터 운영실무. 
서강대 "성찰과 성장" 과목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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