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불능시대 넘어서기]

지난 17일 강남역 인근 화장실에서 20대 여성이 끔찍하게 살해 당한 사건이 벌어진 직후 많은 여성이 자신이 겪었던 공포를 증언하기 시작했다. 술자리를 마치고 집에 늦게 들어가다가 얼굴도 모르는 남자로부터 ‘다치기 싫으면 집에 빨리 들어가라’는 말과 함께 성적 모욕이 담긴 욕설을 듣는 일이 예사였다. 증언들을 들으니 내가 여성들이 겪는 일상적인 공포에서 안전한 위치에 있다는 사실을 새삼 발견했다.

분석과 증언 사이의 간극

몇 년 전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비슷한 자각을 한 적이 있었다. 아내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종종 불쾌한 일을 겪었다고 말했다. 데이트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가슴이나 다리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시선을 의식해 본 일이 내겐 없었다. 으슥한 골목길에서 한참을 쫓아오는 발걸음에 뒤돌아보기조차 힘들었던 공포도 느껴 보지 못했다. ‘온전한 인간’이 아니라 ‘두 발 달린 가슴’ 정도로 취급해 버리는 현실에서 쉽게 눈을 돌릴 수 있는 쪽이었다. 이런 점에서 난 ‘여성의 경험’에서 거리가 멀었다.

물론 그러한 증언들이 이번 사건에 대해 이야기해 주는 건 아니다. 예를 들어 여성이 운전하는 차가 끼어들면 경적을 더 세게 울리는 남자 운전자들이 많지만 이들이 즉각 살인을 저지르는 경우는 극히 적다. ‘여성 혐오’가 만연한 현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칼을 들고 화장실에 웅크리고 있다가 여성만 골라서 무참히 살해하는 경우가 흔한 것은 아니다. 이번 사건으로 촉발된 증언들이 보여주는 일상적 공포는 또 하나의 현실이지만 살인 사건에 대한 사실 관계를 보여 주는 데에는 한계가 분명히 있다.

이처럼 이번 사건에 ‘대한’ 분석과 이번 사건으로 ‘인한’ 증언 간에는 적잖은 간극이 있다. 유대인 혐오가 셰익스피어의 작품 "베니스의 상인"에서도 발견될 만큼 유럽에서 역사가 오래되었지만 그 작품만으로 나치 독일이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했던 홀로코스트를 설명하기는 무리인 것처럼 말이다. 여성이라는 정체성에 대해 혐오하는 문화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부정하기가 어려우나 어떤 일들이 있었기에 그러한 문화가 살인 사건으로 이어지게 됐는지에 대해선 좀 더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

‘일베’처럼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 남성 회원들이 끈질기게 공격하고 있는 것도 이 간극이다. 이들은 강남역 살인 사건이 ‘여성 혐오’와 관계없다고 주장한다. 정신질환자 한 사람이 저지른 범죄를 두고 왜 남성들을 잠재적 가해자로 모느냐는 것이다. 급기야 강남역에 마련된 추모 공간에 ‘일간베스트 저장소 노무현 외 일동’이라는 이름으로 “남자라서 죽은 천안함 용사들을 잊지 맙시다”라는 글귀가 적힌 화환이 배달되기까지 했다.

그러나 피의자가 경찰 조사 과정에서 내놓은 발언들이 공개되면서 사건의 윤곽도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경찰은 정신질환에 의한 사건으로 정리하려는 듯 하지만 이 사건을 ‘여성 혐오’라는 코드 없이는 읽기가 어려워 보인다. 그렇지 않다면 망상에 사로잡힌 정신질환자가 화장실에서 기다리면서 남성 6명을 그냥 보내 준 이유를 설명할 길이 없다.

피의자가 면담한 프로파일러에 따르면, 피의자는 ‘이렇게 있다가는 여성들에게 죽을 거 같아서 내가 죽여야겠다’고 생각해서 피해자를 살해했다. 여성들이 일부러 자신을 견제하고 공격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은 2년 전부터였는데 신학원에 재입학한 때였다. 그는 그곳에서 겪었던 일들을 이렇게 설명했다. ‘나는 추진력 있게 일을 하려 했는데 여학생들이 견제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들이 경쟁의식을 느낀다.’ 등등. 그러나 자신이 피해를 받았다고 확신할 뿐 그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 못한다고 한다. 여성들이 자기를 공격하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는 점만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 (이미지 출처 = flickr.com)

사건에 ‘대한’ 대처, 사건에 ‘의한’ 희망

이번 사건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선도 지금은 여기까지다. 조현병을 앓고 있던 남성이 어떠한 이유에선가 여성들에 대해 피해의식을 가지게 되었고, 그래서 어느 날 갑자기 공중화장실에서 여성만 기다리가다 잔인하게 살해했다.... 이 사건에 ‘대해’ 이 이상으로 이야기하기는 무리다.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풀어야 할 질문이 아직도 많다. 그래도 이 정도 수준에서도 몇 가지 조치를 취해 볼 수 있다. 일단 제도적 대책을 점검해 봐야 한다. 예를 들면 작년에 검찰이 나서서 범정부 차원에서 구성하겠다고 발표한 ‘강력범죄 범정부대책협의회’ 같은 제도적 기구가 있다. 여기서 처방법이 과연 실효성이 있는지 따져 보는 일이 일단 시급하다.

최근 검찰은 ‘묻지마 살인’을 두고 ‘정신질환자’를 잠재적 용의자로 지목하고 나섰지만 그 대책이란 것이 무엇인지 애매하다. 정신질환자들을 감금하는 것이 대책이라면 대단히 심각한 인권침해가 발생할 위험이 있고, 게다가 환자들이 진료와 치료를 꺼리게 만들기 때문에 실효성도 없다.

우리는 지금까지 나온 제도적 대책들이 이번 살인 사건을 막을 수 있었는지 따져 보아야 한다. 그러한 대책들이 여성에 대해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던 남성이 살인까지 나아가는 과정에서 과연 효과적인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와 별도로, 이번 사건으로 ‘인해’ 여성들이 성토하고 있는 일상 속 폭력 역시 무시할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아마도 이번 사건이 남긴 유일한 희망이 있다면 이들의 증언들이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아닐까.

 
 

백승덕(미카엘)
징병제 연구자. 서울대교구 가톨릭대학생연합회에서 부의장과 교육위원장을 맡았다. 2009년 9월 병역거부를 선언했다. 용산참사, 쌍용차파업 진압에서 국가폭력이 맹위를 떨쳤던 해였다. 출소 후 징병제 연구를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다. 한양대 트랜스내셔널 인문학과에서 ‘이승만 정권기 국민개병 담론’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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