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자가 바라본 세상과 교회]

“세리? 세리는 우리 집 강아지 이름이었는데? 쎄리!”
“레위? 이거 꼭 영어 같지 않아? 뤠위 이렇게 읽어야 하나?”

중학교 예비자 교리 시간은 언제나 시끌벅적하다. 방과 후 바로 시작해서인지 배고프다는 아이, 수련 활동 장기 자랑에 출 춤이라며 보여 주는 아이, 교리책을 찾으러 교실로 뛰어갔다가 실은 가방 안에 있었다며 멋쩍게 들어오는 아이. 인사할 겨를 없이 “얘들아 잠깐만 내 말 좀 들어 봐. 자리에 좀 앉아 봐”를 몇 번이나 외친다. 내가 지칠 때쯤 되면 아이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의자에 앉아 조용히 기도 손을 모으고 나를 쳐다본다. 성경 내용을 어려워하면 어쩌나 시작 전 고민은 언제나 나만의 기우다.

레위의 집에서 식사하시는 예수님 이야기를 해 주며 당시 죄인이라 불리던 사람들이 누구고 어떻게 살았는지 실감나게 연기하고 있던 찰나 한 아이가 손을 번쩍 들고 묻는다.

“하느님은 왜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낫게 해주시지 않았죠?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는 그런 일이 일어나도 왜 그냥 계셨던 거예요?”

정말 궁금해서 묻는 아이, 무슨 이야기가 나올까 눈을 반짝이며 나를 바라보는 아이들.
순간 모두 침묵이다.
이제 세 번째 수업인데, 벌써 이런 심각한 질문을 하다니. 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대답해 줘야 하는 걸까.

매일 일어나고 있는 일

광화문 광장에서, 본사 건물 앞에서, 서울대 병원 앞에서, 여의도 길거리 한복판에서, 높은 건물 옥상 위에서, 강정 마을에서, 설악산에서, 용산화상경마도박장 앞에서.
대한민국 어디 한 곳 뺄 곳 없이 모든 곳에서 매일 일어나고 있다. 비단 이 작은 나라뿐이랴. 하느님께서 이 순간에도 우리를 창조하고 계시듯, 2000년 전에 일어나던 그 일들이 지금 이 순간 매일 일어나고 있다.
연대하는 마음으로 미사도 함께 하고, 함께 순례길을 걸어도 보고, 여기저기 호소도 해보지만, 문득문득 무기력해지는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왜 이런 일이 계속 되는 걸까. 왜. 왜.
가난한 이를 위한 교회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이제 막 하느님을 만나고 있는 아이들에게 뭐라고 이야기해 줘야 하는 걸까. 아이의 질문에 선뜻 대답하지 못한 수도자인 나는 답을 알고 있는 걸까.

하느님은 어디에

날씨가 참 좋던 어느 날. 중학교 1학년 학생들과 함께 각자 학교 교정에서 찾은 하느님을 모시고 오기로 했다.

“잘려진 나무에 새겨진 나이테가 해 같은 하느님이 인자하게 웃고 계신 얼굴처럼 생겨서 찍었습니다. 자연에서 생겨난 죽은 생물에서 이런 모습을 본 것이 인상 깊었어요.”
하느님이 웃고 계신 얼굴?
학교 동산 구석에 잘려진 나무를 찾아낸 것도 신기한데 거기서 하느님 얼굴을 - 그것도 웃고 계신 얼굴을 - 찾다니.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은 아직 어린이의 눈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 죽은 생물에서 발견한 해 같은 하느님의 인자한 얼굴. (사진 제공 = 이지현)

잘려진 나무.
이제 끝난 것 같은 생명에게 다가갔을 때 하느님을 만난다.
아이의 표현처럼 인자하게 웃고 계신 해 같은 하느님.
자세히 오랫동안 들여다보니 정말 하느님께서 웃고 계신 것 같다.
“여기 내가 있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도 같다.

이제 대답을 찾은 것 같다. 하느님은 그들을 외면하신 것이 아니라 함께 계셨다고. 잘려진 나무에서도 환하게 웃고 계셨던 것처럼 소외당하고 아파하는 그들 곁에서 함께 아파하고 위로하며 지금도 거기에 계시다고.
하느님이 거기 계시는 한 우리도 소외와 아픔이 있는 자리를 외면할 수 없다.
그분의 자비하심을 따라 우리도 거기에 함께 아픔이 끝날 때까지 그냥 그 식탁에 함께 머물러야 하지 않을까.

성심여중 교리반 친구들!
수녀님 대답이 좀 늦었어요. 놀란 건 아니겠죠?
우리 답답한 교실 말고 밖으로 좀 나가볼까요?
하느님이 어디에서 웃고 계신지 궁금하지 않나요? 일단 금요일 방과 후에 화상경마도박장 앞에서 함께 미사 드립시다. 왜 많은 어른들이 그 자리에서 미사를 드리는지, 우리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지 금방 알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다음 시간부터 예수님께서 어디에 가셨는지 누구를 어떻게 만나셨는지 좀 더 알아보고.
그 다음 방문지는 여러분이 정하는 것이 좋겠어요.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처럼 우리도 함께 있어야 할 곳을 좀 찾아봅시다.
그럼 다음 주 금요일 방과 후에 만나요. 
 

"마침 많은 세리와 죄인도 와서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과 자리를 함께 하였다. 그것을 본 바리사이들이 그분의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당신네 스승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마태 9,10-13)
 

 
 
이지현 수녀(로사)
성심여고에 재직중이다. 청소년에게 삶을 노래하며 행복하게 살도록 돕는 꿈을 꾸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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