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경훈, “그는 걸어다니는 사회교리였다”

인도 고아 주에서 활동해 온 데즈먼드 드 수자 신부(구속주회)가 5월 14일 세상을 떠났다. 76살.

드 수자 신부는 고아 이주노동자포럼 코디네이터, 아시아 주교회의연합회(FABC) 인간발전사무국장 등으로 오랫동안 활약했으며, 2000년대에는 우리신학연구소 등 천주교 단체의 초청을 받아 한국을 여러 번 찾아왔다.

한국에서 드 수자 신부가 참여한 국제행사 준비를 도맡았던 황경훈 우리신학연구소장은 갑작스러운 부고를 듣고 마음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황 소장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와 인터뷰에서 드 수자 신부는 “걸어다니는 사회교리”라고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드 수자 신부가 “자신은 신학자가 아니고 스토리텔러(이야기꾼)라고 말했지만, 그분의 신학은 알기 쉽고 매우 실천적이었으며 사회교리를 아주 구체적인 이야기로 들려 주셨던 것이 기억난다”고 회상했다.

▲ 2011년 10월 7일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 실천신학자 초청 포럼 폐막 미사를 집전하는 데즈먼드 드 수자 신부. (지금여기 자료사진)

한편 드 수자 신부는 가톨릭교회의 수직적 문화를 민주적으로 쇄신할 것을 ‘돌직구’ 표현으로 강조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황경훈 소장은 드 수자 신부가 사회교리를 “아시아 교회의 공공연한 기밀문서”라고 표현했다고 말했다. 공개된 교회 문서인 사회교리를 아시아 교회의 보수적 주교와 성직자들이 신자들에게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다는 비판이다. 황 소장은 2011년 아시아 실천신학자 포럼과 청년활동가 워크숍을 마친 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기고한 글에서 드 수자 신부가 한 말을 인용한 바 있다.

“교회 내에서 일하는 이들에게 교회가 정당한 임금을 지불하기 전까지는 사회를 향해 노동자의 인권 얘기를 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런 상황에 있는 성직자들에게 사회교리는 신자들에게 최대의 비밀로 붙여야 할 금서가 되기도 한다.”

황경훈 소장은 “교회도 시민사회의 일부분으로 사람들이 모인 곳이고, 그것을 합리적으로 운영하며 민주적 과정을 잘 구현한 공동체가 하느님나라의 표지로서 빛과 소금 역할을 할 수 있다”면서 “데즈먼드 신부가 우리에게 주려고 한 생각과 정신이 그것이라고 기억한다”고 말했다.

<매터스 인디아>(Matters India) 5월 18일자 보도에 따르면 드 수자 신부는 14일 심장마비로 쓰러져 수술을 받던 중 숨졌다. 그의 주검은 17일 고아 주 살리가오에 있는 성당으로 옮겨졌고, 장례 미사가 봉헌됐다.

▲ 2009년 5월 18일 서울 용산참사 현장에서 봉헌된 미사에 참석한 데즈먼드 드 수자 신부. (지금여기 자료사진)

<매터스 인디아>는 드 수자 신부가 1939년 태어나 1958년 구속주회에 들어갔고 1966년 사제품을 받았다고 적었다. 그는 사회복지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학생들에게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과 교회사, 사회분석을 가르치기도 했다.

드 수자 신부는 2005년 우리신학연구소 아시아신학연대센터가 주최한 “사목헌장” 반포 40주년 기념 강연회에 초청받아 한국에 왔으며, 아시아 교회 관점에서 본 ‘사목헌장과 교회쇄신’을 주제로 발표했다.

2009년에는 FABC 총회 준비 국제 포럼에 참여하기 위해 서울에 왔으며, 5월 18일 용산참사 현장에서 봉헌된 미사에도 참여했다. 이 자리에서 드 수자 신부는 “우리는 올해 ‘아시아에 살아계신 성체’를 주제로 포럼을 열고 있는데, 이곳에 와서 보니 이곳이 곧 성체 안에 드러난 예수의 고난과 승리가 새겨진 공동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권력자들은 예수를 죽였지만 하느님 눈에는 오히려 권력자들이 죽고 예수가 살아 있다”면서 “이 싸움은 하느님의 싸움이며 여러분이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격려했다.

또 드 수자 신부는 2011년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 실천신학자 초청 포럼에 참석해 ‘세계화와 인간발전’을 주제로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아시아 교회가 새로운 사회를 향한 예언자적 비전의 해방적 통찰을 계속할 수 있을지 물으면서, 교회가 맞닥뜨린 도전은 새로운 사회를 향한 싸움에 참여해 진정한 아시아 교회가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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