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정평위 등 5.18민중항쟁 심포지엄

우리 사회는 그동안 5.18을 어떻게 기억하며, 그 고통의 ‘증언’을 얼마나 깊이 있게 들었는가. 그리고 5.18의 기억으로 어떻게 평화 공동체를 구현할 수 있을까.

천주교 광주대교구가 5.18민중항쟁 36주년을 맞아 5.18 트라우마 치유에 있어 사회공동체의 책임과 역할을 짚어보고, 5.18 기억을 통해 국가폭력에 대한 사회적 저항과 평화 공동체 구현의 길을 물었다.

5월 11일 광주가톨릭평생교육원에서 열린 심포지엄은 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와 광주인권평화재단, 광주가톨릭대학교신학연구소가 함께 마련했으며, 노성숙 교수(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와 이호중 교수(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가 각각 주제 발표에 나섰다.

발표에 앞서 정평위원장 이영선 신부는, “신앙인은 하느님이 역사를 이끌어 간다는 하느님 중심성을 믿고 역사를 해석하는 사람들”이라며, “오늘의 심포지엄은 우리가 만드는 역사가 하느님이 우리를 해방으로 이끄는 역사라고 해석하고 알아듣기 위한 노력”이라고 말했다.

옥현진 보좌주교도 “5.18을 잊을 수 없는 이유는 여전히 인간의 존엄성이 지켜지지 않는 나라에서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외쳐야 하기 때문”이라면서, “다시 연대하며 생존을 위한 외침에 나설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아파하며 80년 5월을 다시 기억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 5월 11일 광주 가톨릭평생교육원에서 5.18민중항쟁 36주년을 기념하는 학술 심포지엄이 열렸다. ⓒ정현진 기자

치유 공동체의 몫, “피해자의 증언을 경청하고 지지하는 것”

먼저 ‘5.18 트라우마와 치유 : 개인과 사회 공동체의 변증법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주제로 발표한 노성숙 교수는 ‘5.18 트라우마’는 개인적 차원의 심리 치료와 사회정치적 제도화나 사회 운동을 나눠서 접근해서는 궁극적 치유가 불가능하다며, “트라우마의 구체적 증언을 다시 경청하는 동시에, 사회공동체 안에서 그 증언을 기억하고 지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노교수는 고통을 당하고 감당해야 하는 것은 구체적 개인이지만, 특히 5.18로 인한 고통은 고통의 가해자가 국가라는 특성을 지닌다면서, “개인과 사회 공동체의 긴밀한 연관성 속에서 생겨난 고통인 만큼, 현재까지 사회공동체가 개인(5.18 피해자)에게 가하고 있는 이차적 트라우마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5.18과 그 피해자를 “폭도, 빨갱이”로 몰고, ‘보상’을 둘러싼 분열과 오해를 조장한 것 그리고 사회적 편견과 고립을 대표적인 이차 트라우마로 봤다. 5.18 트라우마는 의료적으로도 ‘만성 복합 트라우마’로 볼 수 있고, 국가 폭력에 의해 만성화된 것으로, “너무나 일상화되고 관행화되었으며, 심지어 폭력이 아닌 법과 질서라는 이름으로 합리화되어 반복적으로 역사적 희생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런 맥락에서 “개인과 공동체 간 연결의 단절과 훼손"이라는 5.18 트라우마의 특성에 주목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회 공동체의 지지”가 핵심적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5.18 피해 당사자들이 지속적 저항과 투쟁으로 얻어 낸 ‘사회적 제도화’ 즉 신군부를 책임자, 범법자로 위상을 격하시키고, 시민을 피해자에서 유공자로 격상시킨 것의 한계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또한, 이러한 ‘사회적 제도화’는 최소한의 것이며, 국가 주도의 진상규명 과정에서 저항 세력은 ‘국가의 신화’ 안으로 포섭되고, 5.18 관련자는 ‘당사자’, 그리고 이후 세대는 민주화의 ‘수혜자’가 됐다면서, “대상화된 수동적 수혜자가 아닌 적극적 생존자로서 주체적 위치를 되찾아야만 5.18 트라우마의 진정한 극복을 위한 사회적 지지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사회 공동체가 가해 공동체가 아닌 치유 공동체가 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 노 교수는 사회공동체가 이차적 트라우마를 재생산하지 않기 위해서는 고통의 당사자가 자신의 언어로 신체적 고통과 심상을 이야기함으로써 사건의 기억을 재구성해야 하며, 사회 공동체가 그들의 ‘증언’을 경청하여 이웃 간의 관계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했다.

▲ 이날 심포지엄에는 광주대교구 신학생들과 신자, 수도자, 사제 등 70여 명이 참석해 경청했다. ⓒ정현진 기자

“오늘날 한국 사회의 위기는 법에 의한 민주주의 파괴”

두 번째로 발표한 이호중 교수는 ‘5.18의 기억 : 평화 공동체 구현과 법’이라는 주제를 통해, 법을 매개로 합법한 폭력을 휘두르는 오늘날의 국가 폭력의 실체를 분석하면서, 오늘날의 국가 폭력은 법 안에서 저강도, 일상적으로 이뤄지고 있으므로 국가 폭력의 정의를 확대해야 하며, “법은 정의를 위한 수단이지만, 늘 그 이면에 폭력성을 내재하고 있다”고 말했다.

저항 폭력의 불법화에 대한 대표적 예로, 쌍용차 해고 사태를 든 그는, “자본의 폭력이 법적으로 승인되면서 정리 해고에 저항하는 모든 행동이 불법으로 낙인 찍혔다”며, “국가폭력이 자본의 구조적 폭력을 승인하고, 그것에 대한 저항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국가의 공적 폭력 장치로서 법을 동원했다”고 설명했다.

또, 신자유주의 질서가 가져 온 불안정성 때문에 시민들의 저항이 격렬해지고, 이를 억누르려는 국가 권력의 억압 역시 더욱 폭력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면서, “국가는 사회적 위험을 관리하는 도구로서 ‘법치’를 강조하며, ‘비정상성’과 ‘위험’에 근거한 낙인으로 공공의 적을 규정함으로써 강력한 통제수단으로 삼고 있다”고 했다.

이교수는 특히 최근 미국과 유럽의 ‘대테러법’으로 대표되는 ‘적대 형법’을 들어 “국가법제의 파시즘화” 현상을 설명하며 ‘적대 형법’은 시민과 적을 구별하자는 것으로, ‘적’은 시민이 아니고, 존중받을 자격이 없는 통제 대상, ‘위험원’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는 테러와 같이 일상적 통치 질서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법질서를 유보하고 특수 권력을 작동하는 ‘예외 상태’가 지속되는 것으로, “(예외가)비정상적 이탈이 아닌, 정상적인 법을 떠받치는 은폐된 근간이 되며, 오히려 일상의 법질서를 가능하게 만드는 근본적 힘”이라고 했다. 이러한 법의 폭력에 대항해 사회 변혁을 추구하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물음에 슬라보예 지젝의 개념을 빌어 ‘실제적 보편성’을 제안했다.

그는, ‘종북 논란’에 대해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하자는 입장은 맞는 말이지만, 사실상 차이와 다양성을 승인하자는 인권 담론은 현재 민주주의 침탈을 돌파할 운동적, 이론적 잠재력을 갖지 못한다고 봤다.

대신, 사회 구성원들이 “동일한 기본적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정의 경험, 부당한 경험을 공유하면서, 부당한 권력 행사에 동의하지 않음을 기반으로 연대를 활성화하고 파편화된 인권 담론을 뛰어넘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일례로, 노동자들이 착취의 경험을 공유하면서, 그것을 뛰어넘어 변혁을 이끌어내는 저항의 연대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적대성을 드러낸다는 지적이 있겠지만,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사회의 모순을 더 많이 드러내고 그것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식의 확산이라면 어느 정도 유용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혁명은 어느 순간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일상적 저항이 쌓인 어느 시점에서 일어날 수 있는 것”이라며, “작지만 보편적 연대의 지점을 찾고 저항하는 과정을 이어가는 것이 결국 5.18의 정신에 도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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