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속풀이-박종인]

성경을 열어 신약 부분을 보면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이 복음서입니다. 복음서는 마태오, 마르코, 루카, 요한 이렇게 네 가지가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복음이 네 개라고 해서 사대복음이라 부릅니다. 그리고 그 중 앞선 세 개를 공관복음(共觀福音, Synoptic Gospels)이라 부르고 요한 복음과 구분합니다. 이것은 마태오, 마르코, 루카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이 많은 부분 서로 중복되어 있음을 의미합니다. 달리 말하면, 요한 복음의 내용이 나머지 셋과 많이 다르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대부분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복음 읽기는 이 네 개의 복음 안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고백하건대, 수도회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그래서 신학을 더 배울 기회가 없었다면, 저는 아마도 저 네 개의 복음이 복음의 전부라고 알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이고 생각해 보면, 우리에게 남겨진 복음이 네 개만 있다는 것은 설득력 없는 말이라는 데 동의하실 겁니다. 예수님의 공생활 동안 그분 곁에서 동고동락했던 열두 명의 사도만 생각해도 열두 개의 복음은 나왔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열두 사도를 대표해서 마태오가 대표로 쓴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할 수 있겠으나, 초기 교회 시절에 열두 사도는 지중해 일대의 여러 지역으로 파견되어 예수께서 우리의 구원자이심을 알렸습니다. 그들은 마태오가 쓴 복음서를 들고 다닌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했던 경험과 말씀에 관한 기억만 가지고 움직였습니다.

복음이 책으로 쓰여진 것은 돌아오시겠다고 하셨던 주님이 빨리 안 오시고, 사도들이 나이가 들다 보니 아무래도 그것을 적어 둬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셨는지, 그분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교회공동체가 기억하도록 경험을 토대로 쓴 것이 복음입니다. 그 기억의 전수와 재생산 과정에서 마르코, 루카 등 예수님을 직접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공동체를 통해 그분을 알게 된 이들(혹은 그들의 공동체)의 기록이 생겨난 것입니다.

▲ 네 복음 전도사, 야코프 요르단스, 17세기 (이미지 출처 = commons.wikimedia.org)
마태오 복음과 요한 복음은 두 사도가 모두 주님을 직접 알고 지냈던 이들이니 복음도 직접 썼을 것이라 보는 분들이 계시겠지만, 실제로는 두 사도가 복음을 전하러 갔던 공동체가 나중에 썼을 것이라고 학자들은 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복음서는 그 사도들의 증언과 신학적 관점이 담겨져 있는 공동체의 복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복음이 쓰여지게 된 이런 기본적 배경은, 모든 사도들 또는 예수님과 가까이 지냈던 이들이 일군 공동체에 비슷하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 결국 그만큼 다양한 복음이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교회가 정식으로 성경에 채택하지는 않았지만, 참고자료로 삼을 수 있는 여러 자료들을 통해 우리는 다양한 복음의 존재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성경으로 인정하는 텍스트를 정경, 그 선별에서 제외된 것을 외경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외경은 복음을 연구하고 주님께 대한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데 좋은 참고자료들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토마스 복음서, 베드로 복음서, 유다 복음서(이 유다는 예수님을 배신한 유다랍니다), 야고보 복음서입니다. 또, 초기교회 신자들이 궁금해 했던 예수님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가 2세기 전후까지 상당히 풍부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정경으로 채택되지 않았다 해도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할 만합니다. 그 예로 야고보의 유년기 복음서, 토마스의 유년기 복음서, 위(僞)마태오복음 등이 우리가 사대복음에 없는 예수님의 탄생과 어린 시절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외경에는 꼭 복음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도행전처럼 복음을 전하러 다니던 여행에 관한 기록이나 각 사도들의 행적에 관한 기록도 있습니다. 이 자료들은 초기교회의 모습과 신자들의 활동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 신앙의 전수 과정에 대해 눈을 감고 차분히 생각해 보면, 오히려 신비감까지 느끼게 됩니다.

어떻게 실제로 보지도 못한 사람에 대해 우리는 믿고 있는가? 놀랍지 않으신가요? 예수님이 토마스에게 하신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는 말씀이 우리에게 실현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 가지 더 행복한 사실은, 예수님과 함께 살았던 이들의 경험과 기억이 신앙 공동체가 처한 환경에 맞춰 새롭게 해석되면서 더 풍요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왔다는 점입니다.

우리의 기억도 멈춰 있지 않고, 우리의 신앙도 멈춰 있지 않을 것입니다. 복음은 각자의 차원에서 다양하게 쓰여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개인의 복음이 공동체 차원에서 공유될 때, 그 복음은 균형을 잡아갈 것입니다. 이것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일하시는 방식입니다.

사족: 이런 주제에 관심 있으신 분들은 “‘신약외경' 읽어야 할 이유, 있다”를 읽어 보시고, "신약외경입문"(송혜경 저, 바오로딸) 일독도 권해 드립니다.

 

 
 

박종인 신부(요한)
서강대 인성교육센터 운영실무. 
서강대 "성찰과 성장" 과목 담당.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