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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 할아버지는 신선??[욜라 즐거운 육아일기 - 47]

옆집 할아버지는 과연 사람인가 신선인가. 새하얘진 머리는 검은 머리의 최후, 나이 듦의 서글픈 상징이 아니라, 오랜 시간 벼려 얻은 연장처럼 새롭고 강해 보인다. 아침 논일 끝내고 낮잠 주무시러 서푼 오시는 걸음걸이는 멀리서부터 내 안의 비트박스를 켜게 하는 리듬이 있다. 마치 점토공이 지면을 가볍게 튀기듯 발로 땅을 살포시 디디실 적마다 그 반동으로 몸이 약간 허공에 둥실 떠오르는데 그때마다 햇볕에 머리가 은빛으로 반짝인다. 나에게 초고속 카메라가 있다면 할아버지의 중력을 무시한 듯한, 흔들리듯 통통 튀는 걸음의 비밀을 밝혀내고 말 텐데, 지금으로선 케냐의 마사이 족 걸음걸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하고 추측할 뿐이다.

나는 할아버지가 나를 알아보실 수 있을 만큼의 거리가 되면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한다. 그럼 할아버지는 걸음의 리듬을 흩뜨리지 않은 채로 굽이굽이 넘실넘실 걸어오시며 한 박자하고 반 박자쯤 뒤에 “허어이! 어~! 아기가 이뻐, 이이~뻐”하신다. 물론 내가 예쁘다는 게 아니고 내 옆에 로나 메리, 욜라가 예쁘다는 말씀이다.

나는 내 앞의 할아버지가 옆집에 사는 할아버지가 분명한데 어쩐지 신선같다는 생각을 만 2년째 계속하고 있는 까닭에 할아버지 앞에선 ‘이 금도끼가 네 것이냐’하여도 ‘아닙니다. 저의 것은 쇠도끼입니다.’라고 말하려고 노력한다. 예를 들면 “애기 엄마가 참 아기들을 예쁘게 잘 키우네.”하시면 “아, 아니, 아니에요!.... 아하하핫”이라며 뒤통수를 벅벅 긁으며 허리를 굽혔다 폈다 하거나 손을 모았다 저었다 하면서 나사가 하나 빠진 사람처럼 붉으락푸르락 한다. 그 사이 할아버지는 ‘구름에 달 가듯이’ 내 곁을 유유히 지나가신다.

나는 할아버지가 지나가시고 ‘이대로라면 할아버지는 분명 백 살까지 사실 것이다!’ 라는 확신을 하고 할아버지가 백 살일 때 내 나이와 아이들의 나이를 셈해 보았다. 그러면 환갑이 거의 다 된 내가, 막내 로가 군에 가서 보내 준 ‘이등병의 편지’를 읽고 있을 미래를 그려보다가, ‘거참. 이렇게 순식간에 나이를 먹을 바에는 너무나 빨라서 허무한 이노무 세월의 꽁무니를 쫓느라 허겁지겁 살지 말고 옆집 할아버지를 멘토로 삼아서 제대로 늙어나 보자.’ 하는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옆집 할아버지는 무엇을 먹고 사시는가? ‘산과 들에서 나는 온갖 진귀한 약초를 잡수고 계실 것이다’라는 가설 하에 옆집 할머니의 반찬을 연구하였다. 할머니가 주시는 김치며 나물 반찬을 꾸준히 먹어 본 결과 할아버지는 각종 나물과 채소를 바탕으로 화학조미료로 맛을 내고 설탕과 기름을 애용하시는 할머니의 반찬을 들고 계셨다. 내가 예상했던 ‘신선되기 레시피’와는 일치하지 않았다.

그 밖에도 속속들이 밝혀지는 할아버지의 먹거리! 슈퍼를 운영하는 막내 따님이 보내주는 과자를 간식으로 드시는데, 너무 아껴 두시느라 항상 유통기한이 임박했거나 상당 기간 넘긴 과자를 드시는 것을 한두 번 본 것이 아니다. 나는 그 부분을 알려 드릴까도 했지만 감히 따님이 준 효도의 정이 서린 과자를 욕되게 하고 싶지 않아서 ‘이것 먹고 죽진 않는다’라는 마음으로 입을 다물었다.(실제로 비상 간식이기 때문에 자주 드시지는 않으셨다.)

그리고 신의를 지키고자 하는 양심으로 가득 찬 나는 할머니가 유통기간이 지난 과자를 주실 때마다 ‘죽지 않는’ 선에서 먹었다. 나의 노령 멘토 신선 할아버지도 드시는 걸 나만 좀 더 오래 살 거라고 거부하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다행히 요새는 과자를 덜 주신다.) 이렇게 살신성인과도 같은 2년간의 관찰과 분석, 임상시험 결과, 신선이 되는 것은 먹는 것과 필연적 연관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신선 되기’ 두 번째 비결로 부부금실을 지목했다! 할머니의 살뜰한 내조가 오늘날 할아버지를 신선의 경지로 이르게 했다고 직감하고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잉꼬부부 지수를 내 맘대로 높게 매겨보았다. 왜냐하면 할머니의 내조를 확인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논일 가고 안 계신 할아버지가 드시게 철철이 계절 반찬을 만드시느라 바쁜 할머니의 모습에서 역시 부부는 서로를 위하는 것임을 배울 수 있었다.

그런데 나는 한 번도 못 들었지만 남편이 말하길 마당에서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구박’하는 소리가 심심찮게 들려온다고 했다. 나는 그럴 리 없다고 했다. 귀가 어두우신 할아버지가 잘 못 들으시니 할머니가 큰 소리로 말하려니 했다. 그런데 남편이 자꾸만 지난해 말부터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구박하시며 ‘짜증’까지 내신다고 일러바치는 게 아닌가. 나는 차라리 귀를 막고 싶었지만 올해부터는 그 사실도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도 얼핏 할머니가 고함치는 소리를 들은 것 같다. 소크라테스의 철학도 부부금실과 비례하지 않았는데 신선의 경지도 그러한가 보다 하고 넘어가기로 한다.

   
(사진 출처 = pixabay.com)

철학이라는 말이 나왔으니 ‘자고로 신선’은 한 개인의 수행이나 철학에 의존하는 것이라는 마지막 가설을 세웠다. 할아버지의 온화하며 깨끗한 풍모와 세상사에 초연한 듯한 아우라의 비결은 바로 신선을 닮고자 하여 자신을 갈고 닦고, 신선같이 생각하는 데 있다는 말이다. 흙과 함께 흙에 투신하여 80살이 넘도록 농사일을 하며 살아오신 할아버지를 남편이 인터뷰를 하였다.

초보 농사꾼인 남편이 고수 농사꾼의 고견을 듣는 자리였다. 시골로 오기 전까지 농사의 농자도 모르던 남편은 어디서 보고 들은 것이 있어서 텃밭 농사에 ‘일절 화학비료와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고’ 오직 아이들 똥과 오줌을 땅에 파묻으며 옥토를 일구려 했지만 별 볼 일 없이 한 해 농사를 망치고, ‘흙과 식물의 복지를 생각하여 작물 재배에 비닐을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어린 모종이 알아서 커 주길 바라고 두 손 모으고 기원만 하다가 빼곡한 잡초에 땅이 사라지는 진귀한 광경을 연출하기도 하면서, 이제 비로소 ‘책으로 농사를 기초부터 하나하나 배우고’ 있는 초보 중의 상초보 농사꾼이다.

남편이 고수 농사꾼인 할아버지께 농사법에 대해 이것저것 여쭈었다. 역시 할아버지는 우리가 추구하는 유기농이라든가 자연농법에는 관심이 없다 못해 비관적이셨고 오로지 비료와 풀약(제초제)을 쓸 것을 강조하셨다. 그런 할아버지가 갑자기 한숨을 돌리시더니 먼 산을 보며 인터뷰를 마무리하는 어조로 운을 떼셨다고 한다. “농사는....”이라고 말이다.

‘아, 드디어 농사에 대한 할아버지의 신념과 철학이 나오나 보다! 농사는.... 농사는.... 과연 뭘까? 인간과 자연과의 교감?’ 두 눈을 반짝이며 답을 기다리는 남편에게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농사만 60년이 넘도록 지어오신 할아버지가 천천히 그리고 간결하게 정의하신 농사에 대한 아포리즘은 다음과 같다.

“농사는.... 농사는.... 돈이 안 돼.”

실로 아쉽고 충격적이지만 반박하기 어려운 ‘60년 농사인생의 단 한 줄’이었다. 농사에 대한 신념과 철학마저 앗아가는 현재 우리 농촌의 실태가 그렇다는 것이다. 이로써 옆집 할아버지의 신선 비결은 기어코 명쾌하게 밝혀지진 않았지만 그래도 나보다 열 배는 훌륭하고 깨끗한 음식을 드시며, 할머니랑 오순도순 정답게 지내시고, 언제나 흙이 하는 말을 들으며 흙이 주는 대로 받으며 사시는 할아버지는 사람보다 신선에 가깝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나도 나중에 옆집 할아버지처럼 나이 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이가 들면서 가진 것이 많든 적든 아는 것이 많든 적든, 내가 사랑한 것, 또 내가 미워한 것, 얼굴에 나타내려 하기보다는, 마치 태어날 때부터 80살을 향해 살아온 것처럼 현재의 늙은 모습에서 출발하고 끝을 맺는 지극히 정직하게 살고자 하는 꿈을 꾸었다. 그나저나 할아버지의 걸음걸이만 마스터하면 나도 고무공처럼 통통 튀기듯 걸을 수 있을 텐데. 그리고 은빛 머리칼이 햇볕에 반짝이도록 집 주변을 왔다 갔다 할 텐데. 그러다 늙음만이 주는 신선함과 가벼움에 눈을 뜬 옆집의 어느 젊은이가 나를 자신의 ‘늙은이 멘토’로 삼는다면 더할 나위 없는 최고의 인생이 될 것 같은 예감이다.

 

 
 
김혜율(아녜스)
(학교에서건 어디에서건) 애 키우는 거 제대로 배운 바 없이 얼떨결에 메리, 욜라, 로 세 아이를 낳고 제 요량껏 키우며 나날이 감동, 좌절, 희망, 이성 잃음, 도 닦음을 무한반복 중인 엄마. 그러면서 육아휴직 4년차에 접어드는 워킹맘이라는 복잡한 신분을 떠안고 있다. 다행히 본인과 여러 모로 비슷한 남편하고 죽이 맞아 대체로 즉흥적이고 걱정 없이 살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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