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자가 바라본 세상과 교회]

앞으로 '수도자가 바라본 세상과 교회'는 성심수녀회 이지현 수녀님이 맡아 주십니다. 연재를 허락하신 수녀님께 감사드립니다. - 편집자

아기였던 네가 벌써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다니 문득 널 볼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곤 한단다. 이모에게 제법 굵직한 질문들을 던지는 통에 그저 큰 웃음으로 무마하던 날들이 많았는데, 이젠 너도 훌쩍 커서 이모가 난감해할 질문은 하지 않더구나. 사실 어른과 달리 어린이는 상대방을 잘 배려하는 것 같아.

언니 오빠들 언제 돌아와?

2년 전 그 사건 뒤, 우리 둘이 손잡고 시청 앞에 가서 노란 리본도 달고 언니 오빠들을 위해 꽃도 놓고 기도도 했었어. 워낙 꼬마 때 일이라 네가 조금 크면 기억 못 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얼마 전 광화문 광장을 바라보다 “언니 오빠들, 이제 돌아왔어?” 라고 묻는 통에 가슴이 먹먹해졌단다. 이제라도 “드디어 돌아왔어.”라고 대답해 주고 싶은데, 미안해. 아직 조금 더 걸릴 것 같아.

가끔은 어른들이 무심하게도 “아직도 그 이야기 하나? 그만해라.”라고 말하기도 하고, 일상을 살면서 점점 잊기도 하지만, 누군가 그렇게 질문을 던지면 다시금 기억을 떠올리고 마음을 쓰게 되지. 그래서 누군가는 끊임없이 기억하고 질문을 던져야 해. 너처럼.

사실 이모는 많은 학생을 만나면서도 용기 있게 질문 하지 못했어. 내가 하는 말에 관심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 성심여중고 학생이 세월호참사 2년 추모미사를 봉헌하는 모습 (사진 제공 = 이지현 수녀)

세월호참사 2주기 추모미사를 준비하면서 미사에서 함께 노래하고 악기 연주를 하고 싶은 사람을 모집했는데 정말 많은 언니가 기쁘게 모였어.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70명이나 되는 언니들이 자신들의 방법으로 마음을 전하고 싶어 모였고 2주 동안, 다들 처음 만나는 사이임에도 하나의 지향을 가지고 조심스레 마음을 맞춰 연주하고 노래하는 모습을 보며 많은 생각을 했단다.

이모가 예전에 이야기해 줬지? 자신의 마음을 전달할 수 있는 것으로, 온 마음을 다하면 그것이 기도라고. 예쁜 마음으로 모인 언니 중에 성당을 다니는 언니들은 거의 없었지만 온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었어.

오늘 아침 일찍 강당에서 했던 세월호참사 2주기 추모미사에는 중고 연합 합창단과 오케스트라 언니들뿐만 아니라 훨씬 더 많은 언니가 참석했어. 정말 깜짝 놀랐단다. 아마 네가 왔더라면 예쁜 언니들이 너무 많아서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인사하고 돌아다녔겠지? 다들 성적만 중요하게 생각하고 남의 일에는 관심이 없을 거로 생각했던 건 이모의 오해였던 것 같아.

저 개미 보여?

산책하러 나가길 좋아하는 너랑 하던 놀이 중 가장 어려운 놀이가 개미 찾기였어. 까만 아스팔트 위를 기어 다니는 까만 개미를 넌 어쩜 그리 잘 찾는 거지? 찾아내서 괴롭히면 어쩌나 걱정하는 건 나의 기우였고 넌 그 개미를 살금살금 쫓아 집을 찾고선 과자도 주고 싶고 사탕도 주고 싶다며 가방을 뒤적거렸어. 근데 참 신기하지? 너랑 헤어지고 나면 이모는 혼자 개미를 찾을 수가 없더라. 정말 노력을 많이 해야 겨우 보이는 건 무슨 이유일까?

처음엔 ‘어린아이 눈이 훨씬 좋아서 온갖 것이 다 보이는구나!’라고 생각했어. 근데 오늘 미사에 참석한 많은 언니를 바라보다가 그 이유를 찾은 것 같아. 너의 표현처럼 이모가 할머니가 되어 가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어른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아이들을 믿어 주지 않고 심지어 없다고 윽박지르기까지 한다면 그 아이들도 점점 보지 못하는 어른들을 닮아가겠지? 어른들이 잊고 싶어 하는 것을 기억하고 질문하는 아이들의 말을 쓸데없는 것으로만 단정하면 그 아이들도 마음이 딱딱한 어른이 되어 가겠지?

 (사진 제공 = 이지현 수녀)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하늘 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하고 물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어린이 하나를 불러 그들 가운데에 세우시고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회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마태 18,1-3) 

하느님이 만들어 주신 소중한 생명을 알아보는 눈을 가진 사람.
작은 생명도 항상 정성스럽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대하는 사람.
생각 없이 나이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어린이일 거야.

이모도 너처럼, 오늘 모였던 그 많은 중학교, 고등학교 언니들처럼 어린이의 마음을 다시 배워 보려고 해. 좀 어려울 것 같긴 하지만 모두에게 부끄러운 어른이 되지 않으려면 노력을 좀 해야겠지? 너 요즘 이모에게 종종 노처녀 수녀 이모라고 부르는데, 그러지 말고 어린이 수녀 이모라고 불러 줄래? 그래야 잊어 버리지 않고 기억하면서 노력할 수 있을 것 같아.

고맙다. 어린이.
미안하다. 어른이.

 
이지현 수녀(로사)
성심여고에 재직중이다. 청소년에게 삶을 노래하며 행복하게 살도록 돕는 꿈을 꾸며 살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