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불능시대 넘어서기]신상공개가 아니라 데뷔할 수 있는 자리가 필요하다

총선이 끝나고, 문득 잊고 있던 국회의원 한 사람이 떠올랐다. 19대 국회에 새누리당 비례대표로 들어갔던 송영근 의원이었다. 어디서 출마했는지 영 소식을 듣지 못해 궁금했다.

그가 떠올랐던 건 ‘병역기피자 인터넷 신상공개’라는 황당한 제도를 만든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송영근 의원은 귀국하지 않고 있는 병역기피자들이 부담을 느껴서 돌아오도록 만들기 위해 이런 계획을 냈다고 홍보했다. 그러나 국회 국방위에서 법안을 검토하는 가운데 해외 체류자들만을 대상으로 삼으면 법적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있었고, 결국 형평을 맞추기 위해서 국내 병역기피자들까지 포함해 버렸다.

과연 효과가 있을까? 지방병무청들에서 나오는 소식들을 보면 우려했던 대로 악효과만 커 보인다. 올해 초 전북지방병무청에서 신상공개 대상자를 잠정 선정한 결과를 보면 공개 대상자는 총 27명인데, 이 중 종교적 병역거부자가 21명으로 대다수였다. 나머지 6명은 통지서를 받은 뒤 병역을 기피해서 재판 중이거나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고 한다. 국외에 머무르고 있어서 신병을 확보할 수 없었던 기피자는 한 명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른 지방이라고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문제는 신상공개로 이중 처벌을 받게 된 사람들이다. ‘여호와의 증인’ 신자나 정치적 병역거부자의 경우는 대체복무제를 요구하면서 재판정에 자기 발로 나가고 있는데 신상공개까지 당하게 생겼다. 그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데뷔가 늦은 예체능계 청년들 역시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 2010-2014년까지 병무청에 적발된 병역기피자 119명 중 연예인, 운동선수 지망생이 55명으로 절반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송영근 의원이 내놓은 법안을 심의하기 위해 국회에 출석했던 병무청 차장은 예체능계 병역기피자들의 처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체육인은 거의 1부 리그에서는 별로 유혹을 안 받습니다. 상무를 가든 어디를 가든 충분히 자기가 활동하는데 문제는 마이너리그에 있는 애들이 문제입니다. 전부 이쪽 애들이, 군에 가면 자기 인생이 끝나거든요. 그러니까 모든 수단을 가리지 않고....”

그러니까 정부 당국도 신상공개 대상의 대다수는 기득권층이 아니라 ‘마이너리거’라는 점을 이미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연예인, 운동선수의 경우 30대 초반이면 활동생명이 끝나기 때문에 그전에 데뷔하지 않으면 꿈을 포기해야만 하는 처지다. 사정이 이러니, 한 국회의원이 듣고 있다가 이렇게 답했다. "아니, 인생 끝나는 애들을 뭐하러 군에 데리고 가요."

▲ 재향군인회 회장선거 입후보자들. 오른쪽 두 번째가 송영근 전 의원. (사진 출처 = 대한민국 재향군인회 홈페이지)

여성 장교나 일반 사병들의 안전은?

어찌 되었든 법안은 통과되었고, 늦어도 8월이면 병역기피자들의 신상은 인터넷에 공개될 예정이다. 종교적, 정치적 병역거부자들뿐만 아니라 “인생 끝나는 애들”이라고 걱정을 받던 ‘마이너리거’들의 이름과 나이, 주소가 공개되는 법안이니 어찌 황당하다 하지 않을까.

법안을 만든 장본인은 어디로 출마했을까? 찾아보니 국회가 아니라 재향군인회 회장 선거에 나왔다. 또다시 놀랐다. 재향군인회 회장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서 국회의원 자리도 사퇴해버렸기 때문이다.

송영근 의원은 재향군인회에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다. 지난해 초 ‘국회 군 인권개선 및 병영문화혁신 특별위원회’에 나와서는 군대에서 여단장이 부하 여성을 성폭행한 사건을 두고 “해당 여단장이 지난해 거의 외박을 안 나갔다”, “나이가 40대 중반인데 성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측면을 봐야 한다” 운운하며 가해자를 감쌌다. 그 이전에는 일반 사병들에겐 방탄조끼가 지급되지 않는다는 비판 여론이 일자 "한 벌에 103만 원짜리 방탄복을 군에서 해 줘야 하나. 상식에서 벗어난다"고 말해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포털 검색창에 '송영근'을 치면 아직도 '방탄조끼'가 연관검색어로 뜬다.

재향군인회가 1000만 제대 군인들의 권익을 위하는 단체라고 하는데, 여성 장교나 일반 사병들의 안전은 그러한 권익과 관련이 없는 것일까?

처벌이 아니라 데뷔할 자리를

재향군인회는 회비를 내는 회원만 130만 명에 이르고, 매년 수백억 원의 국고보조금도 받는 단체다. 군용품을 납품하고, 계열사로는 중앙고속, 코레일 객차를 청소하는 향우산업과 군에서 나오는 고철을 처리하는 향우실업 등 10개 업체를 거느리며 수천억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부채가 5500억 원에 달해서 서울 잠실에 세운 41층짜리 재향군인회관 전체를 세놓아서 이자를 갚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재향군인회 회장 임기는 4년인데, 회장 선거는 이미 작년에 치렀던 적이 있다. 전임 회장이 선거 때 대의원 190여 명에게 10억 원 정도를 뿌린 혐의로 얼마 전 구속됐기 때문에 올해 다시 선거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재향군인회는 1000만 제대 군인을 대표한다고 내세우기엔 골병이 너무 많이 든 단체다. 여기에 병역기피자들뿐 아니라 군인들의 인권에도 관심이 없는 인물이 회장 선거로 나갔으니 걱정스럽다. 벌써 국가보훈처 개입, 금품선거 같은 논란이 다시 일고 있다.

2016년 체육 예산 중 국고에서 지원되는 규모가 1355억 원 정도라고 한다. 재향군인회로 새는 예산을 바로 잡는다면 운동선수를 꿈꾸는 청년들이 데뷔할 수 있는 자리가 훨씬 많아지지 않을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19대 국회에서 송영근 의원이 남긴 법안만 남아 있을 뿐이다. 국외체류자 망신 주겠다며 나서서는 ‘마이너리거’들만 사회적으로 매장시키고 말아 버린 무책임만 막힘없이 진행되고 있다.

 
 

백승덕(미카엘)
징병제 연구자. 서울대교구 가톨릭대학생연합회에서 부의장과 교육위원장을 맡았다. 2009년 9월 병역거부를 선언했다. 용산참사, 쌍용차파업 진압에서 국가폭력이 맹위를 떨쳤던 해였다. 출소 후 징병제 연구를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다. 한양대 트랜스내셔널 인문학과에서 ‘이승만 정권기 국민개병 담론’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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